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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Mar 02. 2024

행복의 결정요소는 돈이 아니라 눈높이

외식으로 살펴본 눈높이 변천사

인도나 남미에 가보신 적이 있나요? 


한국 사람들이 중진국에 가면 빠지지 않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쟤네는 가진 것도 별로 없는데 참 행복하게 산다~


이 말은 행복은 상대적이라는 진리를 다르게 표현한 것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1억 원을 벌고 어떤 사람은 100만 원을 버는 나라에 사는 것보다, 모두가 100만 원을 버는 나라에 사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그럼 정확히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다음은 외식을 통해서 그려본 한국 소비자 눈높이의 변천사입니다. 돈까스, 함박스테이크가 고급 양식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너무 옛날이니 논외로 하고... 90년대부터 고급 외식 트렌드를 한번 살펴봅시다.




90년대: 베니건스

추억의 베니건스


1995년 한국에 상륙한 베니건스는 비슷한 시기 TGI 프라이데이, 코코스, 토니로마스 등과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 성공신화의 대표로 꼽혔습니다. 국민 대부분이 쌀밥에 찌개 먹던 시절, 미국 요리와 화려한 인테리어는 매우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고, 이런 곳에서 생일 파티 한번 하는 것이 학생들의 꿈이었습니다. 당시 돈으로 1만 원대의 메뉴는 상당히 비쌌기 때문에 패밀리 레스토랑은 특별한 날에만 갈 수 있었습니다.



베니건스의 대표 메뉴 중 하나였던 튀긴 햄치즈샌드위치, 몬테크리스토의 가격은 당시 11,300원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뭐가 특별했나 싶은 요리지만 그땐 특별했습니다.




2000년대: 빕스


그 많던 패밀리 레스토랑들이 유행에 밀려 주춤하기 시작하자, 빕스와 애슐리, 아웃백 같은 2세대 패밀리/뷔페 레스토랑이 선두주자로 떠올랐습니다. 이 레스토랑들은 단순한 미국식보다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많은 프로모션을 제공하며 젊은 층의 기념일, 데이트 장소로 떠올랐습니다.



빕스, 아웃백, 애슐리의 특징은 TV에서나 보던 격자무늬 스테이크를 처음으로 대중화시켰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그렇고 스테이크는 한국인들에게 넘사벽 고급 메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빕스에 가면 드라마 주인공처럼 흰 접시에 놓인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이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진 않았고, 평소에 먹기 힘들었던 파스타와 해물이 올려진 샐러드바를 주로 이용했습니다. 역시나 미식이 발달한 지금은 크게 와닿지 않지만, 2000년대에는 특별한 날 가는 외식이었습니다. 이 당시 샐러드바의 가격은 23,400원이었습니다.




2020년대: 오마카세


한동안 서양식의 소개팅용 파스타, 스테이크가 강세였던 외식업계에 지난 몇 년간 오마카세와 일식의 폭발적인 성장이 일어났습니다. 1인당 6만 원, 1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외식임에도 강남과 강북의 오마카세 집은 젊은이들로 예약이 넘쳐났고 일종의 사회 현상처럼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국밥카세"처럼 아무 데나 갖다 붙여도 위화감이 없는, 마치 "뚱카롱"처럼 고유명사화된 메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마카세는 찍었을 때 너무나 예쁘기 때문에 한동안 한국의 인스타 피드를 도배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오마카세의 가격은 로우, 미들, 하이엔드 급으로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74,000원 정도 쓰면 어디 가서 오마카세 먹어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95년 베니건스, 2008년 빕스, 2024년 오마카세 셋을 가지고, 한국의 빅맥지수라 할 수 있는 짜장면값과 같이 시각화해 보면 이런 차트가 나타납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옛날에는 서민음식과 고급외식의 가격 차이가 4.5배였지만 지금은 10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2. 고급외식의 기준은 지난 30년간 물가가 1.8배 상승할 때 5.5배 상승하여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요? 중진국을 벗어나 선진국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은, 활발한 소비를 하고 서비스업이 발달할 수 있는 중산층의 형성에 성공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중산층이 되는 순간, 국민들의 눈높이는 점점 하늘 높이 치솟게 됩니다. 모두가 가진 것을 향유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부르디외는 1979년 <구별짓기>를 통해 왜 가진 자들은 취미생활부터 구별이 되는지를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모두가 엘란트라를 타는 세상에서는 그랜저를 타야만 구별이 됩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랜저를 타는 세상에서는 벤츠 E클래스를 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자에서 후자로 이동했으나 오히려 행복하다 느끼지 못하고, 더 위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차는 그랜저


눈높이 인플레이션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자 선진국으로 가는 필연적 과정이므로, 나쁘다고만 할 것은 아닙니다. 더욱 고급진 것을 원하는 소비자들 덕분에 한국의 외식, 리테일, 서비스 문화는 지난 20년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급격하게 발전했습니다. 


최근까지는 핫 아이템을 주로 소비하는 동아시아 특유의 "따라잡기 위한 소비" 트렌드를 보여주었으나, 그것도 언젠가는 식상해지면 점차 럭셔리 소비 형태는 더 정교해지고, 일반인들은 엄두도 못 낼 고가 정책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오히려 선진국처럼 오마카세가 (팁 미포함) 50만원쯤 하는 세상이 오면 일반 소비자들이 더 행복하다 느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항상 조금 나은 수준과 비교하지 넘사벽과 비교하진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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