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이면 Moo-tel로 송아지를 돌보러 가게 됐다. Moo하고 소리 내는 송아지들이 머무는 곳이니 이름을 Moo-tel로 지었단다. 태어난 지 1년이 안된 아기 송아지들만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송아지들의 잠자리를 깨끗한 건초로 갈아주고, 밥을 주고, 파리 테이프를 감는 것이다. 건초는 잠자리용과 식사용으로 나뉜단다. 돌돌 말린 큰 원모양의 잠자리용 건초를 뜯어서 소 우리 바닥에 깔아야 한다. 일이 생각보다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민서야~ 엄마 이제 소 우리에 들어간다. 빨리 건초 좀 넣어줘~”
“네~ 엄마~”
“어머~ 민서야. 이 송아지가 엄마 옷을 또 빨아먹었네~ 배가 많이 고픈가 보다.”
“엄마 옷이 다 젖었어요. 하하하”
정말이지 송아지들은 입을 한시도 그냥 안 둔다. 저번 주에는 내 바지가 거의 통째로 송아지 밥이 되었다. 오늘은 조금 요령을 피워 살살 피해 다니는 중이다. 간밤에 송아지들이 똥이랑 오줌을 많이 쌌는지 온통 질퍽하다. 깨끗한 건초더미로 갈아줘야 송아지들이 앉아서 쉴 수 있다고 한다. 여기저기 서성이는 송아지들을 보면 내 마음이 급해진다.
“엄마~ 신발 좀 봐요. 똥이 다 묻었어요. 더러워요~”
“그러게 말이야~~ 운동화를 신고 와서 다행이야~ 민서야 빨리 건초 더미 좀 줘~”
“엄마! 지민이는 일도 안 해요.”
“야!! 지민이 너도 빨리 좀 해~~”
“나~ 싫어~~~ 언니”
“그러게 말이다. 엄마가 빨리 끝나야 같이 놀텐데...”
매번 우리들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이다. 지민이는 한두 번 해보더니 재미가 없어졌나 보다. 아빠랑 통화할 때 일렀더니 그래도 한 두번 한 것이 어디 냔다. ㅠ.ㅠ
오늘은 송아지 몇 마리가 안 보인다. 일리에게 물었더니 앞 농장에 팔았단다. 입구 쪽에 지난 일요일에 태어난 아기 송아지가 보인다. 아직 아기라서 그런지 밥도 많이 안 먹고, 조용히 누워있다. 역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들은 다 이쁘다. 눈을 꿈뻑 꿈뻑하고 있는 송아지를 보니 시간이 엄청 빨리 간다.
“일리~ 펜스는 왜 치고 있어요?”
“오늘 오후에 9개월 이상된 소들이 밖으로 나가거든요. 6마리요.”
“아~ 그래요? 이제 풀들을 먹을 수 있게 되었나 봐요.”
“네. 맞아요. 그리고 숫 송아지 몇 마리를 팔려고요.”
이 Moo-tel에도 계속 변화가 있다. 새로 태어난 송아지, 이제 성장해서 밖으로 나가는 송아지, 팔려나가는 송아지...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작업은 파리 끈끈이 교체하기이다. 지난주에 윌이 가르쳐 줄 때는 쉬워 보였는데 웬걸~ 정말 어렵다. 끈끈이 줄에 달라붙은 파리 시체들을 손으로 만질 때는 기분도 썩 좋지 않다. 그래도 민서랑 협력한 덕분에 오늘 할 일이 순조로이 마무리 되었다. 야호~!
점심 먹으러 집에 가는 길~ 시간이 남았으니 내가 요즘 가꾸고 있는 꽃밭을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어머~ 깜짝이야! 주말 동안 훌쩍 자란 꽃들이 눈에 띈다. 그리고 그 옆에 꽃만큼 많이 자란 잡초도 보인다. 간밤에 내린 비 덕분에 잡초 뽑기가 수월하다. 쪼그리고 앉아서 풀 뽑기를 하고 다시 집으로 출발~
오후에는 집안일 담당이다. 오늘은 지하실에 있는 냉장고를 정리하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정말이지 매일매일 청소 청소다. 휴~~ 오늘은 하루 종일 구름이 꼈다가 햇빛이 비치고 날씨가 오락가락한다. 다행히 오늘 저녁은 릭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Morning하우스에서 바비큐 파티를 한다고 한다. 야채를 볶고 양배추로 겉절이를 해서 챙겨본다. 저녁을 먹고 커뮤니티 센터로 가는 길, 하늘이 개이더니 정말 아름다운 무지개가 보인다. 이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어본다. 하늘을 보는 사람들이 모두 신이 났다. 밥할아버지는 전문가용 카메라를 가져오시더니 애견 엘라랑 산책을 가신단다.
우리 셋은 하루의 마무리를 위해 커뮤니티센터에서 피아노 연습과 줄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우르릉 쾅쾅 천둥이 치더니 폭우가 내리기 시작한다. 무서운 소리에 놀란 아이들이 내 가슴팍으로 달려든다. 그런데 이 느낌? 상당히 좋다. 이제는 몸이 크고 자기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 아이들에게 가끔 어딘지 모르게 허전함을 느낄 때가 있다. 아기 때처럼 조건 없이 엄마의 가슴으로 달려드는 것이 벌써 그리울 때란 말인가? 두 아이를 안고 있으니 내가 무언가 된 것 같고, 정말 큰 존재인 듯한 착각에 빠진다. 셋이 부둥켜안고 무섭게 내리치는 폭풍우를 구경하는 것도 나름 운치 있다.
밖을 내다보던 아이들이 갑자기 밥 할아버지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엄마~ 밥 할아버지랑 엘라는요? 카메라 들고 멀리 나갔는데... 비가 이렇게 많이 와서 어떻게 해요?”
“응... 걱정하지 마~~ 할아버지는 지금 어딘가에 피해 있으실 거야. 잘 돌아오실 거야~”
“엄마! 저기 엘라가 뛰어오고 있어요. 근데 혼자 오는데요?”
“어디? 어... 애들아~~ 저기 뒤에 할아버지도 오시는데?”
“엄마! 할아버지 가슴에다가 카메라 넣고 오시나 봐요. 젖지 말라고~~”
“엄마! 엘라가 집에 도착했는데도 안 들어가요.”
“할아버지 기다리겠지~ 주인이 안 왔잖니~~”
하얀 턱수염을 한 파파할아버지와 개가 만나는 장면, 정말 아름답다. 폭우가 내리고 있어서 밖에 나가 밥할아버지와 엘라를 맞이하지는 못하지만, 찰칵 카메라에 담아본다. 저런 모습은 오랫동안 함께 한 관계에서나 나오는 것이리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엘라는 항상 할아버지를 쫓아다닌다. 심지어는 차를 탈 때도 조수석에 떡하니 앉아 있다. 나중에 제니할머니한테 그 장면을 얘기했더니 막 웃으신다. 엘라는 평소에도 천둥을 엄청 싫어한단다. 지난번에도 할아버지랑 산보를 나갔다가 천둥이 치니까 혼자서 집으로 냉큼 달려왔단다. 지난번 소방 알람이 울렸을 때 할아버지가 없으니 그제서야 본인한테 안기더란다. 엘라의 주인은 할아버지여서 할머니는 항상 두 번째라고 하신다. 밥할아버지와 엘라~~ 너무 잘 어울린다.
우리는 폭풍우가 가랑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서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머리 위 하늘색들이 천차만별이다. 아이들이 아름답다고 자꾸 가리켜서 그쪽을 향해 찰칵 사진을 찍어본다. 쪼리를 신고 나왔더니 종아리와 바지에 온 통 흙물이 튀어버렸다. 흙물이 다리에 튕길 때마다 웬일인지 우리 셋의 마음이 통하고, 즐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