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는 달라 넌
들어가기 앞서서: 본 글은 민희진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보사노바 평론가 그리고 아티스트의 관점에서 작성하였으며, 민희진의 경영 활동에 대한 옹호나 비판 등 일체의 판단을 하는 목적이 아님을 밝힙니다.
최근 민희진이 2000년대 초부터 보사노바 카페에 가입해 있던 광팬이었다는 역사가 발굴되어서 그녀가 예전에 추천했던 플레이리스트가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보컬이 여러 명이고 경쾌한 댄스음악을 주로 하는 아이돌 그룹과는 얼핏 맞지 않아 보이지만, 보사노바는 재즈와 일본의 팝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고, 뉴진스에 담겨있는 시부야계, 시티팝에 영향을 주었으니 간접적으로나마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희진과 뉴진스(혜인)는 여러 인터뷰에서 보사노바를 가장 좋아하는 음악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Q: 한때 리처드 샌더슨의 ‘Reality’를 매일 듣는다고 했는데, 요즘엔 무슨 장르를 즐겨 듣나요?
A: 올드팝도 여전히 좋아하는데, 요즘엔 다시 재즈와 보사노바에 빠졌어요.
혜인, BAZAAR 인터뷰(2023)
제가 좋아했던 일본 문화라고 하면 60-70년대 비주얼이나 브라질 스타일에 영감을 받은 Jazzy 한 곡, AOR(Adult Oriented Rock) 스타일의 음악을 들 수 있습니다. 피치카토 파이브를 비롯한 시부야 케이 스타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프렌치팝, 보사노바, 라운지 등 펑키한 다양한 장르가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민희진, 뽀빠이매거진 인터뷰(2023)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유형은 재즈 라운지 유형입니다. 저는 모든 장르의 음악을 듣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은 아스트루지 지우베르투(Astrud Gilberto)입니다.
(민 대표는 아이폰을 꺼내 그녀의 대표곡 '이파네마 소녀'(The Girl From Ipanema를 재생했다.)
저는 여덟 살 때 처음 이 노래를 듣고 울었습니다. 이 노래가 제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재즈곡으로 드물게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올랐기 때문이에요. 재즈 음악은 보통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있지 않죠? 이것은 제게 영감이 됐습니다. 제 음악, 제가 하려는 음악이 1위가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죠."
민희진, 패스트 컴퍼니 인터뷰(2023)
그런데 보사노바 음악을 하지 않으면서 왜 보사노바 그리고 아스트루지 질베르투를 원픽으로 꼽았을까요?
민희진은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기존의 K팝에서 탈피한 실험적 시도를 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특히 뉴진스의 <Super Shy>는 포르투갈 출신 싱어송라이터 Erika de Casier에게 요청한 작업물인데, 처음에 그녀가 솔직하게 K팝에 대해 모른다고 하자 어도어 측에서 "오히려 좋다. 우리는 신선한 걸 찾고 있다"며 전적으로 믿고 맡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K팝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에게 K팝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보사노바 역시 지금은 주로 이지리스닝이나 엘리베이터 뮤직으로 소비되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히 실험적인 시도였습니다. 풍성한 반주에 비브라토를 넣어 노래하던 쌈바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1964년 이파네마의 소녀를 만든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과 비니시우스의 첫 합작, Orfeu Negro(1959)를 들어보면 A Felicidade 같은 보사노바 곡들이 들어 있지만 그 편곡은 쌈바에 훨씬 더 가까웠습니다. 흔히 보사노바의 1번째 앨범이라고 불려지는 Canção do Amor Demais(1958) 역시 악기편성은 쌈바였고 Elizete Cardoso의 창법 또한 오늘날 우리가 보사노바와 연관짓는 차분한 보컬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보사노바가 주류가 되기 전, "보사노바의 아버지" 쥬앙 질베르투는 레코드사에서 여러 번 욕을 먹고 발매를 거절당했으며, 조빔은 계속되는 평론가들의 악평에 너무 질려서 그들에게 한방 먹이려고 Desafinado를 작곡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으로 치면 "부산갈매기" 같은 쌈바를 젊은 가수가 비브라토도 없이 조용히 웅얼거리며 부르니 제대로 노래할 줄도 모른다고 지적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여러 악평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보사노바에 귀를 기울였던 이유 중 하나는 계속해서 비슷한 음악들만 쏟아져 나오던 시절 뭔가 색다른 경험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복제 그리고 비슷한 사랑노래 일색이던 50년대 말, 젊은이들에 의한 쌈바의 재해석은 관심을 끌기 충분했습니다. 비록 보사노바 자체의 유행은 짧았으나, 그 실험정신은 대중가요제로 이어져 MPB(브라질 대중음악)이라는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냈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 가지 않는 길"을 간 보사노바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빌보드 1위를 달성한 것처럼, 민희진 역시 뉴진스 그리고 어도어를 통해서 K팝에 완전히 다른 변화를 주려고 했다고 밝혔고 보사노바를 일종의 정신적 지주로 여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민희진이 가장 좋아한다고 밝혔던 아스트루지 질베르투(Astrud Gilberto)는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모두 들어보았을 보사노바의 간판 보컬리스트입니다. 그러나 아스트루지의 데뷔와 활동, 일생은 일반적인 뮤지션의 그것과 매우 달랐습니다. 민희진 역시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기에 아스트루지의 삶에 크게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우선 그녀는 "이파네마의 소녀" 녹음 전까지 녹음실에서 노래를 해본 적 없는 아마추어였습니다. 그녀가 그날 계획 없이 투입된 이유는 영어 가사를 원했던 프로듀서 덕분이었습니다. 민희진 역시 음악이 아니라 시각디자인으로 엔터테인먼트계에 발을 들였지만 결국에는 정상까지 올라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스트루지가 활동하던 1960년대는 미국과 브라질 모두 여성 차별이 강하게 남아 있던 시대였습니다. 색소포니스트 스탄 겟츠는 그녀를 가정주부라고 칭하며 자기가 띄워주었다는 발언을 하고 다녔으며, "이파네마의 소녀" 성공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음에도 아스트루지에게는 세션비 $120달러만 주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녀의 남편이었던 쥬앙 질베르투는 1963년 투어 도중 바람을 피워 이혼하게 되었으나 브라질 언론은 아내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았다며 아스트루지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스타가 된 지 1년도 안되어 가난한 싱글맘으로 전락해 버린 아스트루지는 성질 더럽기로 소문났던 스탄 겟츠와의 미국 투어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탄 겟츠와의 투어 때 불렀던 Only Trust Your Heart를 들어보면 목소리에서 당시의 씁쓸함이 묻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스트루지는 보사노바라는 한 장르를 성공시킨 엄청난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녀가 활동했던 남성 중심적인 엔터테인먼트 사회에서 항상 수동적인 인형 취급을 받으며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났지만 한국 그리고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살펴보면, 무대에는 매력적인 여성들이 오르지만 경제권과 결정권은 대체로 나이 많은 남성 기획자, 대주주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민희진은 엔터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기획자, CEO로써 늘 견제에 시달리고 힘들었다는 기억을 "맞다이" 기자회견에서 터트렸는데 아마 이런 부분에서 아스트루지의 험난했던 일생에 공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인터뷰 등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볼 때 뉴진스가 향후 보사노바 곡을 할 수도 있겠다고 기대됩니다. 인디를 제외하고 한국 메인스트림 가요계 그리고 K팝에서 보사노바 리듬으로 성공한 곡이 많지는 않습니다. 화려한 안무와 여러 명의 보컬이 동원되는 특성상, 쌈바 리듬에 가깝게 편곡하지 않으면 보사노바만으로는 무대를 휘어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세라핌이 시도한 Perfect Night을 보면 보사노바와 K팝이 충분히 어우러질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만듭니다.
아마 뉴진스가 보사노바를 하게 된다면 이런 모습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