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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란 Dec 14. 2023

그대, 껍질을 벗고 나에게 오라.

나 자신을 알라

겉으로 단단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만약 멘털의 순위를 매긴다면 최약체, 최하위 등급에 속할 나.

늘 살짝 밀치는 손길에도 쿵 하고 자빠져 버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다 내밀어지는 손길에 겨우 흙을 털고 일어나곤 한다.

그래도 사람이 아주 나쁘지는 않은지, 혹은 타고난 인복이 많은 것인지 넘어질 때마다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역시나 누가 밀쳐도 잘 넘어지지 않고 혹여 넘어졌다 해도 내미는 손길을 정중히 사양하고 혼자 일어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음, 동물로 비유를 한다면 아마도 연체동물.

고슴도치의 가시도, 거북이의 등껍질도, 사자의 털도 하다 못해 생선의 비늘조차 없는 연체동물.

작은 외부 자극에도 부들부들한 속살을 그대로 내보일 수밖에 없는 그런 연체동물에 가까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를 공격하려는 의도 없이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 중에도 뾰족뾰족 가시 돋친 고슴도치는 언감생심 피하게 마련이고, 등껍질, 보송한 털, 반짝이는 비늘로 슬며시 내게 다가와도 이내 부들부들한 속살이 쓸려 생채기가 나버리기 일쑤이니 인간관계란 누가 힘들게 하지 않아도 내겐 늘 고난의 연속.

어릴 땐 검은 먹물을 대단한 무기인 양 쏘고 다녀보기도 했으나, 먹물이란 도망갈 시간을 버는 도구이지 공격의 도구가 아님을 모르고 나대다가 넉다운이 되기 일쑤였고, 나이가 들어 나 자신에 대한 자각이란 걸 하게 되니 자꾸만 바위 사이로 수초 사이로 홀로 숨어들게 된다.

가끔 단단한 등껍질을 가진 누군가의 그늘에 숨어 보호받고 싶다고 생각도 하지만, 가까워지면 질수록 결국은 쓸려 상처를 받고야 말아버린다. 

누군가 주지 않아도 내가 받게 되는 상처라니 이 얼마나 쓸데없고 피곤한 것인가만은 이렇게 태어나 이렇게 커버린걸 이제와 탓할 수도, 사실 극복하기도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아늑한 바위틈, 내 맘에 쏙 드는 수풀 사이를 찾아 나 혼자의 행복을 찾아야 하는가.

하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가끔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는 그래도 바위나 나무 같은 존재가 아닌 동물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부질없는 생각이다 하면서도 누군가, 자신의 단단한 껍질을 벗고 위험을 무릅쓰고 내게로 와 연약한 둘이 되어줄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어쩌면,

이 또한 나의 에고의 착각일 뿐 나는 누군가에게 무시무시한 가시를 들이대는 고슴도치 일수도 딱딱한 등껍질에 차갑게 숨어버린 거북이 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해,

오늘도 역시나 모르겠다란 결론.

다만, 만약 내가 연체동물이 맞다면 작고 투명하고 말리면 부드럽고 단맛이 나는 '한치' 정도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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