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저녁 6시 30분에 있는 비즈니스 미팅을 가기 전에 끝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이럴 때 엄마는 정신이 없어진다.
“얘들아. 엄마 가기 전에 이거 해야 정글의 법칙 볼 수 있잖니~ 빨리 하자!”
아이들의 생활에 활력을 주기 시작한 점수제에서는 90점을 넘어야 TV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다. 바쁜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천하태평이다. 시간이 다 되면 엄마가 정신없이 뛰어가겠거니 생각했을까? 예상과 다르게 내가 아이패드를 들고 미팅하러 가려고 하니, 민서가 막 소리를 지른다.
“엄마 나빠요!!” 그리고벽을 쿵쿵 치기까지 한다.
바쁜 엄마는 일단 “민서 너~ 마이너스 3점이야!” 소리 지르고 미팅에 헐레벌떡 뛰어갔다.
“얘들아~ 엄마 왔다~~”
“엄마^^ 미안해요~~ 저 정글의 법칙 보면 안 돼요?”
“민서야. 할 일을 먼저 하고서 봐야지~~”
“엄마~ 지난 월요일에 안 본거 있는데요?”
“글쎄다. 엄마는 모르겠는데? 기억이 안 나~”
“맞아요. 그날 인터넷이 안돼서 못 봤어요........
치~~ 엄마는 나쁜 엄마야!”
그렇게 해서 잠자기 전 신경전이 벌어지고, 나는 이 점수제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다음날 오전 작업시간, 며칠 동안 내린 비 덕분에 농장 앞 정원에 쑥쑥 자란 풀을 뽑고 있었다. 내 옆에서 풀을 뽑던 지민이가 슬그머니 얘기를 시작한다.
“엄마~ 어젯밤에 언니랑 얘기 안 끝냈잖아요.”
“그래. 맞네~ 끝내야지. 지민이는 어떻게 생각하니?”
“음.. 언니가 엄마한테 나쁜 말 한 거 잘못했어요~~”
“그래? 우리가 점수 계산해서 TV 볼 수 있게 하는 목적이 뭐라고 했지?”
“학교 진도 맞추려고요. 우리가 학교도 안 가는데 당연히 공부는 해야죠~~”
아이나 어른이나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은 눈에 너무 잘 보이나 보다. 아직 어린 줄 알았던 지민이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동생의 말에 민서가 한마디 대꾸한다.
“에구~~지민아. 너~~ 말은 청산유수 구만?”
“그러게. 우리 지민이도 알건 다 아네~
민서야! 너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음. 정글의 법칙 금요일, 밤을 걷는 선비 수/목요일, 개콘 일요일만 보면 안 될까요?”
“그래? 여전히 좀 많은 것 같은데?”
“언니! 왜 언니가 보고 싶은 것만 봐? 난 우결이 보고 싶단 말이야~~”
“에구... 그러다가 안 끝나겠다. 얘들아. 아빠랑 상의 좀 해 볼게~~”
점심시간, 날씨도 별로 안 좋고 마음이 가라앉아 아이들을 책상에 앉힌다.
“얘들아. 저녁에 사람들이랑 보드 게임하려면 시간이 없으니 지금 문제 풀어야 하지 않을까?”
“엄마~ 저 이거 꼭 해야 해요? 하기 싫단 말이야. 이거 싫어요.”
“지민아. 너 어제 받아쓰기 틀린 거 다시 시험 안 봤는데... 다시 봐야지. 그리고 오늘 것도 해야 하고..”
“내가 왜요? 싫어~~ 안 할 거야. 흥...!”
“지민아. 당연히 해야지. 넌 문제도 안 풀고 받아쓰기만 하는데... 아까 아침에 언니 얘기할 때는 맞는 말을 잘하더니, 지금은 왜 이러니?”
“싫어요. 나 이거 받아쓰기 안 해요. 재미없단 말이에요.”
“너 엄마가 기회를 주는데도 자꾸 그러니? 그러면 오늘 오후에 혼자 집에 있어. 혹시라도 밖으로 나오면 아빠랑 통화해서 한국에 보낼 거야. 알았어?”
지민이를 혼자 놔두고 오후 2시 작업을 하러 가는데 민서가 묻는다.
“엄마~ 진짜 지민이 놓고 갈 거예요?”
“응. 그래야지~ 그것이 지민이를 위한 것 같아. 맨날 동생이라고 봐주고 했더니 안 될 것 같아.”
“응. 알았어요....... 그래도 나는 지민이 데리고 가고 싶어요. ㅠ.ㅠ”
“걱정 마~ 엄마가 이따 휴식시간에 가볼게~”
게다가 오늘은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가는 날이다. 하루 종일 엄마랑 붙어 있는 아이들을 위해 조안, 앨리, 우리 집 아이들을 데리고 목요일마다 놀이 이벤트를 하기로 했다. 오늘 수영을 하러 갈지, 폭포 구경을 하러 갈지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민서는 수영복을 챙겨 들었다.
“Ray~ 지민이는 왜 같이 안 왔어요?”
“네. 방에 있어요. 지금 벌 받고 있는 중이에요.”
“네~ 그런 것이 필요할 때도 있죠~”
요즘 비가 계속 와서 물 온도가 떨어져 수영은 안 되겠다며 조안은 아이들을 데리고 볼링을 치러 갔다. 나는 어제 딴 체리열매의 씨를 빼고 살 부분만 비닐팩에 담는 작업을 하였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일을 했지만, 마음속은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다행히 수확한 체리 양이 많지 않아서 3시 15분경에 일이 끝났다. 얼른 집으로 뛰어가서 방문을 열었다.
“지민아~ 뭐 했어?”
“엄마~ 지금 왜 왔어요? 나가요. 나중에 와요.”
“어머. 지민아. 방이 왜 이렇게 깨끗해?”
“응~ 자세히 보니까 방이 너무 지저분해서 정리하고 있었어요. 아직 안 끝났는데...”
“아이고~ 우리 딸... 그랬구나! 대단한데? 이제는 마음이 정리가 되었니?”
“네~ 집에 있는 것도 좋더라고요. 이렇게 청소도 하고... 비오기 전에 차 꽃잎도 따 놨어요.”
“와. 잘했다. 우리 얘기 좀 할까? 오늘 뭘 배웠니?”
“응... 그냥... 음....”
“오늘 몇 번 실수했지?”
“많이요...”
“엄마가 실수는 할 수 있다고 했지. 그런데 그걸 안 다음에는 바로 어떻게 하라고 했지?”
결국 지민이를 안아주며 엄마의 훈육이 끝났다.
지민이는 유난히 자존심이 강한 아이다.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입으로 소리 내어 표현하는 것을 정말 어려워한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벌을 주어도 소용이 없을 때가 많다. 부모가 아이와 기싸움을 벌일 때 어떤 방법이 현명한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또 한국에 혼자 보낸다고 해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왔는데... 지민이가 자기감정을 잘 추스르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니~~ 안도감이 느껴진다. 그러면서아이들과 조율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피로감이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