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닌 마에의 의미
요즘 미디어나 유투브에 "1인분의 삶"을 추구하고 지향한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추가 연구 없이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옆나라 일본의 "이치닌 마에(いちにんまえ, 一人前)"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자도 1인분으로 동일하며, 사용법도 "이치닌 마에 니나루(一人前まえになる)" 즉 한 사람 몫으로 거듭나라는 뜻으로 동일합니다. 이 이치닌마에라는 표현은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대표적 철학이라 할 수 있으며 어린 학생 때부터 "네가 네 자리에서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라"며 자주 들으며 자랍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나아가 왜 이런 표현이 생겼는지 생각해 보면 그 취지는 분명합니다. 1인분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요? 그것은 바로 "나의 위치에서 나에게 주어져 해내야만 하는 일"입니다. 누가 나에게 이 위치와 이 일을 주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중세의 계급제도가 부여한 것입니다.
그나마 과거제도로 신분 상승을 노려볼 수 있었던 한반도와 다르게 일본은 기존 유교적 사농공상을 약간 비틀어서 무사계급이 지배하는 엄격한 신분제도를 만들었고, 같은 무사계급 안에서도 호위무사와 하급무사, 낭인 등으로 촘촘하게 나뉘어서 사는 지역도 달랐습니다. 일본에 10만개가 넘는 세계적인 규모의 성씨가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며, 마치 인도처럼 성씨만 보고도 어느 지방 출신에 대대손손 무슨 일을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를 이뤄냈다고 하나 수백년의 민족 정신이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일본에 수많은 노포와 3대, 5대씩 내려오는 가업이 즐비한 이유는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1인분이기 때문입니다. 즉 일본에서의 1인분은 학교, 직장, 가문이 나에게 부여한 임무를 다하고, 그것을 못하거나 거부하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양날의 칼과 같은 함의를 갖고 있습니다.
이치닌마에는 또한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를 위해 도전하려는 성취 지향적 한국인들에 비해 일본인들이 여유로워 보이는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1인분을 하라고 했지 1.5인분, 2인분을 하라고 한 적은 없으니까요. 모두 다 1인분만 하는 사회에서 오히려 그런 행동은 평화를 깨뜨리고 경쟁을 유발하므로 지탄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1인분이란 뭘까요? 우리도 조선시대에는 비슷한 사상이 있었습니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해내기"를 강조하는 삼강오륜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현대 한국에서는 "각자의 자리"가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학생이라면 교복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깎으며 선생님, 부모님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산업화 사회에서 정의한 "학생의 자리"였지 정보화 사회가 필요로 하는 비판적 사고를 갖고 토론하는 인재의 모습은 아닙니다. "직장인의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입사해 산업역군으로서 평생을 한 일터에 바치고 결혼한 자식들을 바라보며 명예로이 은퇴하는 것이 직장인의 1인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모습을 현실적으로 기대하는 상사나 직원은 없습니다.
즉 무엇이 1인분 몫이냐는 질문은 시대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며, 전통을 고수하는 일본이 오히려 예외적인 케이스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1인분의 삶을 사는 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국민의 4대 의무를 지킨 사람이면 모두들 법적으로 한사람 몫을 한 것입니다. 20-30대가 흔히 얘기하는 1억 모으기, 번듯한 직장 구하기, 부동산과 주식으로 재테크하기, 부모님 노후 대비하기... 같은 것들은 있으면 좋은 것이지 1인분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대다수가 200-300을 버는데 그것밖에 못 번다고 1인분을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굳이 오늘날 한국에서 1인분의 삶을 정의하라고 한다면, 상위 10%가 아니라 일본처럼 현실적으로 모두가 각자 자리에서 해낼 수 있는 삶의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헌법을 준수하신 여러분 모두는 1인분을 이미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