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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Dec 15. 2022

남자는 사라지고, 카페는 남고

마녀의 커피 한 잔

나는 소개팅 일정이 잡혀 있는 남자의 카페로 향했어. 그리고 아직 사람이 들어차지 않은 전철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나는 그와 같은 일을 언젠가 아주 똑같이 경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그 언젠가는 오늘의 19일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경험한 19일이었지. 그건,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예전에도 경험한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는 기시감>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어. 내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냥 '느낌적인 느낌'처럼 애매한 것이 아니라, 아주 분명한 경험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생전 처음 '확신'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남자를 만나러 갔어.  내가 카페에 당도했을 때는 저녁 7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어. 내가 내린 전철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전철역을 내려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어. 막, 정차해서 문을 연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한창 손님을 받아야 할 시간인데도 카페는 문이 닫혀 있었어. '정기휴일'이나 '쉽니다' 같은 팻말도 보이지 않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일정대로라면 그날은 남자와 나의 소개팅이 있어야 하는 날이었지.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카페 앞에서 삼십 분쯤을 기다렸던 것 같아. 왜 있잖아.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잠깐 외출을 할 수도 있고. 가게에 설비나 기계가 고장이 낫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남자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어. 남자가 나타나지 않자, 내 안의 확신은 점점 불안으로 바뀌어갔지. 내가 혹시, 기나긴 외로움과 업무 스트레스로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야. 남자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스마트폰의 날짜를 보고 또 보았지. 한 번은 내 앞을 지나가는 내 또래의 여자에게 오늘이 며칠인지를 다시 확인하기까지 했어. 내가 보기에도 내가 참 바보 같아 보였지. 마치 산속에서 살다 내려오거나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처럼 낯선 사람에게 '오늘이 며칠이죠?' 하고 물어보는 넋 나간 여자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봐. 


왜 나는 하룻밤이 꼬박 새우도록 남자를 소개해준 친구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지 몰라. 다음 날 아침, 나는 회사에 가기 전에 다시 남자의 가게를 들렀어. 가게의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고 그제야 친구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하지만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한 것이 친구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조금 두려웠어. 그래서 쉽게 키패드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어. 결국, 친구에게 전화를 한 것은 점심시간이 시작되고 나서였지.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이 맞았어. 친구는 나에게 소개팅을 잡아준 것이며, 카페를 하는 남자에 대해서도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 


그리고 나는 그날 오후, 다시 어제와 똑같은 경험을 했지. 


지출결의서와 그 뒤에 붙은 영수 증빙 확인을 무더기로 실수하고, 책상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든 채로 나도 모르게 잠을 자다 들키고, 다시 야근을 해야 했지. 그런데 말이야. 나의 시간에는 뭔가 예전하고 다른 느낌이 있었어. 그렇게 똑같은 일이 이틀 혹은 모르지 사나흘쯤 반복되었는지도 몰라. 그런데도 그날이 제각각 모두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었어. 그리고 내 안에 그것을 지켜보는 어떤 눈동자가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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