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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 Feb 17. 2020

이방인 같은 존재

깍쟁이 션과 대화 -Community Homestead 23

오랜만에 아무런 이벤트도 없는 토요일이다. 어젯밤 마무리해야 할 것이 있어서 늦게 잤더니 어김없이 늦잠이다. 아이들에게 숙제를 시키고 집안일을 하고 있으니 오전 작업을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금세 점심시간이 되었다. 주방에서 션이 열심히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고, 그 옆에서 조이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다.

“조이? 오늘 타운에 꼭 가야 하는 거예요?”

“네~ 션. 도서관에 연체금 내러 가야 해요.”

“그것만 하면 되나요? 릭이 1시에 타운에 잠깐 다녀온대요. 목장 앞에서 만나서 가자고 하네요.”

조이는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이 꽤 큰 것 같다. 1시까지 목장 앞으로 나가야 하고, 그전에 점심을 먹어야 하니 불안해지나 보다. 화장실 가고 싶은 강아지처럼 전전 긍긍하고 있다. 션은 서둘러서 음식을 만들 조이가 먹게 한다. 조이가 출발하 이제 좀 편안해진다.      


션이 음식 챙기는 것을 보면서 오랜만에 식구가 다 있으니 같이 먹는 것이 좋겠다 싶다. 나도 빵을 굽고 세팅을 하기 시작한다. 주방 안에 있는 션이 매우 바빠 보이고, 들어갈 자리도 마땅치 않다.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보고 싶어도 왠지 불편해하는 스타일이라 말을 아끼고 있다. 거의 식사 준비가 되 식탁에 앉았는데 아이들이 한 마디씩 하기 시작한다.

“엄마~ 치사하게 계란을 3개만 후라이 했지 뭐야. 자기네들만 먹어요.”

“응~ 민서야. 그게 무슨 말이니. 너도 계란이 먹고 싶니?”

“네. 나도 먹고 싶어요. 엄마. ㅠ.ㅠ 치.. 나 빨리 한국 집에 가고 싶어요.”

"지민이도 계란 먹고 싶어요!"


순간 당황스럽다. 계란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인가 쉽다. 션, 윌, 닉 이렇게 세 사람만 계란을 먹고 있다. 방금 자리에 앉은 스티븐도 계란이 없다.

먹는 것에 예민한 민서 앞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잘못 걸렸다 싶다. 한국에 간다고까지 하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스티븐~ 계란 후라이 먹을래요?”

“네~ 좋아요.”

그 소리에 바로 주방에 들어가서 계란 3개를 후라이 해서 가지고 나왔다.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편 가르기를 하는 느낌이 든다. 화가 나서 입맛이 싹 달아나서 대충 먹고 내 방에 들어왔다.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책상에 앉아서 멕시코 여행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화가 나서 그런지 그동안 묵혀둔 감정들이 올라온다. 션은 평소에 인사도 잘 안 하고, 먼저 말을 거는 경우도 거의 없다.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랑 농담도 잘하면서 우리한테는 그렇게 안 해서 아이들이 서운해하고 있었다.

“엄마~ 션은 다른 애들한테는 웃으면서 얘기도 잘하는데 우리한테는 안 그래요~”

민서의 하소연이다. 가끔은 이 친구가 나를 경쟁상대로 여기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어린 친구한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지금까지는 개의치 않으려고 했는데... 요즘 통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한다. 수요일인가는 션이 저녁식사 당번인데 음식이 늦어졌다. 기다리다가 6시 30분 미팅에 가기 위해 아이들만 남겨두었다. 물론 아이들이 방에 있다고 얘기도 해줬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기다려도 저녁 먹으라는 얘기가 없어서 주방에 올라갔더니 이미 식사를 끝내고  음식이 냉장고에 들어가 있더라는 것이다. 기분이 너무 나빴다고 한다.      


아무래도 안 되겠기에 어제 스탭 윌에게 살짝 내 고민을 얘기했었다. 윌은 션이 요즘 일이 많아서 바빠서 그럴 것이라고 얘기다. 내가 영어만 잘하면, 식탁에서 한바탕 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어설프게 얘기해서 괜히 서로 불편해지면 안 되니까 참느라 힘들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는 서로에 대한 배려, 챙김이 필요한데 그런 마음을 션에게서 느끼기 힘들다. 나름 내가 음식 조리를 할 때도 채식주의자인 그녀의 식사를 별도로 챙기고, 주방을 어지럽혀 놓으면 설거지도 대신하는 것들이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전혀 못 느끼는 것 같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단둘이 얘기를 좀 해야겠다 싶다. 평소 조이에게도 뭔가 명령조로 얘기하는 그녀의 모습이 계속 걸리는 요즘이었다. 가끔은 나도 그녀에게 장애인 같은 존재, 이방인 같은 존재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2층이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노크소리가 들린다. 뜻 밖에 션이 문 앞에 서 있다.

“Ray~ 나랑 얘기 좀 할 수 있나요?”

“네. 좋아요. 안 그래도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좀 전에 윌한테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는 전혀 Ray랑 아이들에 대해서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원래 토요일에는 각자 식사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닉이랑 조이만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 생각은 못 했어요.”

“네. 저도 주말에는 각자 식사를 한다는 것은 알아요. 그렇지만 분위기가 그렇게 되었고, 함께 있었을 때는 물어봐 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내가 후라이를 할 수도 있으니까요.”

“맞아요. 그게 제 실수였어요. 저는 항상 마음이 조급해서...”

“션이 요즘에 많이 바쁜 거 알아요. 빵도 만들어야 하고, 이것 저것 맡은 일들이 많죠~”

“저도 Ray보다 한 달 먼저 이곳에 와서 적응하느라 힘들었어요. 그리고 지금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하고 있어서 매일 바빠서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은 사실 함께 사는 가족들과 더 많이 어울리고 싶어 해요. 저도 션이랑 깊은 대화나누고 싶었는데, 사실... 틈이 없다고 느껴졌어요.”

“저는 항상 뭔가 일정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는 것 같아요. Ray가 와서 맛있는 것도 많이 해주고 해서 저는 참 좋아요.”     


그렇게 시작해서 홈스테드에 온 목적, 관심 분야,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들, 남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까지 한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약간 내성적이면서, 목적 지향적인 사람이 놓치기 쉬운 관계성^^ 가끔 어릴 적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가도 이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 적이 몇번 있었다. 이번 계기를 통해 션이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저녁에 션이 묻는다.

“Ray~ 머핀을 만들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도와줄 수 있을까요?”

“물론이요. 아이들이 엄청 행복해할 거예요!”

늦은 저녁 다양한 머핀을 만드느라 Orion하우스 1층 베이커리가 열기로 가득하다. 요즘 꿈빛 파티쉐라는 만화를 열광하는 지민이가 신이 났다. 아까 낮에 있었던 일들 때문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션의 마음이 느껴져서 훈훈하다. 남은 2주간도 잘 지내보자고~ 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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