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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Jun 24. 2021

중년의 꿈

내 인생의 나무는

삼십 대, 여기저기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손길 따라 이리저리 휘둘려 살았습니다. 사십에 내 모습을 보니 영양을 공급해야 할 가지만 무성하고 줄기는 자라지 못한 짤막하고 보잘것없는 나무가 돼 있더라고요


                      이런 나무 같았죠.      < 사진 제공 pixabayjplenio님 감사합니다>


내 나무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죠. 생각해보면 여기저기서 요구하던 목소리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내가 원하는 내 인생의 나무를 그려보지 않은 게 더 큰 잘못이었습니다. 정신없이 휘둘려 살며 바쁘게 사니 잘 살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방향성을 잃은 채, 하루하루 분망 하게 사는 것과 내 인생의 큰 크림을 차곡차곡 완성해가는 것과는  다른 것인데요.  그 둘의 괴리가 쌓여 사십 대, 허망함에 주저앉았습니다.


나무에 가지치기란 나무의 형태를 원하는 방향으로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자라길 바라는 방향과 반대 방향의 생장점을 가지치기해야 한다. 어쩌면 나무의 영양분이나 사람의 에너지나 한정된 것은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방향이 어느  방향인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우뚝 키가 크기를 원하는지, 주변을 품으며 옆으로 넓게 퍼지기를 원하는지에 따라 가지 치기의 지점은 달라져야만 한다.
개인이 어느 방향을 선택하는지에 대해 타인이 비난하고 평가할 수는 없다. 절대적인 답이란 있을 수 없다. 다만 자신이 어느 방향을 선택하는지 숙고하지 않은 채, 가지만 무성하게 자라도록 방치하는 것은 내 삶에 대한 존중의 결핍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역할의 번아웃 중


나와 타인을 모두 사랑하기 위한 방법의 실천,  역할의 가지치기,
 내가 원하는 내 인생 나무의 모양으로  키우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제 인생에도 가지치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가지치기 1.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십수 년 전에 읽었던 책의 구절 중 관계를 이어나갈 때 고려해야 할 세 항목이 있었습니다.

첫째 내가 그를 좋아하는가? 둘째 그가 나를 존중하는가? 셋째 이 관계를 이어나가는 게 가치 있는가?

(이 내용이 와닿아 외웠죠. 그런데 막상 책 이름과 저자 이름은 잊었고 다시 찾아낼 수가 없네요;;아시는 분 ~)


그 이후,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지 보다 나를 존중하는지를 눈여겨보기로 했습니다. 전에는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지 따지며 관계의 끈을 이어나가곤 했습니다. 이제 상대방 감정은 내가 관여할 영역이 아니란 걸 압니다. 마음은 변합니다. 내 마음 변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데 상대방 마음이 변하는 걸 어떻게 할까요.


마음은 그 사람의 과제지만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거든요. 상대방의 마음보다 태도의 일관성을 봅니다.  태도의 일관성은 그 사람의 성향입니다. 마음은 변할 수 있지만 사람의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은 사람에 대한 존중이 깊게 밴 사람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며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마음은 안 그런데 하면서 자신의 태도를 합리화하는 사람은 피곤합니다. 마음이 변하는 것도 읽어줘야 하고 그 변명도 일일이 들어줘야 합니다.

타인의 태도만 읽고 마음은 읽고 싶지 않습니다. 태도에 이미 그 사람 마음의 결론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른 사람은 나를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내 인생의 관계망에 나를 존중하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맞물려 있었으면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나의 관계들이 의미 있게 익어가기를 바랍니다


가지치기 2. 의미 없는 일에 신경을 끊어내기로 했습니다


사소한 일에 붙잡혀 신경을 쓰며 시간을 흘려버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차피 스쳐 지나갈 사람의 한마디 안에 자리 잡고 앉아서 그 말을 곱씹으며 불쾌해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사람과 모든 일에 좋은 반응을 얻겠다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은 없습니다. 나도 상대방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은 나를 좋아하길 바라고,  별로 잘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 잘 안되면 속상해하던 버릇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간절하지도 않았으면서 결과가 좋길 바라는 건 오만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일에만 신경을 쓰기에도 시간과 노력은 부족합니다. 선택과 집중으로 내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려고 합니다.


가지 관리. 가지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남긴 가지를 관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아이의 아이(손주)가 태어나면 한 달에 한 번은 손주를 봐줄 생각이에요(그 이상은 안됩니다. 가지치기 들어갑니다. 나중에 '내가 이렇게 해줬는데'라고 생색내지 않을 선, 그 선이 한 달에 한 번입니다). 아들과 미래 며느리가 데이트하며  정서적 교류를 이어가길 바라거든요.  결혼 뒤 아이를 낳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아이 아빠, 아이 엄마로 굳어지기 쉽습니다.  '아이의 부모'라는 공동역할을 벗어나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연인으로  관계를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역할만 남은 관계가 아닌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었으면 합니다. 아이가 가족 중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을 숙제로 느끼게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내 가족 표정만 아니라 이웃의 표정도 한 번씩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 혼자 해오던 기부(국내 도시락 기부)를,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는 아이 둘 이름으로도 기부를 했습니다(큰 아이는 기부기관을 두 번 바꿨지만요). 아이들 이름으로 6.25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에티오피아 아이들에게 기부해 온 것이 아이가 자라 가정을 이루면 더 많은 가지로 뻗어나가리라 믿습니다.

(우리 가족 > 아이 1 가족 > 아이 2 가족> 손주 가족> 지금 3계좌 기부, 아이 결혼 뒤 7계좌, 15로 늘어날 듯)


내 나무의 줄기를 곧게 기르려고 합니다


곧게 뻗은 나무를 좋아합니다. 늘씬하게 뻗어있는 나무를 보면 시원시원하기도 하고 멋지기도 합니다

내가 원하는 나무는 그런 나무였습니다. 가지가 무성한 나무보다 가지런히 정리된 가지에 줄기가 곧게 뻗은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곧은 줄기는 '나'라는 사람의 성장입니다. 여기에서 성장이란 사회적 위치, 부의 축적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성숙도와 삶의 가치 실현을 줄기라고 봅니다.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내게 다른 개념으로 다가왔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제한된 시간 내에서 그 시간에 해야 할 다른 무언가를 못하는 것과 일치되는 개념이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상은 이것과 저것은 늘 상호 배타적이었다. 되돌아보면 난 어느 방향의 성장을 원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미루고 살았다. 가지치기가 두려워 방치해 놓은 결과 가지도 말라가고 줄기도 허약해졌을 뿐이다.
그 당시에 난 분명 인내심이란 이름에 내 에너지를 투자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에너지는 억울함으로 축적돼 있곤 한다.  내가 원하는 '내 인생의 나무 모양을 그려보는 것. 그리고 그 모양에 맞게 가지치기하는 데 필요한 용기를 내는 것. 그것이 내 인생에 대한 예의이자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내가 나에게 주어야 할 감정은 미안함도 애틋함도 아닌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 내가 타인에게 느껴야 할 감정은 억울함이 아닌 감사함이어야 한다는 것을 늦게나마 알 수 있어서 다행이다.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역할의 번아웃 중


이제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줄기의 성장을 위해 삶을 좀 더 능동적 주체적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줄기 성장 1. 매년 내가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책을 조금씩이나마 늘려가고 싶습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사람을 대하면서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사람, 즐겨하는 취미를 조금씩 더해가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정체되지 않고 흐르도록 늘 조금 더 담아내려고 합니다.


줄기 성장 2. 줄기의 성장을 위해선 영양공급도 중요하지만 해충의 피해를 막는 것도 필요합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에 가치를 두던 시기에 더해 이제는 금기사항을 지키는 것에 철저해지려고 합니다.

--> 과식하지 않기. 의미 없는 일에 욕심내지 않기. 쓸데없는 말 하지 않기. 즉흥적으로 화내지 않기. 진실되지 않은 사람에게 시간을 투자하지 않기, 부당한 일에 참지 않기(대신 여유 있게 설명하기).


줄기 성장 3. '보이는 나'에 갇혀 살던 시절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나'로 살며 세상을 눈에 잘 담아보려고 합니다. 이런 소망으로 시작하고 싶은 일(문화사업)이 있는데 그 일을 시작할 용기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하고 싶은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싸우면 하고 싶은 마음이 이기기를 소망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끌어와 미루는 비겁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고 싶은 마음과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부딪칠 때, 타인의 시선을 따르지 않고 내면의 소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도 후회가 남지 않었으면 합니다.


그 하고 싶은 일이 모두의 선에 가 닿아 보람과 의미로 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중년을 거쳐서 노년에는,


           내 나무가 이런 모습이길 소망합니다. 사진은 pixabay jplenio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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