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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Jun 02. 2024

직장 동료였던 그와 비밀리에  사내연애를 시작하다.

2019년 01월, 그와의 첫 입맞춤

[2019년 1월] - 비밀연애를 시작하다

☑ 남편 한 줄 정보: 김현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에도 당황하지 않고, 갈고닦은 회심의 금도끼까지 꺼내 백번 찍어버리는 집요한 나무꾼 같은 남자. 정공법의 사나이.


나의 남편, 현우 감독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그것은 대게 ‘몸통 박치기’ 스타일. 그만큼 요령을 부리거나 꾀를 부리지 못하는 현우 감독은 연애를 시작할 때도 똑같았다. 연말 식사자리에서 예기치 못한 그의 고백에 정신을 퍼뜩 차린 나는 마치 빚쟁이에게 쫓기는 것처럼 현우 감독을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실제로 빚쟁이에게 쫓기진 않습니다.) 이런 나를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는 그는, 마치 강아지처럼 나를 볼 때마다 졸졸 따라다녔다.


현우 감독과 식사, 그러나 고백이 곁들여진. 그 위험천만했던 자리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나 새해가 밝았다. 나는 그 한 달 동안 그와의 적정선을 찾으려 열심히 노력했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하지만 (밀당이란 전혀 모르는. 노빠꾸 직진남)현우 감독은 이런 나의 노력과는 무색하게 있는 힘을 다해 나를 매일 당겼다. 그러던 어느 날, 현장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며 여러 가지 상황들을 조율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어느새 내 곁에 와서 코를 킁킁거린다. “향수 뭐 써? 향이 너무 좋아”. 나는 행여 누가 볼까 가슴이 콩닥거려 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얼마 후, 잠시 휴식 시간에 자리에 앉아 있을 때였다. 누군가 급히 뛰어와 내 옆자리에 앉더니 내 발 옆에 자신의 발을 갖다 대며 이야기한다. “뭐야! 언제  이 신발 샀어? 나랑 커플신발이잖아!”. 현우 감독이었다. “발 사이즈 몇이야? 엄청 작다” 내 신발을 보며 한참 신나게 조잘거리는 현우 감독을 무시한 채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아, 제발. 감독님 이러지 마세요. 으악.


촬영 현장에서까지 이렇게 졸졸 따라다니는 데, 우리 둘만 볼 수 있는 메시지 속 그는 더욱 난리(?)였다. 이미 그는 자신의 하루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내게 공유했다. 총천연색의 하트와 함께. 나는 그와 메시지를 하면서 휴대폰에 이렇게 다양한 색의 하트 이모티콘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던가. 정말 그의 꺾이지 않는 의지에 어느새 나는 현우 감독과 메시지를 하며 웃는 날이 많아졌다. 촬영 현장에서는 남의 시선 때문에 톰과 제리처럼 피해 다니면서도 메시지로는 고생했다, 피곤하겠다는 등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현우 감독은 이런 내 변화를 알아차렸을까. 점점 그가 돌진하는 속도가 무섭게 빨라졌다. 그는 한 밤중 내가 좋아하는 딸기를 한 박스(실로 양이 대단하다)를 들고 동네로 찾아오거나, 꽃과 편지를 건네기도 했다.


그렇게 나와 현우 감독의 사이는 꽤 오랫동안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그런 어중간한 상태로 지속되었다. 하지만 내 반응에 답답함을 느꼈을까. 노빠꾸 인간 현우 감독은 칼을 빼들었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다시 홍대에서 <제 2회 직장동료와 단 둘이 식사 시간>을 갖게 되었다. 몇 달 전 고백 사고(?)가 났던 그 이자카야에서.


나는 현우 감독의 고백 이후 그에게 점점 마음이 끌리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연애를 시작할 수 없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었다.


<현우 감독과 만날 수 없는 이유>

1. 사내연애는 죽어도 하기 싫었다. 이 말 많고 탈 많은 방송국에서는 절대! 특히 한 팀에서 사내연애라니. 생각만 해도 겁이 났다.

2. 아직 L선배가 내 마음에 걸린다! 그녀가 아무리 현우 감독과 끝났고, 현재 다른 이와 썸을 타고 있다고 해도!

3. 아무리 현우 감독이 전과 다르게 보여도, 아직 그의 유별난 스타일까지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나는 그와 함께 몇 잔의 소주를 기울인 뒤, 솔직한 내 마음을 꺼내 이야기했다. 현우 감독은  집중하며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때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며 꽤 진심으로 듣는 것 같았다. 긴 시간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나는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몰래 만나는 거면 모를까’. 아차. 그 말이 화근이었다. 그리고 역시 현우 감독은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치 아주 대단한 결심을 한 듯 “알겠어. 당분간 몰래 만나자!”라는 그. 아니, 알겠다니 뭘? 응? 어리둥절하기만 한 내게 웃으며 소주잔을 부딪친다.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소주 한 잔을 털어내는 나를 지그시 보던 그가 갑자기 불쑥 다가온다. 아니 왜? 갑자기 이야기가 왜 이렇게 되는 건데?!


‘쪽’

당황해 그대로 굳어버린 나와, 소녀처럼 수줍게 웃고 있는 그. 나와 현우 감독의 첫 뽀뽀였다. 그는 나보다 더 부끄러운 얼굴을 하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우린 꼭 결혼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어이없는 소릴 잘도 지껄였다. 아, 아니. 잘도 했다. 고민한 몇 달의 시간이 무색하게 나는 그렇게 현우 감독과 우당탕탕 좌충우돌 다이내믹한 비밀 연애를 시작하게 됐다.


나와 현우 감독은 그날로부터 6년이란 긴 시간 동안 연애를 했다. 하지만 우리의 연애는 늘 누구보다 뜨겁게 싸우고 서늘하게 싸워대는 탓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 6년 동안 스무 번은 헤어졌을까. 연애하며 함께 살던 집에서도 서로 나가겠다며 짐을 싸고 푼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우습게도 스무 번의 이별 모두 24시간을 넘기진 못했지만. 그와의 연애는 이렇게 늘 박진감이 넘쳤다.


2024년 현재, 눈물콧물 묻었던 긴 연애를 마치고 그와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그럼에도 아직 파이팅이 넘치는 우리는 아직도 하루에 몇 번씩 투닥거리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와 보내는 하루하루가 재밌고 행복하다. 그가 빨래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는 모른 체하고 출근해 버리는 오늘 같은 날에도.


☑ 남편과의 첫 뽀뽀: 그래, 남 눈치 보다가 이도저도 못하겠다. 가보자! 오늘부터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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