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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옥미 Nov 11. 2022

#2 망막아세포종은 처음 듣습니다만...

암이란 놈이 어찌 이런 곳에도 생긴 답니까?

어릴 적너무 울어서 아버지 갖다 버리라는 소리까지 했다고 들었다. 8남매의 막내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기를 바랐건 만 운다고 버리라고 했으니 아버지 44살에 난 딸이 성가셨을지도 모르겠다. 하는 엄마 대신 언니들이 돌아가면서 날 업고 동네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요즘 드는 생각은 기억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난 왜 그리 울었을까? 분명 우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 까마득하고 절대 기억할 수 없는 그 시절이 유독 궁금해진다.


우는 것도 유전인지 지금은 결혼한 딸도 태어나서부터 엄청 울었다. 28살에 첫 딸을 낳은 는 아이를 달랠 방법이 없어 쳐 업고 그저 밤새 아파트 복도를 서성거리는 것 밖에   수 없었던 초보 엄마였다. 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먹이고, 아기가 우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다 채워줬음에도 울면 당해 낼 재간이 없어 쩔쩔매기 일쑤였다. 그나마 업고 걸으면 울음을 그쳤기에 그저 아파트 복도만 서성거리는 날이 잦았었다.


어느 날부터 아이를 목욕시키는 데 왼쪽 눈동자가 고양이 눈처럼 빛이 나는 것을 발견다. 뭐 그리 큰일이겠나 싶 생각에 예사로 넘기고 있었는데 영유아 예방 접종하간 김에 소아과 의사 선생님에게 운 마음으로 물어봤다.

"선생님 우리 아기 목욕시킬 때 형광등 불빛에 고양이 눈처럼 빛이 나요."

선생님은 깜짝 놀라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다. 이미 30년 가까이 지난 시간임에도 그때 빼빼 마른 소아과 의사 선생님의 당황한 표정과 버벅거리던 말투를 잊을 수가 없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설마 설마.. 병원 가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아무리 두려워도 지체할 수 없었다. 소개해 주신 영등포 김안과 갔다. 눈에 산동제를 넣고 검사를 하더니 망막아세포종이란 안구암 일 가능성이 크다며 더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과 전문병원엘 갔는데 더 큰 병원에 가보라 하니 정말 큰일이  났다는 생각에 한 숨도 잘 수가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지 용납이 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다. 그 자리에 내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었다.


다음 날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의 매우 건조한 말투는 나의 예민해진 감정선 건드렸다. 망막아 세포종이 맞고 MRI 예약을 하고 가라고 했다. 그때 그 말투가 얼마나 서운하고 쌀쌀맞았던지 지금 나의 불행이 마치 그 의사 선생님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불행을 어디에고 핑계 삼고 싶었나 보다.  나름 고상하고 우아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딸이 암이라는 소리에 세상 불행을 혼자 짊어진 사람처럼 넓은 병원 로비에 주저앉아서 펑펑 울었다. 아무 잘못 없는 의사 선생님 욕을 하면서 말이다.


생전 처음 듣는 병명이었다.  망막아세포종. 눈 안에 암세포라니...

왜 암이란 놈은 눈 안에서 살고 있는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왜 내 아이가? 왜 내 딸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렇게 사랑스러운 딸 눈 안에 암세포라니...


그렇게 폭풍 같은 시린 날이 시작되었다.  


진단을 받고 딸의 눈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그냥 보기에도 안쓰러울 만큼 딸의 눈은 암세포로 변이가 진행되었다. 새로운 문제는 암세포로 인해 보기 흉할 정도로 변해버린 왼쪽 눈을 적출하기로 결정했을 때 오른쪽 눈도 암세포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딸은 1995년 12월에 원자력병원에 입원해서 그다음 해 1월 초에 안구 적출술을 받았다. 그때 딸은 18개월이었다. 다행인 건지 당시 딸의 담당 의사인 이태원 박사님은 새로운 수술법으로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아니 아시아에서 손꼽는 의사 선생님이었다. 딸은 수술 후에도 오른쪽 눈 안에 있는 암세포와 싸우기 위해 4개월 동안 입원해 고통의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아주 오랜 전 기억이라 자세한 것은 많이 기억나지 않지만 병원 생활은 섬에 버려진 고립이었고, 작은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치료과정을 지켜보는 것으로도 매일의 버거움은 기준치를 늘 초과했다.


울음에는 이유가 있다. 괜히 울지 않는다. 딸의 울음에도 내가 느끼지 못하는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표현 못한 아픔이 얼마나 많았을지.  의안을 끼고 살아오면서 받은 깊은 상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울음을 삼키게 했텐데.


그때는 가늠하지 못 한 딸의 울음 속 아픔과 장애를 견디고 버텨내야 만 했던 시간이 떠오르면, 드러내며 울지 못하고,  삼켜야 하는 울음도 사치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그 작은 몸에 자리 잡을 곳이 없어 눈 안에 암세포가 살았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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