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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Mar 22. 2023

마음의 여유가 난 자리에 봄꽃이 피어난다.

우울증 치료 357일


4살 우리 집 작은 친구가 3월부터 시작된 어린이집생활에 ‘엄마의 생각보다’ 적응을 더욱 잘 해내고 있다. 등원 5일째인가 7일째인가 여하튼 그 무렵에 아이가 엉엉 울면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오빠손을 잡고 버스에 오르던 날이었다. 7살 우리 집 큰 친구는 동생의 눈물을 닦아주며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해 주고 마스크를 다시 씌워주었다. 그사이 차는 출발했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엄마 빠빠’를 외치며 작은 친구는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큰 친구와 작은 친구의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로는 버스가 출발하면서 울음을 그쳤고 세상 누구보다 재밌게 놀다가 낮잠도 스르륵 잘 잤단다.



문제는 나였다.


아이의 분리불안을 걱정했던 나인데 , 엄마인 내가 분리불안이었다.

빠라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폭풍청소를 시작했다. 가만히 있자니 아이의 울음이 생각이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물에 식초를 몇 방울 섞어서 바닥에 뿌리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닦아냈다. 거실을 닦아낸 뒤 주방으로 와서 아이들의 먹부림 흔적을 닦아내는 중에 울음보가 터져버렸다. 내가 우는 건지 어린 내가 우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헤어지기는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맞벌이하는 엄마에게 손을 흔들던 5살의 나였을까, 아니면 할머니집에 동생과 덩그러니 남겨져서 오매불망 엄마를 기다리던 초등학생의 나였을까. 아님 그냥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며 울던 아이가 생각나 슬픈 아이의 엄마였을까. 이래 저래 과하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아이가 엄마와 떨어져서 슬프다고 흘리는 눈물이 , 내 안에 남겨져있던 감정의 찌끄러기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이렇게 엉엉 소리 내어 울어본 게 얼마만이었을까. 눈이 뻘겋게 되고 얼굴은 눈물인지 콧물인지 알 수 없이 범벅이 되어 꼴이 말이 아닌 상태가 되어서야 울음이 그쳤다.


속이 시원했다.


남아있던 감정의 찌꺼기가 울면서 손을 흔들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해소되었다.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 생각해 보니 내가 커가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가 성장하며 나도 성장하고 있었다. 우울증으로 더디고 후퇴하는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 마음의 문제들을 직면하고 매듭들이 풀어져 가는 것들을 보고 나니 두보 전신을 위해 한보를 후퇴했던 시간은 아니었을까.


며칠이 지났고 아이는 조금 훌쩍이며 버스에 타지만 아이를 너른 마음으로 응원해 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갔다. 놀랍게도 아이는 3월 20일인 어제와 3월 21일 오늘 울지 않고 오빠손을 꼭 잡고 등원하는 버스에 탑승을 했다. 엄마 빠빠- 를 외치며.



마음의 매듭이 하나가 정리가 되고 나서 ,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5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 내게 생기자 마음에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남편과는 6년 만에 카페에서 책을 읽는 호사를 누렸고 , 별 시답잖은 농담들이 입에서 더 술술 나왔다. 남편을 마주하고 웃는 시간이 늘었다.




남편이 출근하는 날 또한 별것 없는 5시간인데 , 그 시간이 삶에 윤활작용을 해주고 있다. 등원을 하면 , 공기가 좋은 날은 30분 정도 달리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봐온다. 설거지를 하고 방을 치우고 환기를 하고 나면 11시 무렵이 된다. 아점을 먹고 자리에 앉으면 11시 30분. 잠시 멍을 때리고는 12시부터 2시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적는다. 온전한 내 시간이다. 2시부터는 저녁준비를 해두고 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있던 방에 눕던 육체를 쉬어준다. 3시 넘은 시각, 아이들을 픽업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놀이터에서 놀아주고 집에 돌아와 목욕을 시키고는 저녁을 차려준다. 중간중간 놀아주면서.



나의 삶에 발란스가 맞아가는 기분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과거로 돌아가서 아이가 어린이집을 원할 때까지 가정보육을 할 거이냐 묻는다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흔쾌히 그럴 것이라 답할 것같다. (그래서 첫째는 6살 7월부터 어린이집에 갔다) 그리고 또 둘째도 가정보육을 할 것이냐 묻는다면 못해도 24개월까지는 품어줄 것이라 즉답할 것 같다. 그로 인해 우울증이 오든 말든 그건 둘째고 , 내가 어린아이들에게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에 다시 돌아간다 해도 즐거이 그 시간 들을 열심으로 보낼 것 같다. 그 시기 이후 아이들이 각자의 시간을 찾아 나설 만큼 성장하게 된 무렵부터는 내게 조각의 시간이 주어질텐데 , 그렇다면 그 작은 것들에도 굉장한 기쁨을 맛볼 것 같다. 결과야 어쨌든 열심히 달린 후 마시는 물은 말로 하지 못할 만큼 달큼하고 시원할 테니까.


어떤 이는 자기 자신을 더욱 들여다봐야 삶이 나아진다고 이야기했고 , 또 어떤 이는 너무 자신에게 매몰되어 있으면 그것이 나의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외부로 시선을 돌리라고 한다. 고민이 깊어진지 한 해가 되어간다. 우울증이 나의 삶을 삼켜버리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해내고 싶었다.

(생각이 많이 우울한 걸까, 우울해서 생각이 많은 걸까 w. 피아 칼리슨 , 불안한 날들을 위한 철학 w. 스벤 브링크만 등)


아마도

자식, 엄마, 아내, 경단녀 등의 나의 페르소나로부터 기대되는 역할과 해내야만 하는 일들이 사이에 내가 나로 온전히 있을 수 있는 작은 여유들의 밸런스가 우울증 1년을 맞아하는 내게 중요한 부분이 되지 않을까 감히 단언해 본다.


하하 , 외부와 내부의 밸런스.

워라밸이니 디아밸이니 바브밸이니 뭐든 어쨌거나 밸런스가 중요한 시대인가 보다.

시대에 발맞춰 살아가기 참 어렵네 ㅋㅋ

워라밸 : 일과 삶의 균형

디아밸 :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

바브밸 : 몸과 뇌의 균형 (몸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뇌가 그것을 해석하고 결정, 다시 몸이 세상에 적용하는 일상적 경험을 하는 것)

[열두 발자국 w.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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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다가 벗었다가 하는 가면을 말한다.

통상적으로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쓰는 가면”을 의미한다.

페르소나는 주위 사람들의 요구를 포용해 가며 만들어지기 때문에 ,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유지하게 해 준다. 그러나 페르소나를 자신의 본성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본모습을 잃게 되고, 신체적, 정신적인 문제들이 생겨, 열등감이나 갖가지 애로사항이 생긴다. 이러한 것을 페르소나의 팽창이라고 하는데 페르소나의 팽창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페르소나로서의 삶을 구별하여 페르소나 속에 감춰진 자신의 본모습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을 자기실현이라고 한다.

16가지 성격 유형 중 INFJ유형이 페르소나를 많이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어렸을 때 사람대하는 모습을 자주 바꾼다며 너의 본모습을 모르겠다며 ‘박쥐’라고 불리운 적이 있는 본인은 INFJ다 ㅋㅋㅋ 이렇게 소름 돋을 수가.)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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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이 낮에 짜파게티를 끓여 먹고 , 서진이네를 보면서 피식피식 웃는 내 자신이 낯설지만 반가웠다. ‘열심히’ 살아가야만 하는 페르소나들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쉬어가는 ‘게으른 나’를 오랜만에 마주한다.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겼고 , 그 틈사이로 봄바람이 불어와 꽃이 피어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 마음속에도 봄바람이 불어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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