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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치의 장지혜 Nov 28. 2022

[1편] 프롤로그

스물네 걸음의 교정 여행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펜을 들기 시작한 계기는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주위의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들 때문이었다. 불현 득 어느 날 갑자기 더 이상 치과일을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향인인 내게 외부 자극이 더 크게 다가온 것도 있었지만 내면의 글만 쓰던 나였기에 시간과 열정을 쏟았던 일에 대한 연민 비슷한 마음으로 한 줄 글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심정이 그 출발점이었다. 

교정을 주로 하는 치과의사로서 혹시 먼 훗날이라도 나의 자녀가 치과의사가 된다면 한 번쯤 보여줘 봐도 될 만한 글을 남겨보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남겨진 글이 시간이라는 철갑에 둘러싸여 내 무의식 어딘 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을 테니 그것도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일에 관한 글을 쓰지 못했던 것은 학생 때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치과의사들은 정리의 달인인지라 미천한 나는 명함 하나 내밀 구석이 없었다. 크고 작은 시험 때마다 누군가가 구세주처럼 나타나서 시험 범위를 정리한 자료를 아낌없이 내주었고 보고만 있어도 감탄이 나오는 빼곡한 손글씨를 보면서 이것은 사람의 솜씨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곤 했다. 이렇게 정리를 잘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굉장히 작아져만 갔고 솔직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뜩 재미있고 간단하면서 비유를 이용한 쉬운 글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솔직히 부끄러운 마음이야 제본까지 하고 손에 쥐어 줘도 보지 않을 사람들은 보지 않을 것인지라 어느 정도 안심하고 글을 써볼 요량이 생겼다. 세세한 디테일까지 다 담지 않더라도 큰 윤곽만이라도 그려 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롤로그를 맨 마지막에 쓰는 부류도 있지만 가장 처음에 쓰는 부류는 출간되기 전이라도 마치 출간이 결정된 것처럼들을 쓰기 마련이다. 사실 다른 글들은 책으로 출간되기 전부터 당당하게 ‘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이 글은 ‘글’로 시작하게 되었다. 무대는 이 작은 나만의 공간이요, 관객은 미래의 치과의사가 될지도 모를 나의 자녀 그쯤으로 해두자. 

교정을 대하는 마음은 짝사랑의 마음이었다. 아낌없이 사랑을 쏟아부었지만 정면으로 드러내기에는 왠지 자신 없는 그런 복잡스러운 마음이다. 짝사랑이라 불리는 건 결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의 반증이니.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는 못해도 괜찮다는 것이 핵심이다. 설령 알아차린다고 해도 부디 아는 척하지 말아 주길 바라는 미련한 마음도 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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