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남자와 여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성경의 창세기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벌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 본격적인 막을 올립니다. 아담과 이브는 다시는 에덴동산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으며, 신의 말을 거역한 벌로 둘은 각각 다른 고통을 받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세기 3:16-17)
"여성은 아이를 낳아 기르고, 남성은 그에 필요한 자원을 구해와라" 이 간단한 공식이 수천 년간 전세계 남성과 여성의 사회생활을 정의했습니다. 한쪽은 주로 집에 있고 다른 쪽은 바깥에 나간다는 점은 달랐으나, 둘 다 서로 비교하기 어려운 고통이라는 점에선 다르지 않았습니다.
근대화 전까지 대부분 국가에서 여성은 3-5명 이상의 아이를 어린 나이부터 계속 출산해 길렀으며, 영아와 산모 사망률이 무척 높았던 전근대사회를 생각해 본다면 목숨을 거는 희생과도 다름없었습니다. 젊은 시절을 통째로 출산과 육아에 바쳤으니 제대로 된 교육과 커리어는 포기해야 했습니다. 남성은 남성대로 논밭과 전쟁터, 사무실을 전전하며 몸을 갈아 넣어 먹을 것을 가져와야 했으며, 처자식을 위해서라면 온갖 더럽고 치사한 일이라도 두 팔 걷고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가장이 힘들어서 퇴사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소득이 끊긴다는 건 여러 생명을 길바닥에 내놓는 최악의 실패였으니까요.
경제학에서는 위와 같은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를 성별분업(gender specialization)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남자의 일, 여자는 여자의 일을 하였고 어릴 때부터 그것을 염두에 둔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서구사회에서는 더 이상 아이가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되면서 여성의 노동력을 산업과 전쟁에 끌어다 쓰게 되었고, 그 결과 전통적인 사회에 비해 폭발적인 성장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2차 대전 이후 여성들은 전에 없던 경제적 자유를 누리게 되었지만, 동시에 일과 가정 양립이라는 새로운 난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회는 여성에게 적어도 남성에 준하는 교육과 커리어적 성취를 요구합니다. 한국에서도 갈수록 여성의 결혼자금과 연봉, 학력, 집안을 중시하고 여성의 일방적인 상승혼(hypergamy)을 지양하는 결혼 문화가 정착되고 있습니다. 즉 여성은 이제 에덴동산을 나오면서 받았던 "잉태하는 고통"에 더불어서 "종신토록 수고"까지 하여야 하는 이중의 고통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남성도 "잉태하는 고통"에서는 자유로울지 몰라도, 이제 더 이상 육아와 집안일을 예전처럼 남의 일로 돌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랬다가는 주변 사람들과 인터넷 카페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이혼당하기 딱 좋습니다. 즉 남성도 일과 가정 양립의 밸런스를 지키지 못하면 어느 한쪽이 무너질 수 있는 새로운 역할에 직면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의 고통과 육아의 고통은 서로 비교하기가 어려운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입니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느라 탈모가 일어나도 승진만 시켜준다면 버티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직장에서 나와 안 맞는 상사와 동료 직원들과 부대끼느니 차라리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훨씬 낫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현대사회의 남성과 여성이 직면한 난제는 두 가지 고통 모두 동시에 견뎌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에덴동산 이래 처음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고 한국에서는 채 5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보다 앞서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일어난 미국과 유럽에서도, 소수 북유럽 국가와 엘리트층을 제외하면 일과 가정 양립이 만족스럽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는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1명대의 낮은 출산율로 나타납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듯이, 현대의 아담과 이브도 다시 고전적 남녀 분업사회로 회귀할 수 없습니다. 여성이 4-5명대의 아이를 낳는 국가들의 인권과 경제 수준을 생각해 보면 금방 "그때 그 시절"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오늘날의 남성과 여성은 인류사에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제 2의 에덴동산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셈입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이 근본적인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길로 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