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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Dec 29. 2022

사랑의 모양

할아버지 바리스타께서 출근을 한 것은 정오가 다 되어서였다. 그것도 늘 손을 잡고 다니는 엄마는 어디다 두고 왔는지 혼자였다.  왜 이리 늦었느냐고 싫은 소리를 했더니, 아빠는 뭐가 그리 언짢은지 나더러 지 어미를 닮았다고 했다. 우리 아빠는 연세가 지긋하신 나이임에도 얼굴에 앳된 기운이 종종 보이는 데, 뭔가 심사가 편치 않으면 더욱 두드러졌다. 말은 점잖게 하지만, 실상은 '꼭 삐지는 모양이 유치원생 같다'는 이야기를 빙빙 돌려서 하는 거다. 아빠는 앞치마도 하지 않은 채로 탁자에 앉아서, 이제 막 포장을 끝낸 마들렌이며 오렌지케이크를 주섬주섬 드시기 시작했다. 그것도 앞서 말한 대로, 그것도 애들처럼 부스러기를 바닥에 흘리면서. 나는 또 그걸 못 참고 또 한마디를 한다. 아빠, 부스러기 좀.... 아빠도 지지 않는다. 망할 년, 꼭 지애미 같이. 


그리고 할머니 마담님이 등장했다. 늘 그렇듯 할머니가 들고 있는 꽃분홍색 장바구니에 아버지의 간식인 찐 고구마와 사과, 요구르트 따위가 담겨 있었다. 할아버지는 고혈압과 당뇨 같은 지병이 있어서 평소 먹거리에 있어 할머니의 철저한 관리를 받는다. 그런 할머니 마담님의 눈에 할아버지의 주전부리 행태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할머니의 잔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 시작이 뭔지는 좀 있다가 밝혀지겠지만, 대략 이쯤 되면 쓰리 아웃 되시겠다. 아빠가 다시금 벌컥 화를 낸다. 어째 에미나 딸년이나... 


오호라! 게임 오버다. 


엄마는 나더러 김포에 가야 한다고 했다. 엄마 친구인 분이 아줌마가 순무김치를 해놓았다고 가지러 가야 한다고 앞치마를 벗으란다. 밑도 끝도 없다. 그래도 벗으라니 순순히 벗어야지. 결국 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운전대를 잡았다. 나이 쉰에 이렇게 줏대 없고 순종적인 삶의 패턴을 가진 중년 여성이 있을까마는. 누구나 개인의 피치 못 할 환경이라는 게 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입장이 되어야만 충분한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엄마의 잔소리는 아빠만 감당이 안 되는 게 아니라, 나도. 감당이 안. 된. 다. 


아빠의 심기가 불편한 것은 어디까지나 아빠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우리 집은 집안 서열의 고하를 막론하고 각자의 빨래는 각자가 빨래함에 넣고, -빨래가 다 되면- 다시 각자가 수거해야 한다. 우리 엄마가 세워 놓은 매우 합리적인 살림규칙 중에 하나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엄마의 이야기를 줄기차게 듣다 보니, 아마도 아빠는 늘 그렇듯이 속옷을 엄마가 정해준 기한 보다 오래 입었거나, 양말을 짝짝이로 벗어놨거나, 뭔가 엄마에게 들키면 안 되는 일을 저질렀나 보다. 이 또한 정리를 하면 그냥 빨래를 꿍친 것이다. 그러다 들켰다. 운전을 하던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가 무심결에 아빠의 역성을 들었던 것 같다. 아니, 그냥 아빠를 너무 다그쳐서는 안 된다, 정도의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그게 엄마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리고 결코 끝나지 않는 고릿적 이야기가 줄줄이 되풀이되었다. 결혼을 해서 보니, 아빠의 월급 절반이 다 외상값으로 나갔던 이야기며, 그 옛날 드라이클리닝도 어려운데 벨벳 와이셔츠를 사서 입던 사람이 아빠라느니, 하는 승질머리를 봐서는 애초에 짐을 싸서 나와야 했는데, -이 부분에서는 내 머리를 한데 콩, 쥐어 밖아야 맛이 산다- 네가 들어서서 하는 수 없이 이날 이때까지 살고 있다는...  서울 우이동서 김포까지는 내비게이션으로 대략 1시간 5분이 걸렸는데, 엄마의 이야기는 그 시간으로도 모자라, 추어탕집에서 먹은 늦은 점심 자리까지 이어졌다. 상황이 그쯤 되니 머릿속이 웅~할 지경이었다. 아, 그리고 모든 것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오를 절감하며 점심값을 계산하려는데, 엄마가 내 등짝을 후려치며 말했다. 


마흔 년, 꼭 지입만 입이야. 꼭 지애비 닮아서. 

암만 그래도 니 아버지 추어탕은 하나 챙겨야 할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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