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당모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Oct 13. 2022

그림자 찾기

<작당모의(作黨謨議) 20차 문제(文題) :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기 >

 <1>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  사실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새벽 6시에 어김없이 일어나는 일이었다. 어제는 어둠의  터널 저편,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바뀐 '오늘' 세상이 알람 소리로 깨어나는 시간. 눈을 뜨면 항상 다른 세상에 던져진  같은 생경함이 무영(無影) 신기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른 기분이어야 했다. 오늘을 기점으로 다른 세상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알람은 경쾌한 음악소리로 바꾸어도  거북하기만  건지, 음악도 때론 소음일  있다고 무영은 생각하며 알람을 끄기 위해 스마트폰을 놓아둔 자리로 정확히 오른팔을 뻗었다. 밝은 빛을 내며 붕붕 울어대고 있는 스마트폰이 잡힌다. 알람이 꺼지는 X 표시 부분을 여러 차례 터치한다. 꺼지라는 알람도 꺼지지 않고 성가시게 걸리적거리던 안경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꺼지는 거지? 된다고 믿었던 것에 대한 반대 상황이 짜증으로 몰려왔다. 스마트폰을  낚아채듯 집어 들었다. 어라? 분명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다고 생각했는데 빈손이다. 스마트폰이 떨어지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어떻게 빈손일  있지?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는 의외의 상황에 두려움이 잠시 스쳤다.

 

  무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번에는 없다. 보이는  침대 위에 헝클어진 이불뿐, 사람의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내가 나를 본다면 눈에 들어오는  다리여야 한다. 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몸통도 보이지 않고 손도 보이지 않는다. 머리를 흔들고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안의 모든 사물은  그래로 인데 ', 이무영'이라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것을 봤다는 사람들 얘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자신이  보이는 현상을 겪었다는 사람은 보질 못했다. 유체이탈이라는 것도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나 분리되는 현상으로 자신의 모습을   있다고 하지 않는가. 어떻게 이럴  있지?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며 무영은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갑충으로 변해 있더라는 어느 소설  주인공이라도  거야, 뭐야?

 

  거울에도 사람의 형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얼굴이 만져지고 어깨가 만져지고 팔다리를 움직일  있는데, 볼을 꼬집으면 꿈이 아닌 현실에서처럼 '!'소리 나게 아픈데 모습과 형체만 사라지는 일이 가능한 일인가. 확인이 필요했다. 무영은 식구들 눈에도 자신이 보이지 않는지 알고 싶어졌다. 거실로 나가기 위해 방문 손잡이를 조심스레 그러쥐었다.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쥐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손잡이는 돌려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무영의 호흡은 점점 거칠어졌다. 세차게 방문을 쾅쾅 주먹으로 내리치고 분노에  발길질을 해댔다. 손과 발이 심하게 아파왔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무영은 침대 끝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누군가 방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밖으로  발짝도 나갈  없는 무력한 존재가 되어버렸잖아. 투명인간은 사물을 움직일 수도, 문과 벽을 통과할  있었던  같은데... 나는  그런 능력도 주어지지 않은   따위 몸뚱이로 변해 버린 것일까?'

 

  "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에 대한 상상을   적이 없습니다. 도깨비감투 같은 것을 탐해  적도 없고 그리핀 박사*처럼 과학적인 힘을 흠모해  적도 없습니다. 조지 말로**처럼 번개를 맞고 천재 소리를 듣게 되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머리에 생긴 종양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인생에 요행을 바란 적도 없습니다. 마법 같은 이야기는 더더욱 관심 밖이었고요. 눈에 보이지 않게 됨으로써 책임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꾼 적도 없습니다. 우리를 구속하는 도덕과 규범을 벗어나 충동과 본능에 따라 자유롭게 살고자 간절히 바란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합니까?... 게다가 오늘은 저의 결혼식 날이잖아요... 이런, 빌어먹을..."

 무영은 눈을 감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2>

  결혼식날 아침인데도 무영이 일어나지 않자 무영의 엄마, 순영은 노크도 없이 무영의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무영아, 일어나야지, 뭐하니?... 어? 얘가 벌써 일어나 나갔나?... 정희야, 오빠한테 전화 좀 해봐라..."


  너를 만나  행복했어.  이토록 사랑할  있었던 . 아직 어리고 모자란  , 따듯한 이해로  안아줘서~(무영의 스마트폰 알람 소리.  킴의 <너를 만나>)


 "아이, 뭐야? 오빠 핸드폰 방에 있잖아. 화장실에 있는  아냐? 아님 차에  실을  있었나?" 정희가 방으로 화장실로 주차장으로 무영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무영을 찾지 못하자  가족은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한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신부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으로 무영 씨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며 되물었다. "아마 샵으로 바로 갔겠지? 계속 연락해보마..." 순영은 예쁜 모습으로 식장에서 보자는 말을 남기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무영의 친구들에게 전화가 돌려졌지만 무영의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을  없었다. 결국 결혼식이 시작되는 12시까지 무영은 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뒤죽박죽이었고 식구들은 넋이 반쯤 나가 있는 상태였다. 신부는 이미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상황을 무엇으로 설명할  있을까? 실종이라고 해야 하나? 도피, 도망이라고 봐야 할까? 납치?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세계로? 혹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고 억측을 부리면 설명이 될까? 결혼식 상황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아파트 CCTV를 살펴보았지만 지난밤 집에 들어오는 무영의 모습만 보일 뿐 나가는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도대체 얘가 어디로 간 거야? 죽은 거야, 살아 있는 거야?' 가족들의 시름은 깊어갔다. 무영은 부모님과 동생의 머리며 어깨를 연신 토닥거렸고 부둥켜안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족들의 깊은 한숨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무영의 마음도 타들어가고 있었다.

 

<3>      

  자고 일어나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날이 바뀌어도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무영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실의와 박탈감으로 벌써 1년을 허송세월 했다. 그림자처럼 아무 존재 가치가 없을지언정 적극적으로 현실과 맞서 싸워야겠다고 무영이 생각을 바꾼 이유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무영이 사라진 직후에는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나쁜 일을 당한 거야'라고 확신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한두 달이 지나면서 '사라진 것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추측하기 시작했다. 가설을 입증할 단서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와의 도피, 범죄조직과의 연루, 투신자살,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얘기까지 거론되는 것을 보면서 무영은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그리고 억울했다. 억울하고 또 억울했기에 오기도 생겼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겁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겁니까?... 어디 한번 해보자는 거지요?'

무영은 가족 이외에 자신을 믿어줄 사람,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믿음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생, 크게 한번 망하고 꺾이고 보니 그제야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있더라. 작게 망하면 연연해하고 자꾸 돌아보게 되기 마련이라. 망하려면 크게, 대차게 망하는 게 낫더라. 깨끗하게 포기하고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더라. 그러니 망할 것이 두려워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고 소심하게 비탄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지 말지어다...'

 

  무영은 1년 만에 연실의 집으로 향했다. 1년 전, 아름다운 5월의 신부가 될 수도 있었던 연실이었다. 무영은 자신에게 일어난 슬픈 일에 빠져 허우적대며 연실의 안위를 챙겨볼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는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연실도 어이없기는 매한가지였을 텐데 무심했던 자신이 한심했다. 이제라도 연실을 찾아가야 했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4>

  이게 다, 임자(본명:그림자. 줄여서 '림자'이지만 부를 때는 두음법칙의 적용으로 '임자'라 불렀다) 때문이다. 아니, 임자 덕분이다.

 

  무영은 연실의 집 밖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멍! 멍!" 임자가 무영의 존재를 감지했는지 짖기 시작했다. 임자의 소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왜 그래? 임자. 밖에 누가 오기라도 했어? 아침부터 왜 이렇게 짖어대는 거야? 그만 짖어..." 연실이 임자를 나무랐지만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임자, 누가 온 거야? 반가운 사람이라도 온 거냐고?"

 "멍! 멍!"

 "임자, 이 옷 좀 놔. 얘가 오늘따라 무슨 일 이래? 임자, 밖에 한 번 나가 보라는 거야?"

 "멍! 멍!"

 "임자, 봐봐. 아무도 없잖아. 그럴 리가 없잖아. 올 사람이 없다고."

 "멍! 멍!"

 "그래도 나가 보라고? 맞아? 나가 보라는 거야?"

 "멍! 멍!"

인터폰 화면을 뚫어져라 보아도 보이는 건 없었지만 연실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천천히 현관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순간, 임자가 현관문쪽으로 재빨리 내달렸다. 껑충껑충 뛰어오르다 뱅뱅 돌고, 거실로 돌아왔다 다시 현관으로 내달리며 기쁨에 차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댔다. 임자가 이유 없이 이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을 텐데... 연실이 거실 커튼을 열어젖히자 아침 햇살이 거실 유리창으로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왔다. 잔뜩 찡그린 얼굴을 돌려 거실을 바라보았다. 거실 바닥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와 임자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사람의 그림자가 임자의 머리를 쓰다듬는가 싶더니 숙였던 허리를 펴고 연실을 향해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무, 무영 씨?..."


  무영의 모습이 발아래에서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는 일 따위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듯 무영은 햇살보다 더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FIN)



# 표지 사진: 앙리 루소(Henri Rousseau)의 ‘잠자는 집시(The Sleeping Gypsy)'

* 그리핀 박사 : 허버트 조지 웰즈의 SF 소설 <투명인간 The Invisible Man>에 등장하는 주인공

**조지 말로 : 영화 <페노메 Phenomenon>에 등장하는 주인공 Phenomenon Phenomenon


작당모의 20차 문제는, '주어진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입니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첫 문장은 작당의 이공계 출신 민현 작가님이 내셨습니다. 4인 4색의 바뀐 세상,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매거진의 이전글 당면의 전성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