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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신물러 Oct 16. 2019

어쩌다 보니, 프랑스에 살고 있습니다

이민자 파티시에 맞벌이 주부. 몇년 전만 해도 상상해본 적 없는 수식어들

얼떨결에 실현된 파리지앵이라는 로망


"어머, 이제 넌 파리지앵인 거야? 멋있다"

"프랑스남자가 그렇게 로맨틱하다던데~ "

"와 요즘같은 시대에 결혼이라니. 하긴 유럽이니까! 거긴 나라에서 애도 다 봐준다며"


작년 이맘 즈음, 프랑스남자와 결혼해서 파리에 살게 됐다고 했을 때 지인들이 한 말들입니다.

파리에 살고싶다고 바라본 적도 없고 국제결혼을 목적으로 프랑스 유학을 온 것도 아니지만,

저는 '남자 잘 만나 결혼이민에 성공'한 케이스가 돼버렸습니다.


우리 머리 속 파리지엔  ⓒ pixabay
그리고 파리지앵의 일상 ⓒ pixabay

그리고 일년, 지금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없습니다. 

잡지 블로그에서 소개하는 파리 필수 여행코스며 미슐랭 레스토랑, 마카롱 바게트 맛집, 명품 브랜드, 코스메틱 부티크까지 마음만 먹으면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고요.

따뜻해지면 공원 피크닉, 여름이면 마당 바베큐, 추워지면 라클렛 치즈파티로 이어지는 먹방도 사랑합니다.


아무도 눈치보지 않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즐겁고 (너무 멋지셨는데 초상권을 위해 조금 가려봅니다)
한 여름의 베란다 바베큐 그리고 와인은 사랑
별거 없어도 피크닉이랍시고 야외에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시댁에 놀러가면 요리는 은퇴하신 시아버지 담당(최근 인터넷 레시피 따라잡기에 심취하심), 설겆이는 식기세척기가 하고, 저와 남편은 이것저것 권하시는 시부모님 덕에 과식에 과음까지 하고 돌아옵니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이것저것 나르고 닦고 치우려고 했지만 온 가족이 저를 이상하게 보며 불편해하길래 그만 하기로 했습니다. 시댁식구들에게 저는 '일손'이 아니라 '손님'이었습니다. 시어머님은 '손님'이 자신의 주방에 들어오는걸 낯설어하셨습니다. 

남편은, 물론 국적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지요. 풀어갈 이야기 보따리가 많아요 하하.

하지만 여느 프랑스인들처럼 아침저녁으로 '비쥬'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친구들 모임이나 회식자리에도 저와 같이 가고싶어하는 '가족주의자'입니다. 주방에선 별 도움이 안 돼도 제가 요리를 하고 있으면 청소 빨래쯤은 사부작사부작 해놓습니다. 남편의 급여가 저보다 훨씬 많지만 제가 육체적으로 더 고된 일을 한다는 이유로 집안일은 남편이 더 많이 맡아 하는 편입니다. 


써놓고 보니 이 무슨 꿀 빠는 결혼생활이고 타향살이인가 싶네요.

문제는 이게 전부는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갇힌 곳, 개미지옥이 아니라 파리지옥


정확하게 말하면 저는 이곳에서 '계급하락'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소위 괜찮은 대학 인기학과를 나왔고, 핫하다는 서울 중심부 전세집에 살았고, 

청담동 스타일까진 아니어도 화이트칼라스러운 모양새로 멀쩡한 직장에 다니던 20대 여성. 

사회이슈, 대안 문화에 관심을 갖고, 소셜모임에도 활발히 참여하면서 하고싶은 것 하며 살던 시절. 

대단하진 않아도 주눅들 일은 없이 살아왔는데... 

이제 그 자아상, 사회적 위치는 더 이상 제 것이 아닙니다.  


저는 길거리 노숙자들도 '니하오' 하며 낄낄거리는 아시아 유색인종이고,

또래나 가족들과의 대화 수위가 조금만 높아져도 말귀를 못알아듣고

화나는 일에도 따져 물을 언어능력이 부족해 입을 다물고 마는 이방인입니다.

파티시에라는 이름의 육체 노동자이며, 

저보다 열살쯤 어린 상사 밑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을 해왔습니다.

이민자 많은 파리 변두리의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예의와 교양이란 접해본 적 없는 듯한 유색인종들에게 

매일 암내빵 어깨빵을 맞으며 출퇴근을 합니다. 

(앞으로 풀어갈 기가 차고 빡이 치고 어이가 없는 대중교통 에피소드들도 기대해주세요)


내가 타는 트람 앞 풍경. 마트 카트 위에 불을 피워 꼬치를 파는 이민자들. 출처 : facebook @saintdenisbrochettesgare
내가 타는 rer역의 흔한 풍경 ⓒ le parisien



쎄라비C'est la vie, 사는게 다 그런 거라고?


프랑스 남부에서 2년, 파리에서 1년. 프랑스에서 총 3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처음엔 와, 이렇게 두 나라 문화가 다르네 재밌고 신기해했었던 것들도

이제 이방인이 아닌 생활인의 눈으로 바라보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다.


한국에선 발벗고 나서서 지지했던 파업도 신물이 나고

머리론 백번 옳다고 여겼던 이민자 지원이나 호구마냥 퍼주는 저소득 복지정책, 

편한대로 악용되는 인종평등주의와, 무신경과 동의어인가 싶은 똘레랑스(관용주의)도 신물이 납니다. 

이게 다 사회 정치 역사에 대한 저의 견문이 짧아서 하는 말일 지도요.

프랑스인들이 흔히 하는 말 쎄라비C'est la vie(That's life!)처럼

누군가는 사는게 다 그런거라고, 이제 니가 인생의 민낯을 보는 거라고 할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연코 저는 

이 짧은 생을 정신승리하며 살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글을 씁니다.

나름대로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고  

조금은 까칠한 나의 시각으로 때론 감탄하고 때론 투덜대는 타향살이 이야기를 나누고 

또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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