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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Sep 24. 2021

친절한 카메라

무겁지만 찍을 만해

원래 보도 카메라는 친절과 거리가 멀다. 


언론이 '감시견'이기 때문이다. 찍는 자와 피하는 자의 싸움은 현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최악의 경우, 고소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영상 취재에서 성역은 없었다. 언론 역할이 확장되면서부턴 뉴스에서도 다양한 온도의 영상을 볼 수 있지만, 원래 보도 영상은 고발의 색채가 강했고 차가웠다.


예전 MBC <카메라출동(1974~2005)>만 해도 그렇다. 유흥주점에 있던 사람들은 카메라가 들이닥침과 동시에 매트릭스 세례를 받았고, 무임승차하는 시민들은 모자이크와 음성변조 없이 뉴스에 얼굴이 나갔다. 당황한 표정과 얼굴을 가리는 행동까지 여과 없이 TV 화면에 나갔다. ENG 카메라로 찍지 못하는 것은 없었다.


고발뉴스의 효시 MBC <카메라 출동(1974~2005)>. 아직도 유사 코너를 뉴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바뀌었다. '대놓고 찍는' 영상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장비 탓도 아니다. 현장 영상기자들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카메라 뒤의 인권 문제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의 명예와 권리가 중요해졌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영상 취재 역시 결과물의 형식과 취재 방법, 둘 다 바뀌어야 했다. 날씨 스케치조차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행인들의 얼굴이 그대로 나갔다. 찍히는 사람의 적극적인 항의가 없다면, 소극적 동의로 간주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날씨 스케치더라도 알아볼 수 없도록, 애초에 얼굴을 자르고 촬영하는 방송사들도 있다. 나 역시도 얼굴에 대한 클로즈업을 되도록 삼가거나, 가끔은 아웃포커싱으로 이미지 컷 촬영할 때도 있다.


경찰서 앞에서 대기하는 영상기자들

이제는 고발성과 인간성 모두를 잡아야 한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글로, 영상으로 부조리를 고발했고, 사회는 변했다. 취재에 몰입한 나머지 인간성을 포기한 기자는 '기레기'라 비난받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사회가 이상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언론에게도 이상요구했다. 언론은 지금보다 더 나은 어젠다를 제시해야 했다. 현장을 뛰는 영상기자들에게는 보여줘야 하지만 보이지 않게 찍어야 하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과제가 부여됐다.


정반합 속에서 주니어로서 여전히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인간으로서의 심장, 영상기자로서의 뇌, 회사원으로서의 손가락이 종종 충돌한다. 심장은 쿵쿵대고, 뇌는 찍지 말까 하고 있는데, 손은 이미 습관적으로 누르고 있다. 주로 사망자의 시신 촬영, 범죄자 소환 등 한 인간의 명예와 알 권리의 경합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망설일 때가 많다.



가이드라인 있다. 다만,


가이드라인이 없어서 망설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가이드라인을 모든 영상기자가 가지진 못한다. 방송사마다 보도 영상에 대한 관심다르기 때문이다. 제작 지침서가 다르고, 영상기자협회 가입이 되어 있지 않은 도 많다. 지상파, MBN, YTN, 연합뉴스TV는 회원인 반면, 그 외 종편 채널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비협회사에게 가이드라인 준수가 강제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각 사의 이해관계 속에서 비협회사의 영상기자 개인은 오늘도 방황한.


결국 가이드라인 없는 현장 취재는 영상기자 개인의 인간성에 의존하게 된다. 혹여 취재 과정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해당 회사와 현장 기자만의 일탈 문제로 치부되고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직접적인 피해는 기자 개인과 영상에 찍힌 일반 시민에게로 돌아간다. 선배들의 교육만으로도 한계가 있다. 말해 주못한 선배들을 무작정 탓할 수도 없다. 급변하는 허술한 바퀴 위에서는 선배도 나도 시간의 간격을 두고 올라 탄 두 마리의 다람쥐일 뿐이다. 

 

CNN의 2014년 세월호 보도 영상. 피해자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직접 찍기보다는, 주변 사람과 사물을 촬영해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그럼에도 참담한 현장을 생생히 담아냈다.

영상기자는 오늘도


각개전투 속에서 인간성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눈에 띄게 바뀐 게 있다면, 성범죄 취재 시에는 취재기자의 요청에 따라 피해자와 같은 성별의 영상기자가 투입되곤 한다.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인터뷰 과정에서부터 취재기자가 동성 영상기자와 동행하겠다는 것이다.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주연이 아니더라도, 같이 현장 공기를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취재원에게는 힘이 되고, 취재진도 진실에 가까워질 때가 있음이다.


친절함은 카메라가 아닌 사람을 수식한다. 카메라는 저절로 혼자서 현장을 담아내지 않는다.  초월적인 자동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차가운 영상과 따뜻한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찍는 사람인 영상기자에게 달려 있다. 보도 영상은 사람을 찍는 것이고, 사람이 찍는다. 뉴스는 사람을 향하며, 사람을 위해, 사람에 의해 존재한다.



* 촬영과 공표 사실을 알고 있거나 예상하면서도, 촬영을 적극적으로 제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촬영에 임하는 경우 (2020 영상보도가이드라인, 그래픽시선, 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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