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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옥미 Aug 24. 2021

책방은 사각의 링

그럼 난 권투 선수?




'2층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소리가 잔잔한 음악을 뚫고 내 귓속으로 꽂힌다.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2층에서 멈추는 엘리베이터 소리가 왜 이리 민감하게 들리는지. 어느 때는 환청이 아닐까 싶게 작은 소리에도 내 마음과 눈길은 책방 입구를 향한다.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 스스로 자부하며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겨우 산을 넘었더니 또 다른 산을 만나듯이 매번 일이 끊이지 않았던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많은 부분을 가족과 지인의 도움을 받으며 직접 인테리어를 했다.  간판도 딸이 직접 디자인하고 CCTV와 전기온수기 등 전기 공사까지 유튜브를 보며 자가 설치를 했다.  돈 만 있으면 금방 끝날 일이다. 천정을 뜯었다 덮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이게 맞네 틀리네 서로 아웅다웅하며 핸드메이드 책방이 만들어졌다.


책방으로 등록하기 위해 서류를 준비하고, 세무서와 구청 환경 위생과 등을 다니며 법적 절차를 밟았다. 책 입고할 총판과 출판사와 연락하며 거래를 시작했다. 독립출판을 하는 작가와도 직접 연락을 하며 도서를 입고했다. 


여전히 휑하지만 차츰 책방의 모습으로 춰지는 모습에 얼른 오픈해서 손님을 맞고 싶어 엄청 설레었었다. 방을 시작하면서 부딪히는 일들을 하나씩 어갈 때마다 '왜 일은 벌여서 이렇게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 한탄과 버거움에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래도 해보니 되긴 하네' 어려운 일을 통과하고 해결했을 때의 대견함과 뿌듯도 채워졌다.  버거움, 번거로움과 대견함과 뿌듯함은 시소를 타 듯 오르락내리락했다. 든 것이 순조로웠다면 이 공간이 그렇게 애정 가득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애정만이 아닌 애증이 있기에 책방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


무엇이든 최종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제일 버겁고 힘들었다. 해보지 않았던 일이다. 가보지 않았던 길을 한 걸음씩 내딛으며 불안한 결정을 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를 막연함 두려움, 설렘, 기대감을 가지고, 2021년 1월 18일 많은 상가들이 코로나 시국이라 경영의 어려움에   때에 패기인지, 오기인지 모를 힘으로 책방을 시작했다.


책방지기로 벌써 7개월이 넘었다. 말이 7개월이지 뭣도 모르면서 시작한 책방은 사각 링에 타이슨과 매치하는 아마추어 권투선수 같았다. 도망갈 수도 없는 사각 링에서 보이지 않는 상대와 경기를 했다.


방 일은 해도 끊이지 않았다. SNS로 책방 정보를 올리다 보니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를 못한다. 책을 읽고 소개하는 큐레이션 책방이라 많은 독서량을 요구했다. 책 정리, 청소, 업체와 연락, 매일 새롭게 출간되는 도서를 파악해서 양서를 골라 입고하고, 반품 정리 등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아무도 오지 않는 책방을 지키는 일이었다. 혼자 섬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책방이 동네에 있는 것이 자랑이 돼야 한다고 여겼던 마음이 "이럴 수가, 이 정도였단 말인가"로 낙심이 되기도 했다.


홀로 사각의 링안에서 짧은 쨉 한번 날려보지 못하면서, 과로의 코피 터져보고, 허당 짓으로 실수를 하다 자괴감으로 눈두덩이에 멍도 들어보고, 혼자 책방을 지키는 외로움은 숨도 못 쉴 정도로  답답하고 폐부를 찌르는 고통을 남겼다.


다행인 것은 사각의 링안에는 보이지 않는 타이슨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코칭과 책임을 연대할 감독은 없었지만 결정하고 방법도 강구해야 하는 자리에 온기를 채워주는 존재들이 있었다. 물을 떠다 목을 축이게 해 주고,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때요?" 조언을 해주는 격려도, 생각지도 못한 먼 곳에서 책방에 와보고 싶었다며 멍이 든 눈두덩이 위에 계란을 돌려주며 위로 가득한 눈빛도 남겨줬고, 외로움에 잠식될 때 늪에서 건져주고 인공호흡을 해주는 존재로, 작은 잽을 날렸을 때는 누구보다 기뻐하며 환호해주는 칭찬을 만났기에 버틸 수 있었다. 


요즘여전히 버려진 섬 같았다가, 북적이는 놀이터 같았다가, 치료받는 병원 같았다가, 응원받는 선수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도 책방을 지키면서 어느 때는 외로움이라는 쓸쓸함과, 적자운영의 씁쓸함도, 뜻하지 않은 만남의 훈훈함도, 점점 단골이라는 이름의 사랑으로 채워지는 온기와, 응원의 힘이 시소를 타듯 서로 공존하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책방을 시작해서 힘겨움도 있지만 온 마음을 쏟은 애정이 깊이 담긴 곳이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오래 이 공간을 사랑하고 싶은 간절함이 나의 오감을 민감하게 반응하게 한 것이리라.


'이층입니다' 

이 소리가 자주 들렸으면 좋겠다.


오늘도 난 책방이라는 사각 링에 올랐다. 글러브도 싸구려고 스텝도 꼬이는 아마추어 선수지만 마음만은 타이슨과 결승 매치하는 결연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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