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 10개월을 앞두고
부산스러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고요하게 아침을 맞이하고 싶어서 5시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나 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 엄마의 빈자리를 금세 알아버리는 우리 집 친구들 덕에 아침에 잠을 더 자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둥그런 찐빵 같은 얼굴들이 내 시야를 가린다. 눈을 슬며시 떴더니 배시시 웃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보인다. 우리 집 큰 친구가 갑자기 “엄마!”하고 냅다 고함을 지른다.
아 , 귀가 아프다.
그래도 부르는 이유가 궁금은 하여 왜 부르냐 물으니 속삭이며 이야기를 건넨다.
“사랑해-”
하마터면 귀 아프다며 나도 고함을 지를 뻔했는데 , 그랬다면 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백을 듣지 못했을 테지. 누워있던 채로 기지개를 켜고 반바퀴를 빙그르르 돌아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우리 집 친구들이 삼삼오오 내 곁으로 모여서 같은 포즈를 취한다. 아침에 하는 기도는 아이들이 듣지 않았음 해서 고요하게 마음속으로 말을 이어간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선물로 주신 오늘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하루의 삶에도 주님이 주신 작은 기쁨들을 꿰어 갈 수 있는 날이 되게 해 주시고
우리 아이들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너른 마음을 주세요.
사랑으로 품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감정이 요동치고
마음이 일렁이는 날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폭풍 같던 바다를 잠잠케 하셨던 주님,
저의 인생의 폭풍에게도 그렇게 말씀해 주세요.
저에게 평안을 주세요.
염려가 줄어들고 그 자리에
믿음이 더욱 자라나게 해 주세요.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제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저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시 23:4)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결코 저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히 13:5)
오늘의 삶에도 주님 동행하심을 온전히 느끼는 날이 되게 해 주세요.
무기력해지고 싶지 않아요.
우울감에 잡아먹혀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에게
감정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오늘 하루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가 끝나고 ‘아멘’ 하는 소리에 아이들이 고개를 슬며시 들며 ‘아멘!’이라며 복창을 한다. 내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다니 , 나보다 인내심이 좋은 게 분명하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눈을 맞춰야지.
하나님은 당신을 막지 않으신다. 잠시 기다리라거나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목소리르 듣기 좋아하신다. 언제나, 그분은 당신이 부르짖을 때 숨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를 들으신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고,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합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여기서 바울은 염려에 대해 무언가 조치를 취하라고 우리에게 요청한다. 이제까지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자비와 임재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제 우리가 이 믿음에 의거해 행동할 차례다.
우리는 절망하는 대신 기도 할 수 있다.
기도할 때 평안이 찾아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다.
하나님 ‘으로부터 의’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 ‘의’ 평안이라는 데 주목하라. 하나님이 천상의 고요를 주심으로써 우리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평안을 누린다. 불안한 상황에서도 불안해하지 않고 화나는 상황에서도 위로를 받는다. 하나님의 평안은 모든 논리와 계획을 뛰어넘는다. 이런 종류의 평안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위로부터의 선물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 맥스루케이도>-중에서
누군가는 그런다.
널 사랑한다 넌 예수는 왜 네가 우울증에 걸리도록 냅 둔 거냐며.
예수가 있다면 , 우울에 절망하는 너를 왜 그대로 둔 거냐며.
그러게.
왜 그렇게 두셨을까.
하지만 명확한 것은 ,
기도를 하고 난 뒤의 아침은 조금 다름을 알 수 있다.
오늘도 예수님 덕분에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