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것은뒤죽박죽이었고식구들은넋이반쯤나가있는상태였다. 신부는이미너무울어서눈이퉁퉁부어올라있었다. 이상황을무엇으로설명할수있을까? 실종이라고해야하나? 도피, 도망이라고봐야할까? 납치? 타임머신을타고다른세계로? 혹은블랙홀로빨려 들어갔다고억측을부리면설명이될까?결혼식 상황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아파트 CCTV를 살펴보았지만 지난밤 집에 들어오는 무영의 모습만 보일 뿐 나가는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도대체 얘가 어디로 간 거야? 죽은 거야, 살아 있는 거야?' 가족들의 시름은 깊어갔다. 무영은 부모님과 동생의 머리며 어깨를 연신 토닥거렸고 부둥켜안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족들의 깊은 한숨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무영의 마음도 타들어가고 있었다.
<3>
자고 일어나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날이 바뀌어도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무영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실의와 박탈감으로 벌써 1년을 허송세월 했다. 그림자처럼 아무 존재 가치가 없을지언정 적극적으로 현실과 맞서 싸워야겠다고 무영이 생각을 바꾼 이유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무영이 사라진 직후에는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나쁜 일을 당한 거야'라고 확신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한두 달이 지나면서 '사라진 것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추측하기 시작했다. 가설을 입증할 단서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와의 도피, 범죄조직과의 연루, 투신자살,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얘기까지 거론되는 것을 보면서 무영은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그리고 억울했다. 억울하고 또 억울했기에 오기도 생겼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겁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겁니까?... 어디 한번 해보자는 거지요?'
무영은 가족 이외에 자신을 믿어줄 사람,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믿음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생, 크게 한번 망하고 꺾이고 보니 그제야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있더라. 작게 망하면 연연해하고 자꾸 돌아보게 되기 마련이라. 망하려면 크게, 대차게 망하는 게 낫더라. 깨끗하게 포기하고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더라. 그러니 망할 것이 두려워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고 소심하게 비탄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지 말지어다...'
무영은 1년 만에 연실의 집으로 향했다. 1년 전, 아름다운 5월의 신부가 될 수도 있었던 연실이었다. 무영은 자신에게 일어난 슬픈 일에 빠져 허우적대며 연실의 안위를 챙겨볼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는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연실도 어이없기는 매한가지였을 텐데 무심했던 자신이 한심했다. 이제라도 연실을 찾아가야 했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4>
이게 다, 임자(본명:그림자. 줄여서 '림자'이지만 부를 때는 두음법칙의 적용으로 '임자'라 불렀다) 때문이다. 아니, 임자 덕분이다.
무영은 연실의 집 밖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멍! 멍!" 임자가 무영의 존재를 감지했는지 짖기 시작했다. 임자의 소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왜 그래? 임자. 밖에 누가 오기라도 했어? 아침부터 왜 이렇게 짖어대는 거야? 그만 짖어..." 연실이 임자를 나무랐지만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임자, 누가 온 거야? 반가운 사람이라도 온 거냐고?"
"멍! 멍!"
"임자, 이 옷 좀 놔. 얘가 오늘따라 무슨 일 이래? 임자, 밖에 한 번 나가 보라는 거야?"
"멍! 멍!"
"임자, 봐봐. 아무도 없잖아. 그럴 리가 없잖아. 올 사람이 없다고."
"멍! 멍!"
"그래도 나가 보라고? 맞아? 나가 보라는 거야?"
"멍! 멍!"
인터폰 화면을 뚫어져라 보아도 보이는 건 없었지만 연실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천천히 현관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순간, 임자가 현관문쪽으로 재빨리 내달렸다. 껑충껑충 뛰어오르다 뱅뱅 돌고, 거실로 돌아왔다 다시 현관으로 내달리며 기쁨에 차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댔다. 임자가 이유 없이 이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을 텐데... 연실이 거실 커튼을 열어젖히자 아침 햇살이 거실 유리창으로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왔다. 잔뜩 찡그린 얼굴을 돌려 거실을 바라보았다. 거실 바닥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와 임자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사람의 그림자가 임자의 머리를 쓰다듬는가 싶더니 숙였던 허리를 펴고 연실을 향해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무, 무영 씨?..."
무영의 모습이 발아래에서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는 일 따위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듯 무영은 햇살보다 더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FIN)
# 표지 사진: 앙리 루소(Henri Rousseau)의 ‘잠자는 집시(The Sleeping Gypsy)'
* 그리핀 박사 : 허버트 조지 웰즈의 SF 소설 <투명인간 The Invisible Man>에 등장하는 주인공
**조지 말로 : 영화 <페노메논Phenomenon>에 등장하는 주인공PhenomenonPhenomenon
작당모의 20차 문제는, '주어진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입니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첫 문장은 작당의 이공계 출신 민현 작가님이 내셨습니다. 4인 4색의 바뀐 세상,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