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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Jul 11. 2024

아름다운 은광의 도시, 과나후아토

스페인 제국이 남긴 문화유산

주말 동안에 멕시코 중부에서 이름난 관광지인 과나후아토(Guanajuato)를 다녀왔습니다. 지인들이 극찬하기도 했고, 수도에서 버스로 4시간 반이면 갈 수 있어 주말 여행으로는 최적입니다. 숙박과 음식 모두 가격대비 매우 만족스러웠으며 멕시코의 역사를 깊이 있게 돌아보는 여행이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짧게 과나후아토의 역사와 전체적인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사진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여행 전 알면 좋은 정보들


- 과나후아토의 기후는 멕시코시티와 비슷하며 아침저녁으로 서늘하고 햇볕이 쬘 때는 덥습니다.

- 과나후아토로 가는 대표적인 버스는 Primera Plus가 있으며 멕시코 시티 약간 외곽에 위치한 Norte 터미널에서 출발합니다. Primera Plus 버스는 좌석이 뒤로 완전히 젖혀지고 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으며 비행기처럼 스크린, 헤드폰도 제공됩니다. 이동 시간은 약 4시간 반 소요됩니다.

- 도시에 언덕이 많으니 걷기 편한 신발을 추천합니다.




과나후아토의 역사

Alhondiga de Granaditas, 광부들이 구출되는 기적을 그린 그림

과나후아토가 지금의 화려한 모습을 갖추게 된 계기는 딱 하나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은광"


16세기 멕시코를 통치하고 있던 스페인 제국은 과나후아토와 그 인접한 도시들에서 막대한 규모의 은 매장량을 발견했습니다. 이 발견을 계기로 멕시코 중부에 위치한 Leon, Irapuato, San Miguel de Allende, San Luis Potosi와 같은 도시들은 폭발적인 성장을 하였으며,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라틴아메리카가 전 세계 은 공급량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채굴을 해내며 해가 지지 않는 스페인 제국의 부를 떠받쳐주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제국에게는 그 막대한 부를 관리할 지도자의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16세기 들어 은만 믿고 감당 못할 전쟁을 잔뜩 일으킨 스페인 제국은 결국 빚더미에 올라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 시절 스페인이 워낙 무식한 양의 은을 채굴해다가 유럽과 중국에 소비하는 바람에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켰습니다. 이 현상을 학계에서는 16세기 가격혁명(Price revolution)이라고 칭합니다. 거시경제학에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은광의 고통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위험천만하고 힘들고 더러운 광업에 동원된 사람들은 대부분이 사회 최하층민들이었습니다. 많은 수의 원주민들이 강제로 끌려와 고된 노동 끝에 다치거나 사망하였고, 그 당시의 기술 수준을 감안했을 때 산소부족이나 부실공사와 같은 위험이 항상 광부들을 위협했습니다.


과나후아토의 통치자들은 막대한 부를 가지고 바로크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화려한 성당들을 과나후아토 곳곳에 세웠습니다. La Valenciana처럼 언덕 위의 탄광 바로 근처에다 건설하기도 했습니다. 매일 죽음을 마주하는 광부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을까 싶습니다.


Alhondiga de Granaditas, 벽화

저는 과나후아토 여행의 첫 스타트를 끊은 장소가 바로 이곳 Alhondiga de Granaditas였는데 기억에 남는 전시들이 꽤 있었습니다. Alhondiga란 곡물저장소와 시장을 겸하던 건물을 뜻하며, 요새나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고, 오늘날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과나후아토 박물관이 큰 비중을 할애하는 전시가 바로 멕시코 독립전쟁에서의 과나후아토의 역할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과나후아토 노동자들의 처우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전부터 크고 작은 시위가 일어났었으며, 1810년 9월 16일 그 유명한 독립선언 "돌로레스의 외침"이 과나후아토에서 약간 떨어진 Dolores에서 일어났습니다.


미겔 이달고(Miguel Hidalgo) 신부를 주축으로 스페인 제국에 대항하는 반란군은 치열한 싸움 끝에 9월에 과나후아토 시를 함락시켰습니다. 이 전투 당시 피필라(Pipila)라는 한 광부가 용감하게 횃불을 든 채 Alhondiga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반군의 영웅이 되었으며, 그 이유로 오늘날 피필라의 동상이 과나후아토 언덕에 세워져 있습니다.


횃불을 들고 돌격하는 피필라 동상

과나후아토 함락 이후 반란군은 제대로 된 합동 전선을 구성하지 못한 채 결국 정부군에 격파당하고 말았으며, 1년도 안되어 주동자인 이달고 신부의 목은 Alhondiga에 효수되는 최후를 맞았습니다. 비록 1차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다른 여러 장군들에 의해 멕시코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게 됩니다.




과나후아토의 골목들


과나후아토는 스페인의 중세도시인 톨레도나 세고비아를 떼어다 옮겨놓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유럽과 같은 모습의 도시입니다. 오히려 전성기에는 본토보다 더 잘 나갔으니 이처럼 화려한 성당이 세워지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탄광의 도시답게 지하 터널도 여러 곳 뚫려 있습니다.


의외로 과나후아토의 음식은 딱히 알려져 있는 편이 아닌데 광부들이 일하던 곳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나마 별미라고 알려진 음식은 Enchiladas mineras(광부의 엔칠라다)라고 감자 들어간 엔칠라다가 있습니다.


(모든 사진은 직접 촬영했습니다)




과나후아토 정상

강삭철도인 Funicular를 타면(현금 필수) 작고 귀여운 케이블카를 타고 언덕 위의 전망대로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이곳의 뷰는 사진에서 보는 그대로 환상적이며 영화 <코코>에서 영감을 받을 만합니다. (실제 코코의 배경은 오하카, 미초아칸, 과나후아토 등 멕시코 여러 지역을 합성한 것에 가깝습니다)


한국인들이 많이 왔다 갔는지, 나가는 톨게이트에 한국어가 적혀 있습니다.




멕시코에 1주일 이상 머물 예정이라면 과나후아토 여행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나후아토에서 한시간 떨어진 산 미겔 데 아옌데(San Miguel de Allende)도 아기자기한 도시로 꽤 소문나있어서 같이 묶어 가기 좋습니다.


여러 매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꼽힌 산 미겔 데 아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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