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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Apr 19. 2021

진달래과 vs 철쭉과

십여 년 전,  아이와 아파트 마당에 나가면 아이는 그 당시 피어있는 꽃을 보고 늘 한 마디씩 하곤 했다.

"엄마. 진달래가 어제보다 더 활짝 피었어요."

"이게 진달래인지 철쭉인지 어떻게 알아?"

"지금 피는 건 다 진달래죠"

근거를 대지는 못하지만 아이는 잘 구별하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해마다 봄이면  진달래인지 철쭉인지 맞히곤 했다. 아파트 마당에 진달래가 필 때도 있고 철쭉이 필 때도 있는데 사실 난 철쭉이 색이 좀 더 진하다는 것 말고는 그 둘을 잘 구별하지 못했다. 그냥 시기적으로 3월 말, 4월 초에 피는 건 진달래, 그 이후에 피는 건 철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진달래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철쭉은 작은 잎이 나오면서 꽃이 핀다는 걸 알게 됐다. 

진달래냐 철쭉이냐를 제일 쉽게 구별하는 법이었다.

꽃만 오롯이 피어있으면 진달래, 꽃과 잎이 같이 있으면 철쭉.

오마 낫 이 단순한 사실을 그동안 몰랐다니 나의 무식함에 새삼스레 또 한 번 놀랐다.



                                                                                       




            <오른쪽 사진: 꽃만 핀 진달래>


          



<왼쪽 사진: 꽃과 잎이 같이 있는 철쭉)


          




 <사진 제공: 픽사 베이>






식물에 있어서 꽃은 사랑이다. 실제로 저 아름다운 꽃은 꽃가루 받이를 위해 곤충을 유혹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꽃이 삶에서 사랑을 나타낸다면 잎은 생활이자 생존을 의미한다. 잎이 없으면 광합성이 일어나지 못해 영양 공급이 힘들다. 꽃으로만 오롯이 먼저 피어나는 진달래는 삶의 우선순위에서 '사랑'을 선두에 놓는 꽃이다.


대학생 시절, 친구들을 보면 진달래 같은 친구도 있고 철쭉 같은 친구도 있었다.

진달래같이 꽃이 우선으로 피어난 친구,

철쭉같이 꽃과 잎이 같이 나는 친구.


잎이 나오기 전, 꽃으로만 오롯이 피어난 진달래꽃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같은 과 동기였던 '사랑밖에 난 몰라'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진달래 친구는 사랑에 빠지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잠적하곤 했다. 사랑과 우정과 학업을 동시에 가꾸기보다는 사랑에 올인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사랑만을 쫓아가는 뒷모습은 사랑에 흠뻑 젖어 고혹적인 향기를 뿜어냈다. 난 진달래 친구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곤 했다. 


잠적했던 그 친구가 다시 나타나는 시기는 남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다. 초췌하거나 부은 모습으로 나타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에 몰입해 듣느라 그동안 나와 다른 친구들을 외면했던 시간에 대한 괘씸함은 금세 잊혔다. 게다가 우리에겐 아픔과 슬픔을 품은 사람을 끌어안고 싶은 본능이 있지 않은가? 이런 본능은 우리를 잠시 소홀했던 기억쯤은 쉽게 덮어버렸다. 


항상 머리로 마음을 누르고 살았던 내게 그 친구의 모습은 생경하면서도 강렬했다. 난 어렸을 때부터 머리와 가슴이 충돌할 때는 머리를 따르라고 듣고 자랐다. 신체의 더 위에 자리 잡은 머리로 아래에 있는 마음을 누르고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라고 배웠다. 머리로 마음을 누르고 살다 보면  짓눌린 마음의 압력이 강해지곤 했다.  마음에서 아니라고 찌르는 소리를 못 들은 척 애써 무시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느라 과다한 에너지를 쓰곤 했다. 이해해야 할 숙제에 치여 허덕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가슴 한편에서 압력솥에서 뿜어 나오는 칙칙칙 소리가 들리는 날도 있었다.


지나고 보니 머리보다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가 맞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진달래를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 빈틈으로 바람이 들어간 것처럼 가슴 한편이 펄럭이곤 한다. 아마도 진달래가 '마음'으로 피어난 꽃이기 때문일 것이다. 얇은 가지에 앙상하게 꽃만 덩그러니 달려있어  애틋한 느낌이다. 약한 듯 약하지 않다. 가늘지만 흐릿하지 않다. 꽃을 받쳐주는 잎이 없으니  간혹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다. 사랑 하나에 모든 걸 걸기란 쉽지 않듯이... 김소월 님의 <진달래꽃>은 있고 '철쭉꽃'은 없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예전에는 몰랐다. 진달래가 저렇게 처연하게 아름다운 건 마음을 따랐기 때문이란 걸. 마음 그대로 피어나는 진달래에는 '위태로운' 용감함이 있다  삶의 균형 인척, 금 그어놓은 테두리 따위는 벗어버린 채 얻은 자유로움도 있다. 그럼에도 잎 한 장 없이 덩그러니 매달린 진달래 꽃을 보면 마음이 안 놓인다. 

자꾸 뒤돌아 쳐다보게 된다.  


그 진달래 친구는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문득 궁금해지는 봄날이다.










이 글은 책을 쓸 때, 한겨울이라 그런지  방향만 잡고 실마리를 못 찾아 담지 못했습니다.

책을 출간한 뒤, 지난달 진달래가 피어난 모습을 보고 이야기가 머릿속으로 이어져서 뒤늦게 글을 썼습니다.

앞으로도 식물 이야기는 계획 없이 떠오르는 대로 이어갈 생각입니다.



2021. 3


이 글은 3월에 출간된 책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에 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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