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맹수봉 Jan 16. 2023

우울증 환자는 계속 우울하기만 할까?

우울증치료 294일


며칠 전,

넷플릭스에서 더 글로리를 몰아보고 있을 때였다.

몇 화쯤이었을까 , 가정폭력으로 얼굴과 마음이 얼굴덜룩한 강현남(염혜란 배우님)은 이런 주옥같은 대사를 날렸다.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


한참을 웃었다.

어패가 있는 말 같지만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얼마 전,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우울증이 있는 얼굴 같지가 않아”


그 이야기를 듣고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우울증 진단을 받고 주변 지인 몇과 가족들에게 알렸을 때에도 도통 믿지 않는 얼굴들이었다.


그래 맞다.


“난 우울증이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적당히 나를 표현하는 한줄이 될 것 같다.



‘우울증’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편견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날은 우울하기도 하고 , 또 어떤 날은 화가 치솟기도 하며, 또 어떤 날엔 무척이나 예민하기도 하며 , 또 그 어느 날엔가는 그럭저럭 괜찮은 날들을 이어간다. 우울증 같은 기분장애가 있다고 해서 늘 다크모드만 있지는 않다. 다양한 감정들이 버무려져 있는 ‘생동감 있는’ 삶을 살아간다. 약 잘 먹고 그럭저럭 괜찮은 날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몇 달 전 재밌는 모임을 시작했다.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이 우울증 환자에게 매우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칭찬카톡방을 만들었다. 나까지 4명이서 매일매일 본인을 칭찬하고 박수를 치는 다소 낯간지러운 모임이다. 여기 모인 네 명은 각자의 사정으로 깊이와 정도가 다른 기분장애를 안고 사는데 , 생각보다 다들 푼수이고 말이 많으며 본인이 꽂힌 분야에 열정이 있다. 더불어 감정의 깊은 골짜기까지 체험했던 사람들이라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우울공감치가 최상이다. 그러다 보니 유쾌하고 진득한 만남들이 이어진다. 종종 쎄-한 날이 있긴 하지만 우리 넷은 결코 늘 화가 나있고 우울하지만은 않다.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피어나는 새싹이 경이롭듯 , 우리 삶의 혹독한 겨울 속에서 이따금 피어나는 기쁨과 사랑과 평온함의 싹을 만난다면 더욱 귀하게 여기는 이들이다.


기분장애가 있지만 명랑한 신여성들이랄까..?

(명랑한 신여성 말고 , 명랑한 년이라고 해야 찰지게 라임이 맞겠지만 저 모임에서 제가 제일 막내이므로 .. 말잇못..)




‘저 당뇨약 먹어요’
‘저 우울증 약 먹어요’



내 입장에선 다를 바 없는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다른 무게를 가지고 날 바라봐주신다. 하긴 , 심지어 나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종종 있는 걸. 여러 이유로 뇌호르몬이 불균형 해졌고 그걸로 인해 아플 뿐인데 ‘왜 나는 이따 위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백세시대를 살아가면서 복용 중인 약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 같이 약빨로 살아가는 인생에서 너무 색안경을 끼고 바라봐주지 않았음 한다. 나 스스로도 본인을 그렇게 바라보지 않기로 다짐한다.


“야 너두 아픈거야. 어깨펴 .

당당해지라고.

뭐 잘못한것도 아니잖아”


당뇨를 처음 진단받으면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면서 수시로 혈당체크를 하며 삶의 발란스를 맞추어 간다. 몸에 해가 되지 않는 적정 혈당 수준을 찾아간다. 너무 저혈당에 빠지지 않도록 공복에 운동을 하지 않으며 , 혹여나 저혈당이 오면 저혈당쇼크로 쓰러질 수 있으니 사탕을 가지고 다닌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는 혈당이 얼마나 오를지 감안하여 음식의 양을 정한다. ‘이 정도 먹으면 괜찮겠지? 다 먹은 후에는 산책을 좀 하면 되겠다.’ 그렇게 혈당을 조절해 간다.


우울증을 진단받게 되면 어떤 상황에 마음이 일렁이는지를 나의 감정을 체크해 본다. 기록을 하고 되돌아보며 내가 힘들 것 같은 상황들을 줄이도록 노력을 한다. 피할 수 없다면 그 이후에 마음에 쌓여버린 감정의 쓰레기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해 본다. 나의 기분들을 조절해 간다. 조절되지 않는 날들이 많아 벅찰 때도 있지만 , 자고 있는 아이들의 말캉한 손을 한번 잡아보고 아이들의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조심히 쓸어 올리며 따듯한 온기를 채워간다. 맛있는 술을 한잔 들이키며 과자를 우적거리며 예능프로그램을 하나 본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우울증이지만 명랑한 년”이 되어간다.



-

덧,

공황장애 동생에게 따듯한 온기를 채워가는 존재는 ‘고양이’라고 한다. 그렇게 3마리가 되었고 , 그들 덕분에 작은 기쁨들을 꿰어가며 괜찮은 날을 보내기도 한다고 전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증도 재활치료를 해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