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 310일
우울의 반대말은 ‘행복’일까? 하는 의문이 일렁였다.
그렇다면 행복의 반대말은 우울이 되어버릴 텐데 꼭 그런 것 같지만도 않다. 어쩌면 우울의 반대말은 활력이 있는 삶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나는 활력이 도는 삶에 대한 갈망이 있는 편이다. 번아웃이 지속되었던 건지 아니면 우울감이 지속되었던 건지 모르던 과거의 날들에 환멸을 느끼기 때문이다. 웃고 싶어도 제대로 웃고 싶던 옛날이여.
삶이 활기차게 활력이 돋으려면 물론 뇌호르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과 더불어 ‘행복’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고 다시 한번 추측해 본다.
가까이 있는 것 같기도 , 혹은 저 멀리 신기루 같은 '행복'
얼마 전 <행복을 묻는 당신에게>라는 책을 읽고는 생각보다 행복은 가까이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지만 우울감에 압도되는 날들에는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그렇다는 건 다시 한번 행복을 글로 배울 때가 되었다는 것.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에 가깝습니다. 내가 목적을 이룰 때까지 옆에서 계속 격려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친구 같은 존재요. 만일 내가 오늘 힘든 일을 겪었다면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걸 하는 겁니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행복해지겠죠?
바로 그 힘으로 내일을 또 살아내는 거죠. 그것이 누군가에겐 음악일 수도 있고, 여행일 수도 있고, 등산일 수도 있고 , 절친과의 수다일 수도 있을 거예요.
결국 내가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면 그건 내가 방전됐을 때 나를 급속도로 회복시킬 수 있는 성능 좋은 충전기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힘이 들 때, 너무나도 괴로울 때, 이를 악물고서라도 몸을 일으켜서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걸 하세요.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중에서
행복을 수단 삼아 내일을 힘차게 살아가라는 말에 잔상이 남는다. 물론 우울증 치료 전에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킬 힘 따위는 없었지만 , 약을 복용하고 치료를 이어가고 있는 지금은 우울감에 휩싸일지라도 임플란트 할 각오로 어금니를 꽉 깨물면 자리를 털고 일어날 정도는 되었다.
이 글을 처음 시작하면서 1편에서 문장완성검사를 했던 것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다른 건 다 작성을 했는데 “내가 행복하려면?”이라는 질문에는 답을 할 수가 없어서 모르겠다며 적어 냈었다. 그러니 더욱이 나는 나의 ‘행복’을 찾아내야 한다. 가족들도 관계로 구성되어 있고 ,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에너지가 방전되어 버리는 내향인 엄마이기 때문에 풀파워 고속충전을 찾아내야만 한다.
행복을 느끼는 요소 및 부분
성감대는 들어봤어도(ㅋㅋㅋ) 행감대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는데 이 행감대에 따라서 접근주의자와 회피주의자로 나뉜다고 하였다.
1. 접근주의자
긍정적 자극이 얼마나 많은지 중요.
“즐거운 일이 얼마나 많을까!?”
2. 회피주의자
부정적 자극이 얼마나 없는가
즉, 자극적이지 않은 평온한 상황을 추구
“불쾌한 일이 얼마나 적을까?”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참고>
보통 외향인의 경우 접근주의자가 많은 편이고 내향인의 경우 회피주의자가 많다고 했다.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 역시나 나는 후자인 ‘회피주의자’ 쪽인 것 같다. 날씨가 덥고 습하면 나가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 집에서 놀거나 당분간은 약속을 잡지 않는 예시를 보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너무 나를 보는 것 같아서.
한마디로 회피주의자는 내적평화가 유지가 되는 상황 즉, 혼자 있거나 잘 아는 사람들과 있거나 내가 익숙한 장소에 있을 때 행복감을 잘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 앞으로의 약속을 잡거나 컨디션 조절을 할 때 참고를 하면 참 좋을 것 같다. 컨디션이 날뛸 때는 가급적이면 부정적 자극이 적은 것들을 선택하는 것이 삶의 지혜가 되지 않을까. 집에서 아이들의 울리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야외에서 듣는 게 덜 자극적이니 , 아이들을 놀이터에 풀어놓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고 신경이 예민한 날에는 한 그릇 요리를 해서 설거지를 덜 나오게 하고. 참 쉽지요.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행복의 핵심은 거대하면서 불확실한 행복 “거불행” 말고 “소확행” , 행복하다고 자주 인정하는 것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한 방의 큰 행복을 바라기보다 자잘한 행복들을 자주 느끼는 게 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확행’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어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처럼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보는 것’과 같은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도 행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일 거예요.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중에서
부정적 자극을 줄이면서 행복하다고 자주 인정하는 태도. 너무 교과서에 나올법한 문장이기는 하지만 평생 우울증 혹은 우울감과 동거동락해야 하는 내게는 마음에 새겨 아침저녁으로 꺼내봐야 할 것 같다.
경력단절여성에 우울증이 있고 이렇다 하게 이쁜 것도 아니며 나이스한 바디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학벌이 있는 것도 아니며 집값이 쭉 오른 자가를 소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시선에는 행복할만한 사람은 크게 못될 것 같지만 타인의 시선을 거두고 , 내가 나를 바라보며 행복한 나 그리고 행복한 엄마를 위해 오늘도 괜찮게 살았노라 생각해 본다. 대충 만든 떡국이 맛있어서 행복했고 , 아이가 3분 만에 잠들어서 행복했으며 , 글을 적고 있는 내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행복했다. (창피해서 사라지고 싶네 갑자기)
다시 문장완성의 첫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내가 행복해지려면?
아이를 간지럽히면 된다.
깨밝은 아이의 웃음소리에 행복이 번진다.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모카포트에 커피를 내리자.
푸슈우 올라오며 향기를 뿜어내는 걸 보는 건 생각보다 가슴 뛰는 일이다.
아이가 낮잠 잘 때 옆에서 숨죽이고 웹툰을 본다.
19금 붙은 걸 보면 왠지 모르게 더 쫄깃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남편 월급날 피자한판을 시킨다.
찬송가를 흥얼거린다.
고구마를 굽자. 군고구마냄새가 퍼져가는 순간부터 다 먹어치우는 순간까지 이 세상 달콤함은 다 내 것이 될 수 있으니까.
사소한 일이라도 체크리스트에 다 적어두고 자기 전에 체크를 한다.
가령 아이 목욕시키기와 손발톱 깎아주기까지. 계획형 인간인 나는 체크리스트의 작은 박스에 체크를 하면서 희열을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남편을 꽉 안으면 된다. 그가 다정히 내 등을 쓸어주는 것이 좋다.
설거지를 마치고 구연산을 뿌려서 씽크대를 한번 닦는다.
반짝거리는 싱크대는 내게 개운함을 준다.
아이들에게 햄과 어묵이 빠진 김밥을 시켜준다.
나는 편해서 좋고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환호해 주는데 그 소리가 참 듣기 좋다.
잠들기 전에 아이들의 발을 만진다.
부드러운 발등과 굳은살이 생기기 시작한 발바닥은 묘한 안정감을 준다.
와인을 한잔 마신다.
케이크를 한 조각 시킨다. 배달이 오기 전까지 기대감이 충만해진다.
나의 성공보다는 한 뼘 성장한 오늘을 생각해 본다.
남편 얼굴의 여드름을 짠다.
아이 귀의 왕귀지를 파낸다.
카메라로 무엇이든 많이 찍는다. 저녁에 다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 집 큰 친구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음정박자가 틀리면 아이가 틀렸다며 핀잔을 주며 본인이 다시 불러주는데 음정박자가 엉망이라 더 재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사과를 한 조각 입에 넣는다. 새콤달콤함이 몸에 퍼진다.
한마디도 적지 못했던 것이
이제는 이렇게 많이 늘어났다.
살아있는 사람 같아서
색채가 돋는 것 같아 눈물이 나올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나를 잘 알고, 그런 나를 인정하며,
나에게 잘 맞는 인생의 결을 스스로 찾아서
그저 흘러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