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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ul 30. 2021

찍어줘서 고마워요

무겁지만 찍을 만해

단원고라고 새로 생긴대.

안산에 있던 나의 모교

단원고를 기억한다. 내가 고등학생이 될 때 생긴 학교기 때문이다. 사실 입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교복 아닌가. 당시 우리 학교 교복보다 훨씬 예쁘다는 생각을 하며, 소소하게 친구들과 학교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3년 후, 나는 안산을 떠났다. 나의 대학 진학과 동생의 고등학교 진학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20대를 다시 서울에서 내면서, 내 기억 속에서 고등학교 시절은 아득해졌다.  모교도 잊혀갔다. 단원고 역시 잊혔었다.


그러나 2014년 4월. 단원고라는 이름을 TV에서, 그것도 뉴스로 집에서 게 될 줄은 전혀 꿈에도 몰랐다.

뉴스 봤어?


이런 일이 도시를 찾게 될 줄이야. 대학교 입학 후, 한 번  선생님과 점심 약속 때문에 안산을 찾아간 적은 있었다. 그러나 2번째 방문이 이런 이유일 줄은 몰랐다. 친구들과 통화를 마치고, 나 역시도 무언가에 홀려 시간을 내 부랴부랴 안산으로 내려갔다. '옛날 안산 시민'으로서 가야 할 것 같았다.


엄마와 쇼핑하러 내리곤 했던 버스정류장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낯설었다. 인근 학교 운동장에는 분향소로 가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졌음에도 운동장에서 줄은 줄지가 않았다. 사람들의 표정은 2가지였다. 현실을 믿지 못하거나 울고 있거나. 도시에는 어둠이 깔려 있었다.


어쩌면

나도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 중에는 친구들의 제자있었. 서울에서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동료의 과 동기도 선생님으로 있었다. 남의 일이라기엔,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었다. 내가 여전히 안산에 살았더라면, 내가 저 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갔더라면, 그것도 아니라면 한 번쯤은 중앙동에서 놀다가 스치고 지나갔을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분향소에 놓인 말도 안 되는 수많은 사진들을 뒤로한 채, 밤늦게 지하철 타고 올라오면서 오열했었다.


카메라를 잡고 나서, 종종 일로 진도와 안산을 찾았다. 동향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감정을 계속 억눌렀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 영상이 한낱 감상으로 소비되지 않게 하려고, 오히려 거리를 둔 적도 있었다. 내 감정으로 사실이 오염되지 않게 하려고, 최대한 말을 삼갔다.


카메라를 끄고 나서 '실은 저도 안산 출신'이라는 말을 가끔 건넸을 때, 놀라던 그분들의 표정이 기억난다. 그리고 이내 경직된 얼굴에서 옅어지던 미소. 내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렉 버튼을 누르고 렌즈에 이들을 담는 것뿐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름 왠지 모를 책임감을 느꼈다.


그때 진짜 힘들었지


나는 입사하기 전이라 잘 모르지만, 선배들은 가끔 그때 얘기를 꺼낸다. 씻는 것도 불편했고, 잠자던 것도 불편했던 그때. 하지만 몸만 힘든 건 아니었다고 했다. 찍으면서도 이걸 해야 하나 회의감이 밀려왔다고 했다. 적나라하게 담긴 영상에는, 선배들의 트라우마도 함께 찍혀 있었다.


지난 화요일, 노란 상자들은 시의회로 옮겨졌다. 가족들은 상자들을 시의회 안에 넣어두고, 시선을 로비에서 떼지 못했다. 그리고 자리를 다. 돌아가는 버스에 마지막으로 올라타신 한 분이 내게 말을 건넸다.


끝까지 찍어줘서 고마워요


 한마디에 울컥하는 마음을 끝까지 애써 꾹꾹 눌렀다. 뉴스 내가 담은 모든 영상이 다 나가진 않는다. 그래도 내 행위가, 내 카메라가 그분들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의지가 되었을까. 오히려 가까이 들이대서 상처가 되진 않았을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 앞에서 내 카메라는 너무 가볍진 않았을까.


사실 이 글을 쓰는데도

계속 고민을 하게 된다.


쉽게 누군가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나의 감정 찰나지만, 그 사람들의 감정은 영겁이기 때문이다. 내 싸구려 문장으로 누군가의 고통을 전부인양 얘기하고 싶진 않다. 그럼에도 글을 남기는 이유는, 카메라의 무게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내가 할 수 있는 소소한 범위 안에서라도 책임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또 하나. 과연 나는 고맙다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 계속 반문하기 위해서다. 현생에 치여 나태해지진 않았는지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다. 이날의 부채의식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남아서 OK가 될 때까지 몇 차례의 스탠덥을 더 찍었다. 멘트를 수정하고, 동선을 체크하고. 그러고 나서 자리를 떴다. 노란 상자들을 뒤로한 채 사무실로 복귀하려니, 오른손에 든 카메라가 이 날따라  무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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