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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Dec 14. 2021

카메라를 든 어부들

무겁지만 찍을 만해

새벽 5시. 

첫 차를 타려고 일찍 일어났다.


퉁퉁 부은 눈으로 세수를 하고, 전날 꺼내 둔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현관을 나서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20분.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운동화를 고쳐 신다가, 문득 동생이 던진 말 한마디가 떠올랐다. 


- 요즘에 회사 가서 일하는 사람이 어딨어?


'쟤는 간대. 회사.'

요즘에 회사 가는 사람,

여기 있습니다


코로나 2년. 새로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요즘이다. 부서 사람들여전히 회사로 간다. 시국과 시대가 맞물려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가 많다지만, 나는 재택근무를 해 본 적이 없다. 친구들이 '줌 화상회의', 'AI 면접', '비대면 출첵' 등 2021년 회사 신문물을 얘기할 때면, 나는 톡방에서 자연스레 말이 없어진다.


'요즘 시대'가 뭔지 잘 피부에 와닿지 않을 때도 있다. 다들 미래사회로 가는데, 나만 현대에 머무르는 걸까 걱정될 때도 있다. 하지만 회사로 출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회사에 가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 현장 때문이다.


해녀가 직접 만든 갈치조림. 산지의 맛이 느껴진다.

좋은 뉴스를

시청자에게 대접하려면


맛있는 요리는 싱싱한 재료에서 나온다. 그래서 가게 메뉴판에 원산지를 표기하기도 하고, 주인이 직접 손수 재료를 오기도 한다. 재료를 어디서 구했느냐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원산지 표기나 채집 방법이 잘못되면, 맛은 물론 손님의 건강까지도 해칠 수 있다. 그 가게의 평판과 매출에도 영향을 친다. 유명한 셰프? 친절한 직원? 비싼 기구? 트렌디한 감성 인테리어? 중요하다. 그러나 재료가 없다면? 요리는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기자는 반드시

현장에 가야 한다


뉴스도 요리다. 시청자에게 좋은 뉴스를 대접하기 위해선 현장에 가서 취재해야 한다. 모든 뉴스는 현장에서부터 시작한다. 현장에서 취재한 정보와 영상이 시청자에게 대접할 수 있는 최고의 원재료다. 현장에 가지도 않고 뉴스를 만들거나, 영상의 진실을 조작하고 제작하는 순간부터 그것은 좋은 뉴스가 아니다. 시청자에게 싸구려 요리를 제공하고 있는 이다.


싸구려 요리를 시청자들에게 대접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일을 함에 있어서 재택근무 따윈 없다. 비대면도 없다. 이 일을 선택한 이상, AI시대가 와도 재택근무나 비대면 근무는 없을 것 같다. 현장 영상이 없으면 우리의 식탁에는 값싼 뉴스만 올라오는 것이다. 그러니 영상기자에게 재택근무란 그야말로 말이 안 되는 근무인 셈이다. 어부가 재택근무를 하면, 물고기는 누가 잡나. 재택근무는 직무유기다.


그래서 '특종을 낚는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카메라를 든

어부


스스로가 어부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10kg짜리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새벽 칼바람 맞으며 도로 위에 서 있을 때면, 아침 새벽에 홀로 그물을 들고 배 위로 나온 어부의 마음이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오늘의 파도는 어떨지, 대어를 낚을 수  있을지, 사고 없이 돌아갈 수 있을지. 부은 눈에도 항상 새로운 현장 영상을 카메라에 담아 손님의 화면에 올린다는 데서 자부심을 느낀다. 더  나아가서는 언젠가 나도 나만의 가게를 열 수 있을 거라는, 내가 잡은 재료로 내 요리를 손님에게 대접하고 싶은 소박한 꿈도 꾼다.


'새'로운 사건, '새'로운 관점, '새'로운 영상. 그래서 '뉴'스 아닐까. 그래서 어부들은 오늘도 싱싱하게 살아있는 영상을 취재한다. Olds가 아닌 News를 만들기 위해, 카메라를 든 어부들은 오늘도 현장이라는 바다나아간다.


역시 현장이지 말입니다.
- 윤태호,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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