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자유시간을 즐기러 나간 파트너에게 두 개의 문자를 보냈다.
- 여보~~ 나, 오짬 하나 남은 거 먹을라요. 그랑께 집에 올 때 당신 몫으로다가 꼭 오짬 사오시오. 하트이모티콘 하나(매란여성국극단 정년이 버전^^)
- 그라고 00 CU점 들러서 사랑하는 아내 부추새송이만두 사줄 의향 있으신까 그라먼 쪼까 사오믄 행복해질 참이요. 참말로 고맙소이 서방님 하트이모티콘 두 개
파트너가 편의점에 간다고 모자를 찾았다.
캡 모자는 귀 시리다며, 겨울 털모자를 찾으면서 “내 뚜껑 어딨노?”를 연신 외쳤다.
“무슨 뚜껑이요?” 짐짓 모른 척 물었더니 “왕뚜껑”이란다. 드디어 머리에 왕뚜껑을 장착해 안방에서 나오면서 “큰스님 나셨다. 성불하십시오.”하니 나도 따라 합장을 했다. 오짬(오징어짬뽕)을 사러 나가면서 파트너가 다시 "겨울에는 큰스님 모드"라며 눈을 찡긋하고 현관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면 “인상이 너무 좋으시네요. 목사님 아니세요?”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는 파트너는 오늘도 겉은 남색, 속은 회색인 큰스님 모자를 썼다.
“여보, 나 왕뚜껑 사 왔어.”
“뭐라고요? 왕뚜껑? 하하하하.”
오짬 두 개를 사 오면서 김치 왕뚜껑과 오사쯔를 내 몫으로 사 왔다. 비건 지향이지만 가끔 파트너가 사놓은 오짬을 몰래 먹고 실토하는 편인데, 추워서 하나 남은 오짬을 먹고 사과했더니 허탈해하며 편의점을 다녀온 길이다.
왕뚜껑? 하며 파안대소하는 모습이 즐거운지 파트너의 개그 본능이 다시 발동했다.
갑자기 엉덩이를 흔들며 “내가 개그고, 개그가 내고. 몰아일체의 경지다 이 말이야”. 뭔 얘긴가 물으니 타짜를 패러디했단다. 평경장의 제자가 되길 간절히 원하는 고니가 평경장에게 질문한다. “선생님은 대한민국에서 랭킹 몇 위쯤 돼요?”라고. “당연히 내가 1등이지 인마.” 하면서 “내가 누구냐? 화투를 거의 아트의 경지로 끌어올려서 내가 화투고 화투가 나인 몰아일체의 경지, 응? 혼이 담긴 구라, 으응?”
노잼인 내가 빅잼인 파트너를 만나 가끔 개그를 친다.
“막 던져. 10개 중에 3개만 건져도 어디야?”란 응원에 힘입어 말도 안 되는 개그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무안타였다. 차츰 10타수 1안타로 개그 감을 끌어올리더니 요즘은 3할 타자쯤 된다고 파트너가 응원을 한다. “여보, 3할 타자쯤 된다는 걸 독자들께 보여줘야 하지 않아?” 했더니 또 빵 터진다. “설마 우리 둘만 인정하는 타율은 아니겠지?” 미심쩍은 표정을 하니 파트너가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커버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