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 287일
병원에 다녀왔다.
선생님은 나의 최근 근황을 물으셨다. 호르몬에 좀 예민하게 반응하는 평범한 한국여성 같다.라는 이야기를 드렸다. 평범하다 / 평범하지 않다 뭐 이런 식으로 나누고 싶지는 않지만 , 따로 선택할만한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혹시 너무 극과 극을 오가나요?”라고 선생님은 물으셨다.
“완전 극과 극은 아니지만 , 괜찮을 때는 한없이 괜찮고 생리하기 8-9일 전부터 생리 하루이틀 전까지 호르몬 때문에 우울해지는 시기에는 얘좀 왜 이래?라고 생각할 정도로 티가나요”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가만 생각을 하시더니 , 보통 그렇다면 다른 계열의 약을 추가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먹고 있는 약 용량도 그렇게 적은 건 아니기 때문에 일단 지금 약을 유지해 보자는 결론을 내셨다. 나중에 약을 줄이는 시점이 되면 그때 다시 논의를 해보기로.
최근 들어 일상이 어땠냐 물으셨다.
“토요일 아이 둘을 온전하게 혼자 보고 있는데 많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그 버거운 감정을 인정해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예전에 아이들 둘을 가정보육을 길게 했을 때, 분명 버거웠을 텐데.. 아니라고 부정을 했던 것 같고요.엄마면 이정도는 참아야지?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것 같아요.”
할 말이 없어서 생각나는걸 그저 말했을 뿐인데 , 좋은 변화 중 하나라고 하셨다. 왜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내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해서 그런 걸까? 여하튼 나는 정신없이 시끄러운 환경에는 오랜 시간 노출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누누이 말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과 아이들이 내는 굉장한 소음까지도 모두 사랑하는 것은 별개라는 사실과 , 그것까지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고자 하는 노력이자 방법이라는 사실.
그래서 요즘엔 ,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의식적으로 혼자의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을 한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오전에는 우리 집 작은 친구가 낮잠을 자면 큰 친구가 영어영상을 보는 시간인데 , 그때 조금 쉬어가고 오후에는 간식을 먹여놓고는 그냥 내 책을 펼친다. 그리고는 한 30분 정도를 읽어간다. 그러다 보면 내 곁에도 와서 앉아있다가 가고 둘이 놀기도 하고 알아서들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이 놀아달라 채근하면 엄마는 긴 바늘이 육이 올 때까지 책을 읽고 싶으니까 조금만 놀면서 기다려달라 요청을 했다. 그래야 나도 숨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오늘의 나를 받아들이고 작은 기쁨을 꿰어가며 성실히 살아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역시나 오늘도 3주 치 약을 받아왔다.
지금 먹는 약을 앞으로 못해도 6개월은 더 먹어야 할 것 같다. 내게 잘 맞는 용량의 약을 찾고 나서부터 6개월이라는 시간. 무탈하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아니 , 작고 작은 일들이 생겨도 내가 무탈히 흘려보내기를 바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작년에 우울증 치료를 받지 않고 그대로 시간을 흘려보냈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약간 오싹했다.
가정파탄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랄까. 관계가 어그러져서 그 화살을 더욱더 나에게 돌리고 나는 더 우울함으로 끌려 들어갔을 테지. 그런 걸 생각해 보면 , 나쁘지 않았던 부부관계도 더욱 좋아졌고 아이들과 사이도 더 돈독해졌으니 이만하면 치료는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친정엄마찬스로 2년? 만에 카페에서 데이트를 하는 호사를 누렸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 카페를 오고 가는 길에는 따듯하고 커다란 남편의 손이 다정하게 내 손을 잡아 본인의 점퍼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익숙한 온기.
그 온기에 차가웠던 손끝이 녹아내리며 마음 가득 행복이 피어올랐다.
행복이 미래에만 있다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가 없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행복이 과거에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과거는 이미 사라져 없어졌기 때문에 과거의 행복도 있을 곳이 없다.
그러면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행복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현재뿐이다.
지금 여기에 있는 행복이 행복이다.
(중략)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을 목적으로 삼고 인생이 그 행복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장과 노력의 과정 속에서 행복을 찾아 누려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며 옳은 일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예수는 가르쳤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같은 여건에서도 감사와 자족을 누릴 수 있으며, 의를 위해 수고하는 사람은 그 수고가 성장과 발전의 과정이기 때문에 남이 모르는 행복을 누리게 된다.
-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김형석> 중에서
치료가 잘 되고 있는 걸까?
나는 앞으로 약을 줄이고 , 끊을 수 있을까?
또 우울증에 걸리면 어쩌지? (약을 끊기도 전에 걱정 ㅋㅋ)
그런 걱정보단 ,
그저 오늘에 숨어있는 작은 기쁨들을 찾아 꿰어나가야지.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이 거지 같으면 오늘 하루가 이미 망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 그럼에도 순간을 비집고들어오는 아이의 따듯함을 기억해 보기로 한다. “엄마 피곤해? 그럼 잠시만-“ 하고는 부스럭거리면서 믹스커피를 타다 주는 나의 고운 아이들.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그 사이에서 춤을 추는 아이들을 혼내는 대신, 집 치우는 건 오후의 나에게 미뤄두고 함께 춤을 춰야지.
그러다 종종 힘든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면(내가 자주 하는 말로는 “빡치는 날”을 마주하게 된다면)
코인노래방이나 가야겠다.
“잔인한~ 여자라~ 나를 욕하지는 마~” 아는 사람만 안다는 전설의 노래를 불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