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 속 세상
3.
신호가 바뀌었다. 500미터 앞에 또 하나의 신호등이 있고 어김없이 내 앞에서 빨간불이 된다. 대기를 하는 곳에는 교보문고가 있던 건물이 있다. 규모가 크지 않아서 서점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서점은 현재 시점에서 살아남기가 어렵다. 서점은 살아남지 못하지만 나는 언젠가 책방을 하고 싶다. 동네 책방은 방향만 잘 잡으면 살아는 남는다. 서점에 잠깐 들러 몇 분 동안 서서 읽는 책은 꽤나 재미있다. 그러다가 그 재미를 죽 끌고 가고 싶으면 그 책을 구입하면 된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해서 택배로 받는 기쁨보다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손에 쥐고 들고 나오는 기쁨이 아직은 더 크다.
그러고 보면 10년 전까지는 대형 마트 안에도 서점이 다 있었다. 특히 내가 자주 가는 곳에 있는 서점 코너에는 책을 읽을 수 있게 파스텔 톤으로 설치해 놓은 푹신한 소파가 있었다. 지하에서 그로서리 쇼핑을 한 후에 그걸 들고 2층으로 올라 서점에서 책을 골라서 좀 앉아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것 때문에 대형 마트에 일주일에 서너 번은 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서점에 들러서 책을 읽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읽은 책 중에 책을 구입해서 나오게 된다.
그 덕에 대형 마트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즐거운 것들이 많으니까. 심각하지 않고 진지하게 사람들은 대형 마트에서 쇼핑을 했다. 위트와 유머가 가득했다. 바로 옆에는 수족관 코너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족관 역시 보는 재미가 있다. 열대어들이 유영을 하는 모습을 멍하게 보고 있으면 그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물고기의 유영을 옆에서 볼 수 있는 건 수족관 밖에 없다. 수족관은 완벽한 하나의 세계다. 수족관 속에 살고 있는 생명체에도 각각의 사정이 있다.
나의 활동 반경 내에는 작은 카페가 있다. 어느 날 카페의 주인이 어항을 들여놓았다. 길이가 60센티미터에 높이는 25센티미터 정도 되는, 물고기는 니모라고 불리는 열대어 두 마리에 말미잘 한 마리뿐인 작은 어항이었다. 산호나 다른 물고기는 없었다. 그런데 이동도 없는 말미잘을 보고 있는 것은 의식이 Zilch 상태가 되는 것만 같았다. 그저 ‘무’의 상태로 가만히 어항 속을 삼십 분, 사십 분씩 바라보게 된다.
매일 꾸준하게 보다 보면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 각각의 사정에 맞게 작은 어항 속이 자신들의 집이라 여기며 생활했다. 물고기 따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물고기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고 그들에게는 그만한 이유 역시 분명하게 있다.
어항 속의 물고기를 쳐다보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라는 게 소용없어진다. 어항 속의 풍경에 한없이 빠져들게 된다. 카페의 주인은 어항 속의 물고기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 동안 어항의 크기가 커져 수족관이라 불러야 했다. 수족관 속의 세계도 풍성해지고 물고기 역시 늘어났다. 규모가 상당해진 것이다. 수족관의 길이가 옆으로 1미터가 되었고 높이는 50센티미터의 크기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산호초 종류만 스무 여종이나 되었다. 열대어와 산호초를 꾸준하게 관리하는 일은 참 대단한 일이었다. 그건 그 세계가 사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 속 괴생명체처럼 보이는 말미잘도 있고 사람의 뇌처럼 보이는 산호도 있다. 하늘하늘 거리는 촉수가 비어져 나와 있는데 물고기들이 닿으면 괜찮은데 사람의 손이 닿으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물의 흐름이나 수족관을 비추는 빛의 양에 따라 촉수가 나오거나 들어가기 때문에 빛의 양과 물의 흐름, 흐름의 세기를 매일매일 체크해서 관리를 해야 한다. 정말 박수를 치고 싶어 진다. 그래야만 수족관 속의 물고기들과 산호와 말미잘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어항에서 수족관이 되었다면, 그만큼 크기가 커졌다면 커진 만큼 물고기들은 스트레스를 더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일 년 동안 죽어 없어진 산호와 물고기도 몇 마리나 되었다. 그들은 인간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의 세계가 싫어서 그대로 죽어버린 것이다. 수족관을 가지고 산호와 물고기를 키우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죽어가는 산호가 있었다. 죽어가는 산호는 죽어가는 물고기와는 다르다. 산호는 죽고 난 후 다른 산호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거나 다른 산호의 서식지가 된다. 수족관 속이지만 대단한 세계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