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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Sep 16. 2021

오래 일하고 싶다. 기자도 그렇다.

무겁지만 찍을 만해

잠을 잘 못 잔다.


누워도 잠이 안 와서 날밤 새고 출근하기가 일쑤다. 잠이 들어도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깨는가 하면, 깨고 나서도 심장이 쿵쿵거린다. 호흡이 가빠진다. 그럴 때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어낸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아질 거다.


유독 시끄러웠던 작년 한 해. 현장 취재 중 발생한  2건의 일로 법정다툼이 있었다. 고작 2건 가지고 그러냐고 그럴 수도 있는데, 이게 의외로 만만치가 않다. 재판이라는 게 오래 걸릴 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 재판 과정에서 피로도 누적되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자책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내 탓하는 게 사실 눈에 제일 빨리 보이는, 수월한 해결 방법이니까.


역시나 건강검진에서 위염이 나왔다.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달고 산다는 위염. 나만 가진 병도 아니다. 위염이 나왔다는 말에 친구들이 그제야 하나둘씩 '실은 나도'라며 고백했다. 불면증은 다른 데를 찾아가야 할 것 같았다. 정신과를 찾아갔다.


울화병인데,
이거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못 해서
그러는 거예요.


한국인만 있다는 , 화병. 오호, 그 병이 내게도 온 걸 보니 나는 빼도 박도 못 하는 한국인이렷다. K-질환 보유자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새도 없이, 막막했다. 그래도 영상으로 말하는 직업인데,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있다는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 그걸 해소하는 방법 같은 건 본인이 찾아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 인생도 막막한데, 이 병의 해법도 내가 찾아야 한다니.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내가 화병이라니

다들 사실 내색 안 해서 그렇지, 부서 선배들만 봐도 아픈 사람이 많다. 무거운 10kg짜리 ENG 카메라를 들고 다니니 당연히 몸이 성할 리가 없다. 머리 아픈 사람, 허리 아픈 사람부터 만성질환까지. 여러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들고 이동하는 와중에도 크고 작은 사고들도 발생한다. 심한 경우는 수술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인력이 없으면 카메라 2~3대를 혼자 짊어지고 나갈 때도 다.


일에서 오는 직업병은 예상했을 수도 있다. 그걸 감수하고 영상기자라는 꿈을 꾼 것도 있으니. 그러나 인생이 어디 예상대로만 흘러가는가. 일하다가 현장에서 맞는 일도 생긴다. 폭행, 협박, 희롱, 추행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취재기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퇴근 후에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기사에 대해 협박하고 욕하는 사람들, 댓글에 성희롱하는 사람들.


방송업계에서는 강함이 곧 실력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니 남초 군대문화에 익숙한 선배들이 '나 아파요. 힘들어요'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다. '남자 = 강함 = 실력 있음'이 여전히 한국 사회의 보편적 명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에서 문제를 자각하고 제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이상하게 여기는 자에게는 튀는 사람, 약한 사람, 일 못 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남는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건 원래 없다.


훈장은 허상이고, 건강은 현실이다. 직업병과 취재 상흔 훈장처럼 여기기엔 위로도 안 되고 해결책도 안 된다. 그 무게는 개인과 그 가족만속으로 삭히며 오롯이 감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훈장이 생기면, 같은 훈장을 받길 타인에게 강요하게 된다. '나도 했으니, 너도 이 정도는 버텨야 한다'라는 못난 마음이 생긴다.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억울함 때문인가.) 훈장은 처절한 노력에 대한 방증이지, 감투가 아니다.



기자도 유약한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은 원래 유한한 존재다. 제아무리 삼손이어결국 병들고 죽는다. 강한 척하는 건 강한 게 아니다. 다만, 우리의 생명 기한 속에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족을 위해, 나를 위해 노력하기에 우리의 노동이 빛나 보이는 건 아닐까. 살아 있는 동안 , 가족, 사회 자유를 위해 용기 내는 게 강한 거다. 그게 강한 거고, 건강한 것 아닐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일하고 싶다. 나도 그렇다.


울화병을 앓고 있는 동지들이여. 경제적 혹은 개인적 사유로 정신과를 가기 두렵다면, 다음 무료 해결책들을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하단에 링크를 첨부. 추후에 발견 시 더 업로드 예정.


1. 근로복지공단 EAP 상담

- 300인 미만의 사업장 및 소속 구성원 대상.

- 무료로 이용이 가능한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AP).

- 직무, 가정, 정서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

https://www.workdream.net/mobile/index.do


2. 서울시 청년포털 마음건강 프로그램

- 서울시 거주 만 19~39세 청년 가능.

- 총 7회기이며, 한 회당 시간은 50분.

- 무료.

https://youth.seoul.go.kr/site/main/home


3. ASMR

- 스스로를 세뇌시켜보자. 여긴 프랑스다. 여긴 호그와트다. 여긴 바닷 속이다.

https://youtu.be/gShDtRwTLXw



4. 브런치에 글쓰기

- 일기라도 써 보자.

- 가성비 갑. 글도 쓰고 하고 싶은 말도 하고.

- 의외로 사람들의 공감이 큰 힘이 될 때도 있더라.



 "걔는 너무 약한 거야. 애들한테 당한 걸 못 참은 거야."
"걔만 약한 거 아냐. 너도 나도 마찬가지라고."

- 영화 <소년 시절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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