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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옥미 Jul 07. 2021

익숙하지 그 정도의 통증은

육체적 아픔이 마음의 아픔을 구원할 때도 있었는데....

평생 크고 작은 통증을 달고 산다. 이 정도로 무슨 병원을 가는가 싶고 바쁜 일상은 그 시간조차 아깝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것이 통증인지 자각도 못하고 살았던 적도 있다. 허리디스크로 양쪽 대퇴부 바깥쪽은 감각이 없어진 지 하도 오래돼서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이 정도면 내 몸을 방치 아닌 방치였구나 싶다.


3년 전 우연한 기회에 교회 청년들과 다이어트 내기를 했었다. 특별한 운동을 해 본 적도, 시간도 없었던 난 걷기에 도전했다. 오래 걷는 것은 항상 시간에 쫓기고 심적 여유가 없었던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고 사치처럼 여겨졌다. 다이어트 핑계 삼아 함께 걸었던 시간은 속 깊은 이야기도 하고 하소연도 하면서 나이를 초월하는 깊은 연대와 친밀함을 쌓아가기 충분했다. 7~8km를 걷고 돌아온 날이면 대단한 성과를 낸 듯 뿌듯했고 그날 힘들었던 모든 것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도록 내 편이라고 속삭여 주는 시간이었다.


함께 걸어준 덕분에 살도 빠지고 감각을 잃었던 바깥쪽 대퇴부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예 감각을 잃어버렸었는데 통증이 있다는 것은 감각이 살아나고 있다는 증표였다. 아픔도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청년들도 각자의 삶이 있고 시간이 있으니 날 위해 함께 걷자고 하기가 미안해 혼자서라도 이 리듬을 깨고 싶지 않아 극성을 떨면서 걸었다. 함께 걷다 혼자 걸으니 거리가 얼마나 멀던지.. 지루하기가 그지없다. 멀리 여행할 때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이 좋아하는 사람과 가는 거라는 말이 딱 맞았다. 그럼에도 이미 경험한 걷기의 효능을 본 탓에 포기하지 않고 악착스럽게 걸었었다.


그러나 작년 11월부터 책방을 준비하면서 지금까지 걷는 것이 내 인생의 사치로 다시 등극했다. 몸은 다시 굳어가고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갱년기가 내게도 찾아왔다. 항상 열심히 살아와서 어지간한 일에는 달관한 듯 큰 요동 없이 살아왔는데 넘실대는 파도처럼 감정 기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나 자신의 모습에 실망이 되고 감정적으로 이해가 안 돼서 깊은 심연으로 빠져 숨도 못 쉬는 답답함에 죽을 거 같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버킷리스트 1번이었던 자전거 타기를 시도해서 배웠고 출퇴근도 가능해지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니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했지만, 더 나이 먹고 시도했다면 엄두도 못 냈겠구나 싶을 만큼 우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온몸의 긴장과 넘어질까 봐 두려운 마음은 뭐든 자신 있게 해냈던 그동안의 내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쫄보였음을 확인시켜줬다.


익숙해질 만할 때 사고가 났다. 지난주 토요일에 며칠 신경 쓸 일이 있어 잠도 못 자고 일은 바빠서 쉬지 못하는 상황에 밤 12시 넘어 자전거로 퇴근하던 길이었다. 아무도 없는 밤이니 마스크를 내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오른손을 핸들에서 뗐고 속도감이 있었던 자전거는 그대로 내동이 쳐졌다. 이제 걸음마 뗀 아이가 혼자 허들을 넘어보겠다는 것과 뭐가 다를까? 겨우 넘어지지 않고 익숙한 길만 달리는 실력에 왜 핸들에서 손을 아무 생각 없이 뗐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고 화가 난다. 내팽개쳐진 자전거에 깔려 일어날 수가 없었다. 밤늦은 시간이라 본 사람은 없어 다행인 마음과 누구라도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까지 들 정도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한동안 주저앉아있다가 겨우 일어났다. 무릎은 피멍이 들었고 핸들에 가슴이 부딪혀서 숨도 쉬기 어려울 만큼 통증이 있었다. 오른쪽으로 넘어졌는데 이해할 수 없게 왼손 엄지손가락과 손목을 쓸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지. 남편한테 전화할까? 딸과 사위가 아직 안 끝났을 텐데 전화할까?" 근처 사는 청년에게 도움을 요청할 요량으로 전화했다가 얼른 끊었다. 결론적으로 남편에게도 딸에게도 전화를 못 했다. 자전거 배우는 걸 결사반대했던 남편에게 들을 폭풍 잔소리는 상상만 해도 싫었다. 용기를 주고 자전거까지 사줬던 사위와 딸에게 자전거 타다 넘어져서 이렇게 다친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늦게 자전거를 배워서 출퇴근하는 엄마를 대단하다고 여겨주는 딸과 사위에게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나 보다.


월요일 아침에 핑계를 대고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손목에 골절 의심이 있다고 깁스를 해줬다. 가슴 통증이 심해서 뼈가 부서진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골절은 아니라고 해서 안도했다. 약을 처방받고 탈부착이 가능한 깁스를 하고 집으로 왔다. 그날부터 말하지 못하는 통증과 싸움이 시작됐다. 나도 모르게 "악" 소리가 날 정도의 통증이 손과 가슴에서 불시에 일어났다.


표현하지 못하고 말 못 할 통증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겪었다. 굳이 나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싫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통증을 말하는 것이 엄살처럼 보일까 봐 그럭저럭 한 통증은 무던히도 참고 살아왔다. 감각이 없어져 무뎌지거나, 심하거나 약하거나 통증은 항상 내 인생의 동반 감이었다.


요즘처럼 헛헛한 마음을 둘 길 없어 힘든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스스로 갱년기인가 보다. 잘 넘겨보자. 애써보지만 바람이 통과하며 뚫어놓은 휑한 가슴이 애처롭다. 평생 함께 한 통증이 익숙하련만 지금은 더 서러움의 늪으로 빠져버려 다시 나오고 싶지 않은 핑계로 삼고 있다. 이러고 싶을 때도 있지 않나. 그저 아프고 서럽고 외로운 대로 주저앉고 싶을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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