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 308일 , 나의 멘탈을 지켜라.
나는 여전히 생리전증후군이 힘들다. 우울증이 한참 심할 때보다야 좀 나아졌지만 , 그럼에도 여전히 괴롭고 벅차다. 온몸을 지배하는 무력감과 두통,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예민함. 겨울이 되고 자전거 타기와 달리기를 못하니 더 극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그러나 겨울은 끝나고 또 봄은 오겠지. 그런 마음으로 견뎌내 본다.
아침에 눈을 뜨니 하루가 또 시작된다. 아침을 너무 정신없이 보내버리면 오전이 힘들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닫게 되어 가급적이면 여유롭게 움직이도록 노력을 하는 중이다. 그러나 생리 전증후군에 묵살당해 버린 나는 여유롭고 자시구고 일어나서 아이들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물론 자극이 감정으로 이어지는 게 주된 경로이긴 하지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의 ‘가정 원칙 As If principle’에 따르면 우리의 행동 또한 역으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불쾌한 일을 당하면(자극)
화가 나고(감정)
화풀이를 하는 게 통상적인 반응이지만(반응 행동),
그런 상황에서(자극)
일부러라도 “하하 호호” 하고 웃는다면(결정 행동)
거짓말처럼 기분이 괜찮아진다(감정).
이 말은 내가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겁니다. 수동적으로 감정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감정을 결정할 수 있다는 거죠.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중에서
뭐시라. 내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벽에 써붙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 안아주기”
나에게는 아침에 강제적으로 일어나는 것 자체가 자극이기 때문에 결정행동으로 “아이들을 안아주는 것”을 해보기로 했다. 가당키나 한 소리인지 아닌지는 해보면 아는 거니까?
여전히도 힘겹게 몸을 일으켜야 했던 생리 전 증후군의 짓눌린 아침, 작은 친구를 꼭 안아주니 품에 쏙 들어오면서 말랑거리는 아이의 볼이 내 볼에 닿았다. 그걸 본 큰 친구도 우다다다 달려오더니 내게 안긴다. 이젠 제법 남자아이의 냄새가 난다. 우리 집 큰 친구는 키가 큰 만큼 길어진 팔로 나를 휘감아 준다. 옆으로 밀려났던 작은 친구는 다시 틈바구니로 들어오려고 낑낑거린다.
둘을 다 끌어안고 깊은 심호흡을 해본다. 방금까지만 해도 무채색의 인간이었던 나는 아이들의 온기로 거짓말처럼 기분이 나아졌다. 힘을 쥐어 짜내어 호들갑을 떠며 사랑한다고 열번정도를 말하고 아이들의 두 볼을 오고가며 여러번 뽀뽀를 해주었더니 꺄르륵거리고 웃는다. 아침부터 퍼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쁘지 않다.
감정의 컨트롤이 이루어진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온기가 내 어둠을 밀어내어준 것 같다. 말랑거리는 5분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다시금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할 힘이 생겼다. 잔잔한 피아노찬양을 틀고는 아이들의 아침을 챙겨 먹여 어린이집 등원을 시켰다.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집에서 날 반기는 것들은 뒤죽박죽 엉망인 스윗마의하우스.
감정이 뒤틀리고 집에 있는 물건들을 다 내다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렁였다. 정돈되지 않은 집은 내게 폭발적인 자극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까지 예민하지 않은데 유독 이 무렵의 생리 전증후군이 어째서 인지 나의 호르몬들을 더욱 들끓게 만들었다.
우리의 뇌는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상황을 해석하고 그에 걸맞은 행동 지침을 내리는데, 그중 하나로 우리가 어떠한 자세를 취하고 어떠한 행동을 하는지도 관찰합니다.
자극도, 행동도 모두 다 내 감정에 영향을 끼칩니다.
실패 자극은 나를 우울하게 해요(자극 감정).
우울감은 나를 웅크리게 만들죠(감정 행동).
뇌는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행동을 캐치하고 내가 패배했다고 판단해, 나를 한층 더 우울하고 소극적으로 만듭니다(행동 감정 강화 행동 강화). 그래서 실패했을 때, 자신감이 없을 때, 우울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역으로 승자의 행동과 태도를 취함으로써 내 감정을 스스로 결정하는 겁니다.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감정을 이끄는 거죠.
힘들겠지만 죽을힘을 다해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폭풍 샤워를 하세요. 한껏 꾸민 뒤 집을 나서 내가 좋아하는 거리를 구경하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인기 있는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드세요.
좋은 일이 있는 사람처럼 더 밝게 행동하세요.
그러면 우리 뇌가 이러한 패턴을 분석해서 상황이 좋아졌다고 판단하고 승자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serotonin을 방출합니다. 내가 적극적일수록, 더 많이 웃을수록, 더 당당할수록, 더 빨리 우울감이 사라지고 기분이 한결 더 나아지게 돼요. 나는 이 감정을 통제할 수 없고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중에서
감정에 압도되어 버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 어쨌든 나는 오늘 우리 집 작은 친구와 함께 다정한 날을 보내고 싶기 때문에 없던 의지를 끌어내서 심호흡을 했다. “할 수 있다. 천천히 하나씩 정리하면 된다. 충분히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다. 괜찮아.” 그리곤 신나는 수련회 찬양을 틀어놓고 열심히 따라 불러가며 아이와 하나씩 정리를 해나갔다.
“나! 기쁨에 춤추리!”라는 부분이 반복될 때는 아이와 말도 안 되는 춤을 추려고 노력을 했고 , 아이도 말도 안 되는 춤을 따라 추고 있으면 그거에 한참을 웃음을 나누었다. 처음엔 억지스러운 춤사위였는데 시간이 흐를 수록 정말 신이 나는게 느껴졌다. 사실 20분이면 후다닥 치울 수 있는 집이었는데도 한 시간이나 걸려 청소가 끝이 났다. 상쾌하고 후련했다. 압도당했던 감정으로부터 해방당하는 것 같았다.
노래를 잔잔한 걸로 바꾸고 커피를 내렸다.
아이는 간식을 먹고 , 나는 아침을 먹었다.
흑임자가루와 땅콩가루를 섞어서 흑임자 땅콩스프레드를 만들어서 빵에 바르고 있으니 아이가 당근을 찍어먹어 보곤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아이를 따라 나도 찍어먹어 보니 나쁘지 않아서 아이에게 간식메뉴로 제공을 해주었다. 우울증으로 감정이 널뛰고 내향인으로 생각이 많은 엄마로 살아가지만 , 찬찬히 아이와 빵을 나눠먹고 정돈된 집을 돌아보니 이 정도면 괜찮은 아침이 흘러가는 것 같아 흡족스러웠다.
서른 후반이 되어 이제야 내가 나를 사용하는 법을 익혀가는 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