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성향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완벽주의 회피성향
파트너의 회피성향이 힘들었다.
갈등이 있으면 대화로 풀면 좋을 텐데, 협상 테이블에 안 앉으니 답답하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몰라 불안했다. 몇 년 전 우리 관계가 위험하다고 느낀 즈음에 여성주의 상담사를 찾았고, 따로 상담을 받았다. 상담 이후에 처음으로 파트너가 대화의 자리에 앉았다. 그날을 시작으로 파트너의 회피성향이 현저히 줄었다.
그렇게 회피성향은 파트너의 몫인 줄만 알았다.
하반기에 좋은 강의가 있어서 수강했다. 강의가 끝나고 성과 공유회에 사례발표자를 찾는다는 단톡방(단체카톡방) 공지가 떴다. 매니저가 부탁한 분이 하겠지 하며 잊었는데, 몇 주 전에 매니저로부터 사례발표를 부탁한다는 문자가 왔다. 생각지도 않았지만, 일주일의 여유를 주기에 고민해 보고 연락하겠다고 했다. 11월에 일정이 몰려 짬을 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 기회다 싶어 수락했다.
발표 수락을 하고 나니 파워포인트(PPT)를 만들지, 대본으로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원래는 대본을 쓰고 PPT를 만드는데, PPT파일을 일찍 보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사진과 영상 위주로 PPT를 먼저 만들었다. PPT파일을 안 만든 지는 한참 됐고, 어떤 것을 전체 배경으로 사용할지도 고민이었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건 바로 미리캔버스. 최근에 강사과정을 통해 배운 디자인 도구인데, 굉장히 유용하고 활용이 쉬웠다. ‘5만 개 이상의 무료 템플릿으로 간편하고 편하게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고 광고하는 디자인 플랫폼 미리캔버스는 예전에 들었다. 막상 접근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아 시도도 안 한 도구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본 발표는 피했다.
어렵더라도 PPT를 만들어 발표하고 싶었다. 강사로부터 배운 미리캔버스 사이트를 열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템플릿을 열고, 프레젠테이션 도구 중에서 사진과 영상을 넣기에 편한 것을 골랐다. 가을 낙엽을 전체 배경으로 제목과 내용을 넣어 두 페이지를 만들었다.
자동저장상태로 만들어놓았지만, 그래도 불안해서 수시로 저장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다운로드를 실행해 보았다. 두 페이지까지 만든 파일이 안 보였다. 시간이 없는데, PPT까지 말썽이었다. 어렵게 양해를 구해 이틀의 시간을 벌어 다시 다른 배경을 찾아 PPT를 만들었다. PPT를 만든 후에 사례발표 문구를 고민하는데, 머릿속에만 뱅뱅 돌고 이거다 싶은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다. 강의내용과 유익했던 부분들을 쓰고, 강의에 적합한 명문장도 인용했다. 그러고도 발표 전날까지 정리가 안 됐다.
그때 머리를 탁 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거구나. 파트너가 관계에 회피성향이 있다면, 난 일에 회피성향이구나. 자꾸 마감을 뒤로 미루고 코앞에 닥쳐야 완성하는 습관. 비로소 알았다! 사람마다 회피성향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걸.
내게는 회피성향이 없는 줄 알았다.
자꾸 과제를 미루는 습관, 닥쳐야 완성하는 버릇이 회피성향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완벽해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라고 생각했다. 잘하려다 생긴 습관이지만, 나를 들들 볶고 고통스럽게 하는 불편한 습관이니 고쳐야겠다고 마음먹던 참이었다. 관계에서는 대부분 직면하지만, 일에서는 막바지까지 도망가는 성향이 다분하다는 걸 이제야 발견했다.
파트너의 문제는 잘 보면서 정작 내 문제는 도통 모른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사람은 워낙 복잡하고 다면적인 존재라 정신분석상담 및 꿈 분석상담과 종합심리검사를 포함해 MBTI, 에니어그램 유형 테스트, DISC검사, 명리학, 여성주의 타로 및 여성을 위한 별자리 심리학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공부해야 조금 알 수 있는 묘한 존재다. 어떤 한 가지 도구로 내가 이런 사람이야, 저 사람은 이래서 저래하고 단정 짓고 선 긋는 일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또 깨달았다.
*에니어그램: 그리스어로 '에니어(ennear, 9, 아홉)'라는 단어와 '그라모스(grammos, 도형·선·점)'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아홉 개의 점이 있는 그림'이라는 뜻. 원과 아홉 개의 점, 그리고 그 점들을 잇는 선으로만 구성된 단순한 도형이지만, 우주의 법칙과 인간 내면의 모든 것이 상징으로 표현되어 있다. 에니어그램은 사람을 9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이라도 그중 하나의 유형에 속할 수 있다고 본다. (출처: 청주대 학생종합상담센터)
*DISC검사: 1928년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몰튼 마스톤의 이론에 기반한 심리검사로서 성격과 행동유형에 따라 사람들을 주도형(Dominance), 사교형(Influence), 안정형(Steadiness), 신중형(Conscientiousness)의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심리검사 (출처: 구글)
*여성주의 타로: 타로를 여성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며, 여성의 자기 치유에 활용하려는 흐름에서 나왔다. 여성을 뜻하는 ‘달’ 카드는 보통 음울함, 변덕으로 해석하지만, 여성주의 타로에서는 무의식의 힘, 다른 여성들로부터의 도움을 말해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대표적인 여성주의 타로에는 마더피스 타로, 가디스 타로(여신타로), 주머니 속 여신타로 등이 있다. (출처: 한겨레 기사, ‘여성주의 타로’로 마음 열어요)
*여성을 위한 별자리 심리학: 세계적인 심리 치료사이자 점성학자인 주디스 베넷이 오랜 상담과 연구로 밝혀낸 여성의 잠재 능력, 사랑, 분노, 인간관계, 욕망의 세계를 담은 책 (출처: 이프북스)
*커버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