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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Feb 16. 2023

아이의 떼와 나의 화를 다스리고 싶던 날.

우울증 치료 325일


평범한 저녁이었다.

별 다를 것 없는 저녁이었다.


그 정적을 깨는 카톡이 울렸다.

아이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이 갑작스레 그만둔다는 이야기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하하 호호하시던 선생님이 느닷없이 그만두신다고 했다. 놀란마음에 전화를 했고 결론적으로는 어린이집에 있는 여러 병폐들 때문에 본인이 총대를 메고 사임을 하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어린이 집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손이 떨렸다.

분명 나의 사랑하는 아이는 너무 즐겁다며 어린이집 생활을 이어갔는데 ,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이야기일까. 다음날 원장선생님과 통화를 했는데 상황이 골 때리게 돌아갔다. 서로가 서로를 비방을 했고 가운데 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와중에 아이 둘은 40도 가까이 되는 고열이 났고 , 기침을 심하게 했다. 그러니 당연스레 밤에 잠이 들어서도 많이 뒤척였고 짜증이 말도 못 했다. 결국 난 골이 울리고 토할 것 같았다.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었고 아무와도 연락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나 스스로가 급속도로 방전되어 감이 느껴졌다.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곧 저녁밥을 먹어야 하는데 우리 집 큰 친구가 귀리음료가 너무 맛있다며 한 컵만 더 달라고 떼를 썼다. 먹고 싶은 건 알지만 지금은 밥을 먹어야 하니 밥을 다 먹고 한 컵을 더 주겠노라 이야기했더니 , 들고 있던 젓가락으로 내 손을 계속 툭툭치고 찌르면서 ‘더 줘! 더 줘!’를 외치는 목소리의 톤이 올라갔다.  한순간에 화가 치솟았다. 나를 찌르고 있는 아이의 젓가락을 확 빼앗아 바닥에 패대기치고 싶었다.


육아서중에 <부모와 아이 중 한 사람은 어른이어야 한다 / 임영주>라는 책이 있는데 책 내용도 너무 좋았지만 책 제목을 나의 좌우명처럼 마음에 새겨두었다가 화가 치솟으면 저 책제목을 속으로 3번 정도를 외친다.


‘부모와 아이 중 한 사람은 어른이어야 한다! 하아’

‘둘 중 하나는 어른이어야 한다고’

‘아 짜증 나. 그래 난 어른이다. 그래 어른이다 ‘


눈이 돌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엄마가 지금 너의 행동에 화가 많이 나서 방에 좀 앉아 있다 올게. 이대로 같이 있으면 엄마게 너에게 화를 많이 낼 것 같아. 엄마 나오기 전까지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음이 좀 가라앉으면 엄마가 나올 테니 동생이랑 밥 먹고 있으렴”


그리고는 최근에 마련해 둔 작은방의 의자에 몸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있지니 밖에서 조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생아, 엄마가 지금 화가 많이 나서 방에 들어갔으니까 우리 먼저 밥 먹고 있자. 내가 기도해 줄게 “


방금 전까지 떼를 쓰고 울고불고했던 우리 집 큰 친구는 온데간데없고 , 듬직한 오빠가 자리 잡고 있었다. 5분이 되기도 전에 화가 사그라 들어서 문을 열고 나갔다. 엄마는 이제 화난 마음이 사그라들었고 , 앞으로는 젓가락으로 엄마를 찌르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타일렀다.


우리 집 큰 친구는

“엄마, 내가 젓가락으로 찔러서 죄송해-”라며 고개를 숙였다.


다 같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우리 집 큰 친구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아 , 배불러서 못 먹겠다’ 하며 절반가량 남은 밥을 개수대에 넣어버렸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본인은 밥을 다 먹었으니 이제 귀리음료를 달라는 것 아닌가. 냉장고에 있는 딸기와 함께.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화가 솟아올랐다.

정말 ‘화르륵’ 타올랐다.


1. 배가 불러서 밥을 절반을 남겼으니

2. 귀리음료와 딸기 먹을 뱃속 공간이 남아 있지 않을 테니

3. 엄마는 너에게 귀리음료와 딸기를 줄 수 없다.

4. 사랑하는 네가 배가 불러서 터지는 것을 볼 수 없지 않으냐?


라고 천천히 어금니를 깨물고 이야기를 하니 , 아이가 더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자기는 배가 아직 다 부르지 않아서 먹을 수 있단다. 실랑이를 이어갔다. 아빠가 열심히 일은 해서 벌어오신 돈으로 우리는 쌀을 샀고 , 너는 딸기가 먹고 싶다는 욕심에 그걸 버린 거다. 그러니 엄마는 너에게 간식을 줄 수 없다 선언하니 “나 밥 다시 줘”란다. 밥을 다시 먹을 테니 , 간식을 달라는 아이의 제안.


그러나 네가 밥을 버렸기 때문에 밥은 없다. 귀리음료와 딸기는 내일 아침에 먹자고 하니 울고불고 난리다.


“밥 줘!! 밥 달라고!!!!!!!” 애처롭게 외친다. 그러나 그저 아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화가 났는지 소리를 지르며 발을 쿵쿵 구르고 울고불고 방에 있는 베개를 던진다.


“화가 나고 속상하구나.” 하고는 와인을 반잔 따라서 완샷을 때리고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 올라서 같이 베개를 던질 것 같아 뒤돌아 설거지를 시작했다.


아이는 거의 10분에서 15분을 ‘지랄발광’을 했다. 그냥 묵묵히 내버려두었다. 갑자기 울음을 뚝 그치더니 책상에 가서는 뭔가를 막 그린다.


“엄마랑 동생이야. 엄마는 엑스고 , 동생은 동그라미야. 나 엄마랑 안 놀 거야”


엄마를 그려놓고 엑스를 쳐 논걸 보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기가 막혀서 ㅋㅋㅋ 그래도 아이가 본인의 화를 다스려가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시온아 , 엄마는 네가 엄마를 싫어하고 엑스라고 하고 밥을 남겨 버려도 나는 널 사랑해. 물론 속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늘 널 사랑해” 찬찬히 아이의 눈을 보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뒤돌아서 개수대 정리를 마쳤다. 슬금슬금 아이가 다가온다.


“엄마, 내가 아까 밥을 버려서 죄송해. 엄마 오늘은 약속을 못 지켰으니까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귀리음료랑 딸기 먹어도 돼?” 차분히 도 아이가 말을 이어갔다. 아이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 우울증에 범벅이 되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엄마가 될까 두려웠으나 아이를 기다려낸 내 스스로도 대견하고 , 아이 스스로가 화를 삯이고 사과와 함께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은 것이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우리가 한걸음 성장한 것 같았다.

엄마로 ,

그리고 7살의 아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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