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도 Mar 24. 2021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출간 이야기

브런치 북을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책 출간하며 마지막에 쓴 에필로그입니다.


에필로그 <봄꽃과 가을꽃>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성격이 좋을수록 친구가 많다’였습니다. 이 말은 점점 변해서 ‘○○이는 친구가 많잖아’라는 말이 ○○이는 성격이 좋다는 말로 통하곤 했습니다.  그 말에 마음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딱히 반론을 제기할 만한 근거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 말에 흔들려 의식하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 되도록 많은 친구와 잘 어울리며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항상 어떤 무리에 속해 있었고 모임도 많았습니다. 결혼식장엔 결혼식 사진을 가득 메울 정도의 친구들이 와서 축하해 줬습니다. 친구와 찍은 결혼식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 시절 내가 생각납니다.


나이 들수록 모임에 나가 떠들썩하게 이야기하고 나면 외로움을 더 느끼곤 했습니다. 그 외로움은 비 오는 날 차를 마시며  느끼는 평온한 외로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크리스마스이브에 캐럴과 크리스마스트리 불빛에 둘러싸인 채,  수많은 연인들 틈에서 혼자 밥을 먹는 느낌이었습니다. 진정한  외로움의 쓴맛을 알게 된 거죠.  


이런 느낌이 다가오는 계절이 있습니다. 바로 봄입니다. 봄에는 겨우내 움츠렸던 기운이 활기를 찾습니다. 곳곳에 진달래,  개나리가 피어나고 목련, 벚꽃으로 세상이 환해집니다. 밝고 화사한 봄기운과 봄에 피는 꽃이 어우러집니다. 사람들은 꽃구경하러 여기저기 모입니다. 꽃구경하러 간 모임에서도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자 밥 먹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봄꽃은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긴 시기가 계속되면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낮이란 시간은 학교나 회사에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며 공부와 일을 하는 시간입니다.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길어야 꽃을 피운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낮의 길이가 길 때 꽃이 피는 봄꽃은 사람을 만나 사교생활을 즐기던 청년시절 제 모습을 떠올립니다. 모임에 나가 어울리고 나면 더 허전해진 즈음부터 봄꽃의 노선이 내 길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제겐 사람들 무리 속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가을꽃은 밤의 길이가 낮의 길이보다 길어야 피어납니다. 밤은 나만의 시간으로 충전하는 때입니다. 혼자만의 시간인 밤 시간을 필요로 하는 가을꽃이 제게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모임, 저모임에 지쳐가면서도 친구가 많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제 모습을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가을꽃을 보며 용기를 얻었습니다. 가을꽃의 노선을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인 밤의 길이가 길어야 피어나는 가을꽃처럼 나만의 시간을 늘려갔습니다. 가을꽃처럼 어울림보다 사색을 즐기게 됐습니다.  가을꽃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며 거리 전체를 뒤덮지 않고 듬성듬성 피어납니다. 국화꽃은 벚꽃이나 유채꽃같이 동네를 다 휩쓸지는 않습니다. 대신 자유롭고 꼿꼿하게 꽃을 피웁니다


노란 국화는 개나리보다는 어두운 노란색으로, 붉은 국화는  분홍 진달래보다 진한 보랏빛으로, 밤기운을 머금은 채, 한층 가라앉은 색으로 피어납니다. 굳이 옆의 국화, 앞의 국화와 날마다 어울리느라 지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을에 피는 꽃 이 대체로 봄에 피는 꽃보다 더 오래 피어있습니다.  


내 인생의 모습을 담을 식물을 찾아내는 것, 내가 걸어 나갈 길을 찾아낸 것처럼 의미 있습니다. 발걸음에 설득력이 생겨 자신감도 따라옵니다. 다른 식물과 가는 방향이 달라도 괜찮습니다. 하나의 정답에  매인 채, 자신이 정답에서 얼마나 부족한지 가늠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연 그대로의 길입니다.

이 책을 읽은 당신도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식물을 보며  당신만의 색과 향기를 간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를 마치며.  2021.




브런치에 쓰기 시작했던  <식물에 비춰보는 인간관계>가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로 출간됐습니다. 지난해, 브런치 북을 출간 계약하고 부족한 원고를 더 써서 1월 10일(중요한 날이라 기억나네요 ^^)에 모두 발송했어요. 그 이후로는 기존에 썼던 글들을 지속적으로 수정했어요. 몇 편의 글들은 책에서 제외했어요. 비로소 제 인생과 생각을 담은 글로만 책을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출간 계약하고 바로 브런치에 소식을 전할까 하다가, 전에 프리랜서로 잡지에 글을 쓸 때 생각이 났어요. 마감 전날 밤늦게까지 수정하고 보낸 원고가 갑자기 다른 글에 밀려 오르지 못한 경험이 몇 차례 있었거든요. 그때 이후로 글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냥 조용히 있기로 다짐했습니다. 글이 나올 거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해 놨다가 저만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어요 ;;; 그 뒤 저만의 징크스가 된 것 같아요)


저로서는 참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아이와의 꽃시장 가던 추억도, 집안에 들인 화분을 바라보던 시간도 모두 이 글들에 담겨 있거든요.  아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발코니에 나가 식물을 관찰하느라 응시하던 눈망울이 다 제 마음에 저장돼 있어요.  소중한 추억이에요.


<식물에 비춰보는 인간관계>를 책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로 묶어낼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그 바탕에는  브런치라는 공간과, 브런치에서 같이 그 이야기를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신 독자분들과 문우분들이 계셨다는 걸 기억하고 있어요. 사실 이 이야기를 혼자 써나갔다면 여느 때처럼 중간에 쓰다가 말았을 거예요. 써놓고 나면 '이 무슨 말도 안 되게 꿰어 맞춘 거지?'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이번 건 정말 아니었네'라며 위축되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공감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독자님과 작가님 덕분에 주저앉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어요.


학창 시절 집에서 혼자 공부하면 늘어지다가 도서실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 보면 나를 다독이며 공부했던 경험, 그런 경험을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느낄 수 있었어요. 나 혼자가 아니라 같이 성실히 글을 써나가며 발행하는 공간, 이곳에서 글을 썼기 때문에 일상에 파묻혀 나태해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글을 쓴다는 것이 어두운 밤에 숲 속을 거니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내 발밑만 보고 가지만 이 방향이 맞는지, 혹시 나아갈수록 점점 더 길을 잃고 외딴곳으로 향하는 건 아닌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순간들이요.

그때마다 반짝 띄워주시는 민트빛 브런치 알림 불빛을 보며 길을 잃은 건 아닌가 보다 하고 안도하곤 했어요. 마음의 어둠 속에서 헤맬 때 한줄기 불빛은 빛 이상의 의미거든요.  잘 가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마음의 위안이 되었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의견을 존중해주고 제 글을 아껴주신 출판사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 교보문고 (kyobobook.co.kr)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 YES24


알라딘: 검색 결과 '바람에 흔들리게' (aladin.co.kr)




         

매거진의 이전글 선택적 소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