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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Apr 27. 2024

내가 가장 평안할 때(13) 옳은 말?

분쟁 지역에 '평안'을 전해주는 인생 사용법

본글은 12화 [연재 10] 악플러들은 들으라. 얍! 와 연계해서 읽으면 유익합니다




남을 돕는데 멀쩡한 자기 소유를 팔아서까지 구제한다?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소유중 팔아서 돈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 시대엔 집, 밭이나 논, 살림살이, 짐승 등일 것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전당포에 맡길 수 있는 품목일 텐데, 금반지 등 보석, 명품가방, 심지어 집이나 논밭등이 떠오릅니다. 소소하게는 당근마켓에 올라갈 수 있는 모든 품목이 여기에 들어갈 것입니다. 누가 힘든 사람을 돕는다고 멀쩡한 자기 물건을 당근마켓에 팔면서까지 도울까요?

ㅡ 청년 클레어 <생생큐티> 중 ㅡ
(상세 내용은 하단 참조)




사람들이 일상에서 평안이 깨지는 지점은 다양하다. 그중 단연 최고는 '말다툼'이다.


왜 사람들은 말다툼을 하는 것일까? 대부분 '내가 너보다 더 옳다'가 그 다툼의 핵심 논리이며, 그 근저에서 '이익 계산'이 깔려 있곤 한다. 서로 지지 않으려고 으르렁 거리다, 언성이 올라가고 감정이 폭증한다. 급기야 폭력 심지어 살기 어린 범죄에 휘말리기까지 한다. 층간소음, 주차문제, 운전문제 등 사소한 일부터 큰 문제까지 다양하다. 이번주는  연예인들 관련하여 다툼과 분쟁에 관한 뉴스들이 온라인을 도배하듯 폭증하고 있다.


사람들이 말이 어눌해서, 서로 설득시킬 수 있는 논리가 부족해서, 다툼이 결론 못내 끊이지 않는 것일까? 놀라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말을 너무 잘해서 다툼이 격화되는 것이다. 오히려 두 사람이 다툴 때 한 사람이 어눌하거나 어리숙하면 말다툼은 금세 종결되고 만다. 옳은 말을 너무 잘하는 사람들, 그런데 그 옳은 말 때문에 인간관계가 도리어 파괴되고, 외롭고 불안하고 소외되며 삶이 피폐해지는 사람들. 왜 그러는 것일까? 옳은 말을 잘못된 그릇에 담아서 하기 때문이며, 옳은 말을 본인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과잉 남발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어른들끼리 하는 말 중에 듣기 불편했던 여러 단어나 묘사들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말쟁이'였다. 말쟁이는 사전적으로도 말을 잘하거나 말이 많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단어라고 한다. 말을 잘 하는 것이 왜 욕 얻어먹을 일일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런 단어를 휘두르는 화자부터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근데 내가 중학교를 가지도 전에, TV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이나 유명인들, 동네 어른 세계에서 목도한 것은 이른바 말풍선이 가득한 '이상한 나라의 옳은 말 대잔치'였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옳은 말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데 도리어 가족간 또 이웃간 다툼과 분쟁, 각종 범죄와 빈부격차, 비리 등 온갖 사회문제는 더 심화되는 것만 같았다. 분명 누군가 옳은 말을 할 때는, 세상을 또 나와 우리 모두를 더욱 좋게 선도하기 위함이었텐데 말이다.


철이 들면서, 어른들이 서로에게 겨냥한 '말쟁이'란 말이 갖는 비릿한 뉘앙스를 점점 알게 되었다. 그리고 종교인들은 말만 잘 하는 이들이란, 말에 관한 뼈아픈 책망의 어감도 체감하게 되었다.


"너나 잘하세요!"

"당신부터 실천하고나 말하세요!"

"당신 잘못이나 먼저 인정하고 교정하고나 말하세요!"


즉 본인도 실천하지 않고 또 실천할 생각도 없는, 무겁고도 이상적인 도리와 법, 개념, 종교적 교의를 무한대로 설계해서 설계도면을 베푸는 사람들, 그들을 향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일침인 것이다.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태복음 23:1-7)



예수님은 세리(악덕 사채업자에 준하는 매국노)나 창기(매춘녀)보다 이런 말쟁이 곧 말만 잘하는 위선자를 더 악한 부류로 분류했으니 가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사회에 해악을 끼친 사람보다 더 악할 수 있고 심지어 손 쓰기 어려운 이가 '위선자' 였던 것이고 이는 놀라운 통찰이다. 말로, 온갖 미사여구와 현학적 수사를 설파하면서, 뒤에서는 음란과 거짓, 간음, 착취, 미움, 다툼, 시기, 탐욕, 게으름에 찌든 이중적인 사람들을 향한 날 선 책망인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우리네 삶에서 평안이 파탄 나는 지점을 돌아보면, 내 '행함'이 아닌 내 '말'이 앞설 때이며, 말로 나의 민낯을 포장할 때다. 부부, 부모와 자식, 친인척, 친구, 연인, 지인 등등과의 관계를 돌아보라. 말을 틀리게 해서 다투는 게 아니다. 희한하게 서로가 옳은 말을 하는데, 평안이 깨지고 다툼이 증폭되는 이유에 대해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말쟁이, 이 지칭은 발화하는 말에 책임을 지라, 말에 무게감을 가지라는 책망일 것이다. 나도 다 실천할 수 없는 지점이라면 적어도 회개와 반성을 먼저 하고 겸양하여 말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나도 다 감당할 수 없는 옳은 말이라면 타인에게 가르치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엄중한 반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살아야 할까, 인간의 죄성에 입각하면 누구도 자기 말한 대로 완벽하게 살 수 없으니 말이다. 그 보단 온전한 언행일치가 어려운 자신을 절감하고, 그렇기에 어느 순간에도 절대자를 의식하며 겸비하며 말하고, 어렵더라도 말한 대로 살고자 작은 일부터 실천하려 애쓰라는 의미일 테다.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11-13,15)



지극히 작은 한 가지부터 실천하기

예수님께서는 인간에게 완벽하라 요구하진 않았다. 그보단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선행을 또 회개가 무엇인지 살피라고 하셨다. 깨달았으면 즉각적으로 또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라는 것이다. 


동시에 내가 선을 행했다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로 거드름을 피우듯 영적 우월감을 갖지도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이사야 64:6)



인간의 선행은 더러운 옷 같아서, 그 중심의 동기가 순수하기가 진실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선을 행할 때, 인간이 가져야 하는 자세는 내가 의롭다, 내가 남들보다 괜찮다가 아니라, 내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질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정도의 온도일 것이다.


인간은 옳은 말만을 잘 구사해서는 평안을 사수할 수 없다. 그 옳은 말에 내가 먼저 납작 엎드려 절절히 참회하고, 절절히 실천할 때, 평안은 내 안에서 먼저 구현된다. 나아가 그 평안해진 사람들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평안을 전할 수 있다.


오늘 한 가지 회개해야 할 죄, 한 가지 실천해야 할 지극히 작은 선행은 무엇일까. 평안을 안겨주는 이 비밀스러운 첫마디가 우리의 하루 첫말이 되길 바래 본다.

                                                                                                                



 




















*아래는 조카와 넷째 언니 가정을 도와주며 재정적으로 빠듯함이 밀려오던 시절에 묵상했던 큐티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또 지극히 작은 일들 속에서, 아는 바를 실천하는 삶이 왜 중한가를 고뇌하고 회개하고 다짐했던 말씀입니다. 이 큐티를 하고 거이 한 달 후에 짝꿍의 자투리 땅을 1억에 사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실로 먹고사는 문제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심을 절감했습니다. ( [숏글 2] 사십춘기 커플의 대화)






[생생큐티] 2024년 3월 12일(화)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누가복음 12장)

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먹고사는 문제.

가끔 내가 살기 위해서 먹고 사는지, 아님 먹고살기 위해 사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른바 인생에 주객전도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헷갈림은 때마다 인간의 삶에 깊이 침잠되어 다양한 가치관, 세계관, 철학 나아가 사회 병리현상으로까지 비화됩니다. 가끔은 이 두 전제 모두가 참인 것 같다가도 아닌 것도 같다가, 그런 갈팡질팡을 반복하곤 합니다.     


그런 제게 오늘 말씀은,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방향성을 줍니다. 누가복음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 말씀이 나온 단초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중의 한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한 것입니다.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얼핏 보면 참 억울한 모종의 일이 있어 보이고 예수님의 인지도를 써서 선악 간 한마디 말씀을 해주셔도 좋을 듯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다소 냉정하다 못해 인정머리가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무리 속에 묻혀서 자신을 좇던 이 사람의 질문에서, 핵심 키워드를 ‘탐심’으로 뽑고 있는 것입니다. 이 대목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한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유산문제에 손을 놓고 다 양보하란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때론 그런 시시비비도 분별력을 갖고 가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신 것은 그 문제의 사안이 아니라 이 사람이 이 질문을 한 타이밍과 상황입니다. 예수님이 병들고 약한 자를 도우며 천국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그는 내내 유산문제에 함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좇지만 진짜 예수님이 인생들에게 베풀고자 하는 복음 곧 죄와 사망권세에서 구원받는 문제는 안중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삶의 우선순위의 지점에서 그의 탐심을 책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계기로 12명의 제자와 다른 무리의 사람들도 단속을 해야 한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23절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이 말씀을 전제로 제자들이 인생 살면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방향성을 가르쳐 주십니다.


22절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것, 입는 것이 필요함을 인정하셨습니다. 동시에 그 필수적인 것들이 목숨 자체보다 즉 내 영혼이 구원받는 것보다 더 우선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의식주 문제가, 내 영혼의 구원과 참된 생명보다 인생에서 좀 더 중요한 문제가 될 때, 나타나는 초기 증상이 ‘염려’ 임을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중증으로 발병하는 것이 ‘탐욕’인 것입니다.      


그러나 또 그럼에도, 예수님 시대를 2000년이나 뒤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생각합니다. 어떻게 먹고사는 문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느냐, 그것에 대한 탐욕을 억누를 수 있냐고 말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30절 말씀을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즉 의식주 문제는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고, 나는 이 땅에서 다른 문제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31절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렇다면 ‘그의 나라’ 곧 하나님께서 실천하기 원하시는 ‘그의 의’란 무엇입니까?


 33절 a을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이 얼마나 존재보다 소유에 집착하고 매이기 쉬운지 아십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집중하기보다 틈만 나면 먹고사는 의식주 문제에 매이다, 인생이 흘러갈 수 있는 것도 아십니다. 그렇기에 위로나 격려, 타이름이 아닌 ‘책망’이라는 고강수를 두신 것입니다.     





저도 조카의 세금추징을 비롯하여 누적 1억원 넘게 도와주면서, 정말 영혼이 탈탈 털리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저번달 2월 말에 아파트 최종 잔금 치르고 전세세입자 들이는 과정이 겹치면서 현금이 동이 나다 못해 마이너스가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언니 가정을 내가 이렇게 등판해서 땜빵하듯 도와주어야 하는 건지, 이 때문에 때마다 시마다 내가 재정적 빠듯함에 노출되고 일상에 균열이 생겨야 하는지 생각했습니다. 이럴 때는 원래 하던 기도와 말씀, 봉사 심지어 직장일에 집중할 동력을 잃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려는 길이 말씀이 지향하는 바라 하십니다. 정말 어려운 사람, 누가 봐도 벼랑 끝에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내 주머니의 돈을 내어 돕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오늘 말씀은 ‘소유를 팔아’ 서까지 굶주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말합니다. 그 대상도 가족이나 지인으로 못 박지 않은 것을 볼 때,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소유를 팔아서 구제를 해야 한다는, 확장된 개념이 가능합니다.


남을 돕는데 멀쩡한 자기 소유를 팔아서까지 구제한다?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소유로서 팔아서 돈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 시대엔 집, 밭이나 논, 살림살이, 짐승 등일 것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전당포에 맡길 수 있는 품목일 텐데, 금반지 등 보석, 명품가방, 심지어 집이나 논밭등이 떠오릅니다. 소소하게는 당근마켓에 올라갈 수 있는 모든 품목이 여기에 들어갈 것입니다. 누가 힘든 사람을 돕는다고 멀쩡한 자기 물건을 당근마켓에 팔면서까지 도울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자기 일상에 균열이 온다 느낄 정도까지도 ‘구제’에 집중하라고 하시며, 그것의 중요도가 높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제가 진짜 '이모 호구'가 된 게 아닐까, 심지어 내 형제자매도 저를 말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넷째 언니가 수술로 일을 할 수없고 조카도 공교롭게 사업실패로 길바닥에 나앉게 된 이 두 가지 중첩된 사건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소유에 대한 아니 구제에 대해서 제가 어디까지 확장해서 실천하는지 테스트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3월 이번달까지, 저는 제 삶에 균열을 감수하고 조카를 구제하고 애썼던 이유입니다.     


이 예수님은 이런 제게, 내게 있어야 할 것들, 내 인생의 필요를 다 알고 있으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그것을 하나님께 의탁하라고 합니다. 제가 남을 돕고도 내 인생의 의식주를 염려하다 예수님을 잃는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제가 이를 기억하고 조카 때문에 생긴 재정의 빠듯함을 다시 하나님께 아뢰므로 하나님의 채우심을 경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이 길이 소수만이 가기에 예수님께서는 말미에 이 말을 덧붙이십니다.      


누가복음 12장 31절 -32절.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손해 보고 심지어 위험을 자초하는 우리에게, 그의 나라를 내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더 큰 그림을 축복으로 선언해 주십니다. 제가 일시적인 육체의 결핍과 마음의 부침에 눌리기보다 이 큰 축복의 말씀을 붙들고, 주도적으로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누가복음 12:1-59


1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2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7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11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12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38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41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52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54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55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56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57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58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9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사진, 그림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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