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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옥미 Sep 03. 2022

"엄마, 아버지 계시는 천국으로 가"

임종을 기다리는 자식은 불효자라는 멍에를 멜 수밖에 없다.




"어머님이 상태가 안 좋으세요"

96세의 친정 엄마는 20년이 넘게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생활하신다. 요양원 원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언젠가는 맞닥트려야 하는 일이건 만 심장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로 남편과 요양원으로 출발했다. 엄마는 뼈가 앙상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뽀얀 하니 이뻤고, 편안해 보였다.

여기기 만져보고 머리에 손을 얹었다. 엄마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그동안 엄마가 너무 고생했으니 평안히 주님 품에 안길 수 있게 해 달라고..

지금 이렇게 연명하며 사는 것이 엄마에게 어떤 의미를 남길까? 그동안 비위관으로 유동식을 드셨는데 얼마 전부터 튜브를 삼키지 않아서 큰 병원을 몇 군데 다니다 결국은 위루관 술을 받으셨다. 자식 된 입장에서 의사표현을 잘 못 하시고 눈도 잘 뜨지 못하시지만 소리에 반응하시는 분을, 굶어서 돌아가시게 할 수 없었다. 결국은 위에 바로 관을 연결해 영양을 공급하는 위루관 수술을 받으셨다. 얼마 있다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 엄마 사진을 받았다.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른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제대로 못 하기도 했고 내 몸도 많이 망가진 상태여서 엄마에게 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기에 더 죄송한 마음이었다.


결국 상태가 안 좋다는 말을 듣고서야 내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남편에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내색하지 않았지만 엄마에 대한 죄의식과 추석에 시어머님을 모시고 제주 여행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던터라, 오랫동안 누워계신 엄마와 여행이며 함께 한 기억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라 눈물을 삼켜야 했다.


요양원에서는 장례식장을 알아보라고 했다. 언니, 오빠와 상의해서 여기저기 알아보다 립병원 장례식장과 통화를 했다. 문의를 하고 앞으로 진행될 상황에 대해 조언을 들었다. 아직 숨이 남아있는 엄마를 두고 난 장례식장에 전화해서 이런저런 것을 물었다. 8남매 막내인 난 아버지 장례에서도 이런 일을 했다.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보다 이런저런 경험이 많은 내가 나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 이 일도 나에게 부여된 임무다.


엄마 41살에 몸조리하기 위해 낳은 막내딸은 지금 56살이다. 오랜 세월 침대에 누워서 생활하는 엄마의 삶을 지켜보면서 나이 듦, 늙어감에 대해 일찌감치 상념에 빠졌었다. 얼마나 고집스레 "잘 늙어야 해" 다짐을 하는지 모른다. 래도 엄마가 이렇게 요양원에라도 계시는 것이 큰 힘이 됐었다. 나이를 먹어도 엄마가 살아계신 것은 내 마음에 안식과 위안을 줬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엄마에게 이런 삶을 살아달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횡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고 엄마의 자리에 20여 년 넘게 누워있으라고 한다면 있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사실 난 내가 엄마처럼 이렇게 아프다 오래 살까 무섭다. 이번에 몸이 많이 아프면서 걱정과 다르게 오래 살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안도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형제가 많다 보니 서로 십시일반 해가며 엄마를 지금까지 모시긴 했지만 결코 마음과 물질이 어렵지 않았다고 말할 수없었다. 만약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겨우 지들 앞가림하는 자녀에게 이런 부담을 남기지나 않을까 염려 가득이다.


엄마에게 다음 날도 찾아갔다. 요양원의 배려로 면회를 할 수 있었다. 엄마에게 가면서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자식들 지켜보는데서 천국으로 가시기를.. 아버지도 혼자 보냈다. 임종을 보지 못했다는 죄의식이 여전하기에 엄마만큼은 혼자 외로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엄마 귀에 대고 이야기했다.

"엄마, 아버지가 천국에서 기다려. 이제 그만 고생하고 아버지한테 가"


아버지를 끔찍하게 사랑했던 엄마가 아버지 돌아가셨단 소식을 들으면 아버지를 따라갈 것 같았다. 8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소식을 이제야 전했다. "아버지 천국 가셨어. 엄마도 아버지 있는 곳으로 가서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아"


입을 달삭거리기는 했지만 엄마는 한마디도 할 수없었다. 눈도 뜨지 못하지만 눈가가 그렁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지금 5일째 여전한 상태이다. 매일 요양원과 연락하며 엄마 소식을  묻는다. 또 한고비를 넘겼나보다.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시간을 조바심 내며 기다리고 있다. 엄마 그만 고생하셨으면 좋겠다는 미명을 앞세워 돌아가시길 바라는 마음과 싸우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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