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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Jan 12. 2023

우울증도 재활치료를 해야지.

우울증 치료 290일


나는 통제형 사람이다.

내게 주어진 상황들이 통제가  될 때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는 약간 변태 같은 타입이랄까. 그래서 아이들을 양육함에 있어 아이들을 과도하게 통제하지 않고자 타인에 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렇게 노력을 갈아 넣었음에도 나중에 아이들이 “엄마 왜 그렇게 우리를 쥐었다 폈다 통제했나요?ㅇ_ㅇ?”라고 묻는다면 뭐 할 말은 없지만 어쨌든 내 최선의 노력을 실시하고 있는 중이다.


통제되지 않는 상황들이 들이닥치면 , 불안감이 일렁인다.


그래서 내과병동에서 간호사를 했을 때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매일 같은 루틴이 돌아간다고는 하지만 내과특성상 불안정한 환자분들이 많이 계셔서 언제 응급상황이 닥칠지 모르고 언제든 죽음이 찾아올 수 있으며 , 언제든 돌발상황에 대처를 해야 했다.


아 ,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몰려오는 기분이다.


오늘은 약간 컨디션이 저조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던 것 같지만 전날 저녁에 먹고 잤던 와인이 범인 일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마도?.. 열심을 내어 우리 집 큰 친구를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작은 친구랑 놀고 있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전세대출 금리가 올랐었잖아. 근데 오늘 통장에서 ()!&*$!%&($ 원이 나갔어”


ㅇ_ㅇ.. 네..?

이자가.. 그만큼이나 나갔다구요..?

(뒷목잡는 소리)


다행히 이번달은 신랑의 보너스 달이라 급여가 좀 더 나와서 급한 불은 해결되었지만 당장 다음 달부터가 걱정되었다. 더불어 통제되지 않는 이 상황이 미칠 것 같았다. 24개월이 된 우리 집 작은 친구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다시 일을 해볼까? 하는 마음에 구인공고를 둘러보았다. ‘하고 싶은 것’ 보다는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찾아보았는데 역시나 할만한 것이 없었다. 일단 집 근처 병원은 대부분 주 6일이었는데 토요일에 남편이 출근을 하게 되면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없었다. 병원뿐만 아니라 범위를 확장해서 주중에 할 수 있는 알바들도 훑어봤지만 , 하고 싶은 것은 고사하고 할 수 있는 일들 조차 마땅히 없었다.


지금 쓰는 돈에서 아껴 쓴다고 해도 빠듯하다. 물가는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고 , 이미 줄일 수 있는 소비들은 많이 줄인 상태이다. 나.. 파마는 언제했었지..?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다는 마음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아 , 내 통제권 밖의 일들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통제되지 않는 상황은 나의 불안도와 긴장도를 높였다. 그렇다는 건 나는 지금 스트레스를 몹시 받는 상태라는 것. 그렇다는 것은?!!!??? 우울증 증상이 심화된다는 것.


우리 집 큰 친구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왔다. 큰 친구 작은 친구 그들이 하나로 뭉치면 캡틴플레이, 캡틴플레이.. 하하 . 온 집안을 쑤석거리며 사고를 치고 다닌다. 밥 먹다가 신나서 춤도 추고 어디서 물조리개를 찾아와서 사방을 물천지로 만들었으며 그 사이에 응가도 해서 기저귀도 갈아드렸다. 하하하 표정관리가 안된다. 결국 와인 한잔을 들이켜고 취기가 살짝 올라오고 나사가 살짝 풀려서야 아이들 텐션에 맞춰줄 수 있었다. 그것도 간신히.


아이들을 재우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앞날이 캄캄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미안스러워지면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다시금 부정적인 정서가 나를 덮어갈 무렵  ‘ 디스크 환자가 수술 후  퇴원을 하고 일상생활을 하던 중에 무리한 일을 하면 허리 아픈 게 당연하잖아? 그럼 우울증인 나는 무리한 일들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당연히 정서가 흔들리고 우울증 증상이 심화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닌 거 같은데?’


무리한 일로 허리가 아프면 진통제를 먹고 , 그래도 안된다면 병원을 가서 다시 진찰을 받아봐야 한다.


응당 나도 그럼 되는 것뿐이다.


얼마 전 나 혼자 산다에서 개그우먼 박나래 님이 십자인대를 수술하고 그 이후의 과정들 보여주었던 적이 있었다. 다리가 굽혀지지 않게 부목으로 다리를 고정하고 있었는데 , 낑낑 거리며 병원에 가서는 운동기구에서 무릎을 ‘일부러’ 굽히는 과정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조금 굽혔고 후에는 조금씩 더 굽혀갔는데 점점 더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는 박나래 님의 표정이 기억에 남았다. 별것 아닌 무릎 구부리기에 땀을 뻘뻘 흘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릎이 굳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간다고 했으며 그 모든 과정을 ‘재활치료’라 하였다.


일상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고통을 견뎌내는 ‘재활’의 시간이었다.


‘아 , 내 우울증도 재활의 시기를 겪어내야겠구나’


스트레스가 없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날들만을 살아갈 수는 없다. 스트레스 상황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걸 넘어서야 비로소 내 우울증은 더욱 안정기로 접어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게는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상황들이겠지만 , 내겐 무릎 구부리기 그 이상의 일들로 다가오는 날들이 많다. 조금씩 조금씩 구부려 나가다 보면 박나래 님처럼 어느 날 인가는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겠지.


본격 우울증 재활치료 시기로 돌입해보자.

으쌰으쌰



그래서 결론을 내려보았다.


1. 그럼 단기 알바를 하자!

2. 쿠팡을 가볼까? 날짜 선택하기가 좋네!

3. 이 근처 쿠팡은 악명이 자자하던데? 처음 하는 건데 잘할 수 있을까? 실수하면 어쩌지? 또 걱정하기 시작.

4. 아! 나는 쿠팡에 글감 소재를 얻으러 가는 거다! 열심히 할 거지만 , 실수?!? 그래 뭐 ! 할 수도 있지! 그럼 재밌는 소재거리가 또 늘어나겠네. 하하하

5. 정신승리를 해내고 나니 조금 후련해졌다.

6. 다음 주에 남편 쉬는 날 다녀오기로 했다.

7. 후기는 to be continue..





친구들! 엄마가 돈벌어 와서 딸기 많이 사줄께

여보! 걱정마 내가 돈벌어와서 대출이자 같이 내자


와우 멋지다 나 자신.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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