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고3 때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 한 편 보려고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 한 편을 빌려서 봤다. 포스터만 보고 당연히 흥미진진한 홍콩 무협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싸움 장면은 별로 안 나오고 대사만 무지하게 나왔다. 그것도 독백 위주로. 당연히 난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다 보지도 못한 비디오테이프를 반납해야만 했다. 이후 대학 입학 후 다시 볼 기회가 생겼는데 그때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했다. 처음 봤을 땐 당최 뭔 말인지 몰랐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속에 알알이 박히는 것이 아닌가. 장국영과 장만옥의 도저히 알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에 눈물을 쏟을 뻔도 했다. 이후 이 영화는 내 인생의 영화가 되었고 사이트 비번 잊었을 때 추가 질문의 답이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입니까?’
동사서독.
최근 비슷한 영화 체험을 했다. 그 악명 높은 아핏차퐁 감독의 가장 최근작인 ‘메모리아’를 봤다. 카메라 움직임은 전혀 없고 마치 멈춰있는 화면 같은 느릿한 진행 속도와 배경 음악 없이 흘러나오는 자연의 소리에 파묻혀 난 깊은 꿈속 나라로 빠져들었다. 얼마나 단잠을 잤던지 그동안의 피로감이 다 사라진 것처럼 꿀잠을 잤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 불면증에 시달리는 분이 계시다면 꼭 이 영화를 보세요. 웬만한 불면증 약보다 강한 효과를 보실 겁니다.)
수업에서 토론을 진행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이 영화를 끝까지 봐야만 했다. 주말 하루를 날 잡아서 이 영화를 보기 위해 투자했다. 일부러 충분히 잠을 잤고 찬물로 샤워까지 마치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여전히 무슨 내용인지는 가물했지만 잠들지 않고 끝까지 보는 데 성공했다. 특이한 경험은 이후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다 보고 난 후 계속 영화의 이미지와 사운드가 머릿속에 맴도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계속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소리는 도대체 뭐지? 마지막 장면에 나온 그건 도대체 뭐지? 그건 어떻게 만들어진 거지? 어디로 가는 거지? 혹시 미래로? 아니면 과거로?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계속된다. 그리고 막상 영화를 볼 때는 ‘도대체 갑자기 저 장면은 왜 나오는 거야?’ 생각했던 장면들의 존재 이유가 어렴풋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결국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다시 보고 싶어 진다.
한 번 보고 나면 휘발해 버리는 영화가 있고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가 있다. 이 두 영화는 후자에 속한다. 다시 보면 분명히 새로운 해답과 새로운 질문을 또 내게 던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