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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옥미 Oct 26. 2022

#1 엄마가 처음이었습니다.

입덧의 경험도 지금이라면 좀 낭만적으로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결혼 후 바로 아이가 생겼다. 입덧이 얼마나 심했던지 먹는 족족 구토를 해서 일주일을 거의 굶다시피 했다. 그러니 임신을 했다는 기쁨보다 입덧의 고통으로 힘든 날을 보냈다. 내가 꽃게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신 시어머님이 우리 올케언니 편에 꽃게를 보내주셨다. 올케언니가 끓여준 꽃게 매운탕을 먹고 입덧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입덧은 좋아졌고 친절한 이웃 덕분에 자주 밥을 얻어먹으면서 힘든 입덧 기간을 잘 이겨냈다. 


당시는 아이의 성별을 가르쳐 주는 것이 불법이었다. 배 속에 아이는 태동이 너무 씩씩했고 난 확신했다.

‘아들이다!!.’

임신 8개월 들어설 때 산부인과에서 조심히 말해줬다.

“엄마 닮았네요.”

무슨 확신인가. 난 그 말을 들었어도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태동은 한시도 쉬지 않고 아주 신나서 움직였고 축구선수가 되려나 싶게 역동적이었다. 아주 확실히 아들이라고 확신을 했다. 그런데 출산예정일보다 16일이나 빨리 양수가 터져버렸다. 양수였는지도 모르는 초보 엄마는 맑은 물이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산부인과를 찾았고 산부인과에서는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만 했다. 어쨌든 아이를 낳으면 친정인 인천에서 몸조리해야 했기에 인천에 있는 대학병원 산부인과로 갔다. 촉진제를 맞고 기다렸지만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다시 촉진제를 맞았다. 어쩌면 다른 병원이었으면 수술을 하자고 할 정도의 상태였는데 도리어 방치 아닌 방치를 당하며(?) 촉진제를 다시 맞고 나서 양수가 터진 만 하루가 지난 다음 날 한밤 중부터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터진 양수로 이미 홀쭉해진 상태로 진통은 지속되었지만 소리 한번 안 지르고 결국 새벽에 아들이라 확신했던 첫째 딸을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2.6kg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는 것을 겨우 면한 작은 아이였다. 태어나자마자 내 품에 있지 못하고 신생아 중환자실에 일주일 동안 입원했어야 했다. 자연분만을 한 난 다음날 바로 퇴원을 했고 입원한 딸을 만나러 면회시간에 맞춰 매일매일 살을 파고드는 봄바람을 맞으며 병원에 다녔다. 자동차가 쌩쌩 다니던 큰길을 따라 한 20분 정도 걸어서 병원에 다녔는데 아기를 볼 생각에 몸조리에 힘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 덕분에 난 산후풍이 걸려서 한약을 먹는 등 적잖이 고생했다. 사실 아직도 봄만 되면 등에 살살 바람이 들어오는 산후풍 증세가 남아있다.     


몸조리는 생각도 못했지만 중환자실에서 일주일 만에 퇴원해 작은 아이를 안고 친정으로 오니 마음이 편했다. 초보 엄마이긴 하지만 열 달도 못 채운 딸이 안쓰러워 어떻게 해서든 초유를 먹이려고 했다. 내 맘을 알아주지 못하는 딸은 모유를 소화시키지 못했다. 모유를 먹는 대로 설사를 하니 어쩔 수 없이 의사의 처방대로 특수 분유를 먹였다.  모유 수유의 낭만과 나중에 딸이 크면 생색을 좀 내보려고 했는데 결국 젖병과 씨름을 하며 밤잠을 못 자는 허둥지둥 엄마였다.

    

우리 딸은 정말 잘 울었다. 울어도 너무 울었다. 잠도 안 자고 밤에도 울었다. 갓난아기를 계속 안고 있지를 못해서 아직 등에 업기에는 빨랐음에도 아기를 업고 밤새 아파트 복도를 서성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의 소원은 "아 잠 좀 푹 자고 싶다"였던 것 같다. 지금 아기를 키우는 젊은 엄마들을 보면서 참 대단하구나를 느낀다. 정보도 빠르고 아이를 능숙하게 키워내는 모습을 보면서 난 얼마나 어설프고 불안한 마음으로 아기를 키웠는지 그때의 마음이 떠올라 내가 정말 진정한 왕 초보 엄마였구나를 느끼게 된다.     

아무튼 초보 엄마의 좌충우돌의 양육기가 시작되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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