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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미씨의 문화생활 Oct 24. 2024

[Review] 일상 속 소중함을 찾아

- 장줄리앙의 종이세상 [전시]


두 번째 장 줄리앙 전시


장 줄리앙의 전시를 처음 접한 것은 2022년 DDP에서였다. 당시 전시는 작가의 일상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주로 스케치와 포스터 같은 작품들이 중심을 이루었다. 그의 창작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났으며, 마치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유머와 직관적인 표현 방식 덕분에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전시를 매우 흥미롭게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 2024년, 또 다시 장 줄리앙의 전시가 퍼블릭 가산에 퍼브릭 홀에서 오픈했다. 사실 동일 작가의 전시를 여러 번 관람하는 것은 그의 작품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발전 과정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주제나 스타일이 반복되면 관객에게 기대감을 떨어트리거나 피로감을 줄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보통 동일 작가의 새로운 전시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필자에게 있어 장 줄리앙의 전시는 조금 달랐다.


장 줄리앙의 작품은 매우 직관적이기에 볼 때마다 새로운 영감과 재미를 불러일으켰다. 그의 작품 속 창의성과 독창성이 필자의 감각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전시와 달리 장 줄리앙의 전시는 다시 보고 싶고, 또 방문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장 줄리앙의 전시회를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좋은 기회가 닿아 <종이 세상(PAPER SOCIETY)> 전시를 방문하게 되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과거 DDP 전시와는 확연히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평면 위주의 작품들이 아닌,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작가의 예술 세계를 확장시킨 공간이 펼쳐졌다. 마치 작가의 세계관 속으로 직접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드는 새로운 전시 공간이었다.


일률적인 삶을 꼬집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메인 캐릭터인 ‘페이퍼 피플(Paper People)’이 중심이 된 페이퍼 팩토리(Paper Factory)라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필자는 마치 내가 페이퍼 피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페이퍼 피플이 탄생하는 과정을 재현한 이 공간에서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똑같이 찍어내듯 만들어지는 종이 인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종이 위에 사람 모양을 그리고 이를 오려낸 후, 파란 물감으로 색칠하고, 똑같은 얼굴을 그려 넣은 뒤에 또 하나의 페이퍼 피플이 탄생한다. 


이런 일률적인 과정은 마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는 듯했다. 규칙에 따라 찍어내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떠올리게 했고, 이 단순해 보이는 작품 속에 인간 삶의 복잡한 현실을 예리하게 꼬집어낸 메시지가 담겨 있어 약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뱀이 상징하는 것



이어서 오른쪽에 있는 작은 문을 지나면 페이퍼 정글(Paper Jungle)이라는 공간이 나온다. 이곳에는 거대한 뱀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뱀의 몸에는 지구의 역사와 인류의 문화가 촘촘히 그려져 있었다. 지구의 탄생부터 인간의 역사와 소멸까지의 과정을 그린 그림은 단순한 역사적 관점에서도 흥미로웠다. 특히, 먼 미래에 인류가 결국 지구를 떠나 마치 멸망하는 것 같은 과정이 담겨 있어 뱀이라는 형상을 왜 선택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뱀은 종교적으로 유혹과 탐욕을 상징하기도 하며, 동시에 허물을 벗는 동물이기에 변화와 재생, 성장을 상징하기도 한다. 장 줄리앙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탐욕과 멸망, 그리고 변화와 재생이라는 상반된 주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게 아니였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다.


반대편에는 다시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고, 그 나무에서 페이퍼 피플이 탄생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었다. 이 과정 속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울퉁불퉁하거나 네모난 모양을 가진 종이 인간들이 자신이 되고 싶은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 그 특별함을 버리고, 일률적인 둥근 페이퍼 피플로 변해가는 모습이었다. 이 과정은 앞서 본 컨베이어 벨트 위의 페이퍼 피플과 무엇이 다른지 스스로 질문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마지막으로 왼쪽 문 안으로 들어가면 페이퍼 시티(Paper City)라는 공간이 나온다. 이곳은 현대 사회의 모습을 축소하여 그대로 재현한 공간이었다. 꽃집, 미용실, 카페, 영화관 등이 있었지만 장 줄리앙의 독특한 스타일로 바뀐 채 표현되었기 때문에 마치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간 것 같은 기분으로 만들어준다. 그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페이퍼 피플들의 모습은 현대인들의 삶 그대로를 투영하고 있었다. 이 일상적인 모습은 관람자인 나 자신이 겪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첫 전시에서는 장 줄리앙이 일상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작품을 소개했다면, 이번 전시는 그 일상적 영감을 바탕으로 탄생한 ‘페이퍼 피플’을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했다. 그 속에서 일상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우리가 그 평범한 소중함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특별한 전시였다. 언젠간 장 줄리앙의 또다른 전시가 열린다면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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