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얻은 교훈
요즘 뉴스를 챙겨 본 사람이라면, 최근 몇 달 사이에 전 세계 주식시장이 전례 없이 요동쳤다는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동학개미운동' 이라는 말도 나오듯이 주식 투자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시장에 많이 유입되는 모습이다.
나는 주식 시장이 잠잠하던 작년 가을에 처음으로 주식 계좌를 만들었다. 학생 신분이라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가진 것의 대부분을 미국 주식에 투자했다. 올해 2월 중순 즈음까지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주식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라면 으레 그렇듯이 계좌에 찍힌 수익률에 행복해하며 주변에 밥을 사고 다니기도 했다.
미국으로 코로나 19가 퍼지자 상황이 급변했다. 돌이켜보면 2월 중순에 이미 한국에서 네 자릿수 확진자를 기록할 시기인데, 그때까지 주식시장이 잠잠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하기도 하다. 2월 19일을 기점으로 지수는 곤두박질쳤고 전일 대비 10%씩 급락하며 서킷브레이커를 일주일에 여러 번 발동시켰다. 지금이야 지난 일이니 태평하게 말할 수 있지만, 잔고가 일주일에 20%씩 깎여나가는 것을 침착하게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주식으로 얼마를 벌었고 얼마를 잃었는지에 대해 쓰려는 것은 아니다. 당시의 경험은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함께)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다시 돌이켜보게 했다. 당시에 읽었던 PHILOSOPHICAL ECONOMICS라는 블로그의 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 이야기를 일부분이나마 적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지능과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고자 한다면 큰 어려움 없이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남을 속이면 속였지 나를 속일 이유가 없잖은가?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많은 경우에 사실 추구와는 무관한 목적으로 인해 정보를 편향적으로 받아들인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1)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2) 긍정적인 자아상, 긍정적인 이미지를 유지하거나
3) 나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의 갈등을 방지하거나
4) 나와 반대되는 입장에 있는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지 않기 위한
것들이 더 우선시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아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은 많지 않다. 다소 무책임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무엇을 믿고 무엇을 말하든 간에 나는 옳은 편에 서 있다고 믿고 주변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사실을 보고자 한다면 훈련이 필요하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僞證)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 증인 선서문
앞서 언급한 인지 편향의 효과를 가장 잘 드러내는 방법은 불편한 질문들과 마주하는 것이다. 다음의 질문들 중 몇 가지를 골라 필요하다면 적절히 바꾸고, 나의 답을 잠시 생각해 보자.
1) (기독교인이라면) 성경의 내용은 사실인가? 성경은 실제 역사의 내용을 담고 있는가?
2) 일본의 지배가 조선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가?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지 않았다면 지금 한국의 경제력이 더 약했을까?
3) 성매매를 합법화하면 성범죄 발생률이 감소할까?
4) 테러 범죄자에 대한 고문을 허용한다면 테러 발생률이 감소할까?
5) 고학력자의 출산율 저하가 국가 전체의 지능 지수 하락으로 이어지는가?
6)(내가 지지하는 정당) 이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면 그렇지 못한 경우보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 문제)가 개선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즉각적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당장은 너무 불편해서 생각해보기 싫은 질문들일 수도 있다. 좋다. 하지만 각각이 가치관이 아니라 사실에 관한 질문임에 주목하자. 윤리적인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위 질문들에 대한 답은 변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물음들을 던져 보자.
"내가 사실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무엇인가?"
"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무엇인가?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는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무엇을 찾아봐야 하는가?"
대부분의 경우에 아직 질문에 대답할 만큼 충분한 지식이 없고,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중요한 점은, 이때의 '조사'는 이미 선입견을 가진 상태에서 내 입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정당화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더라도 그것이 합당하다고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사실을 보는 법이다.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1) 항상 사실을 찾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인지 편향은 안정된 자아를 유지하는 매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2)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는 문제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실제로 현실이 되기 전까지는 모두 정도가 다른 믿음일 뿐이다.
3) 이러한 사고의 방식은 내가 스스로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방식이지, 남과 논쟁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네가 처한 상황 때문에 문제를 편향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는 주장은 또 다른 논리적인 오류를 낳을 뿐이다.
주식 시장에서의 손익은 판단에 의한 결과이다. 예측이 맞으면 돈을 벌고 틀리면 돈을 읽는다. 경기가 급반등하여 지난 10년간의 상승세를 이어가리라는 낙관론에서부터, 전례 없는 불황이 머지않았다는 비관론까지 가득한 전망의 파도 속에서 둘 수 있는 최선의 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참고: http://www.philosophicaleconomics.com/2017/08/speculation-in-a-truth-cham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