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의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누구의 자식인가? 하는 것의 물음
미운털이 박힌 자식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리밑에서 주워 왔다는 것.
우습다고? 그 사실로 숨이 넘어가게 울음보 한번 안터뜨려 본 사람이 몇이나 될라고.
태어나서 나의 정체성이 후달려본 몇 안되는 경험중 하나일껄? 그것도 대부분 8세 미만의 어린 나이에.
지금으로 따지면, 명백한 아동학대다.
우리 엄마에게는 늘 아들 하나 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의 자식이 아니었다.
나와 네살 터울의 남동생은 우리 재준이었으나, 나는 평생토록 엄마로부터 '지 애비를 닮아서' 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심지어는 몇 해전, 나를 포함해서 외가식구 중 여럿이 앓고 있는 갑상선 질환과 V.W.G가 유전이라는 게 의사 선생님 소견으로 밝혀졌음에도 엄마는 우리 엄마인 것을 부정했다. 목욕탕에서 양치질을 하다 한입 가득 쏟아낸 핏물 섞인 양치 거품을 보고 엄마는 말했다. * V.W.G_ 폰빌레브란트병, 유전성 혈우질환으로 양치질과 같은 가벼운 자극에도 출혈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으이구, 지 애비를 닮아서, 어디 변변한데가 한 군데도 없어.
엄마의 말로 추정컨데, 나는 아빠를 닮았으니, 아빠의 딸인 것 같았다. 그래서 아빠에게 나의 출생에 대해 물어보면 그 대답은 늘 한결 같았다.
응, 너는 내가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그것도 시기와 배경이 매우 구체적이다. 내가 여름 초입에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데 어찌나 배가 고프던지, 그런데, 누가 전농동 떡전교 아래서 떡사세요, 떡사세요, 하지 않겠니? 그래서 다리 아래를 내려봤더니 갓난 아기를 하나 업은 아줌마가 콩가루에 고물고물 무쳐놓은 쑥떡을 팔고 있지 않겠니? 그래서 얼릉 떡을 한봉지 사고 오백원짜리 한장을 내줬는데, 잔돈이 없다는 거야. 그러더니, 정 받아가려면 등에 업고 있는 애기라도 받아가라고 해서 받아왔지 뭐니. 그래서 내 생일이 나를 주워 온 7월 4일이라는. 오죽했으면, 지방에 살다 서울로 올라왔던 아홉살 무렵, 청량리에 살던 내가, 참으로 겁도 없이 제일 먼저 가 봤던 곳이 떡전교였다. 참고로 떡전교 아래는 철길이었다. 그것도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그 후로 마음은 안심이 되었지만, 그래도 문득 문득 행길에서 큰 다라이를 놓고 푸성귀나 먹거리를 팔고 있는 아줌마들을 보면, 우리 친엄마 생각이 나서 마음 한편이 스산하고 슬퍼졌다.
그런 내 마음의 상처를 아는지, 모르는지 철없는 우리 아빠, 진희씨는 내 나이가 쉰이 된 지금까지도 나를 다리밑에서 주워 왔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그것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한치의 부정도 없다. 그래서 가끔은 저 양반의 말이 설마 진실이 숨겨진 농담반, 진담반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 가운데, 의문이 하나 드는 것은.
내가 주워온 자식임에도 아빠를 퍽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우리 아빠를 처음 본 내 친구가 이렇게 말했을라구. 그 애는 아빠와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까르륵 웃음을 터뜨리고는 한참을 멈추지 못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얘, 너 턱밑에 수염하나만 붙여라. 그럼 딱, 너희 아부지다.
식구로 오래 살아서 닮아진 것인가, 아니면 원래부터 닮았던 것일까?
그 진실을 나는 우리 아빠가 살아있는 동안에 들을 수 있기는 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