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소소한 일상] 보이스피싱 조력범 구속과 재판
지난주 퇴근 무렵입니다. 핸드폰 전화벨이 울립니다. 못 보던 번호입니다.
“법원입니다. 김OO씨인가요?”
법원? 나한테 왜? 이것도 보이스피싱인가?
지난 3월에 쓴 글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올해 대만에서 보이스피싱을 당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이러합니다.
피아노를 팔려고 페이스북 중고거래 코너에 올려놨습니다.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죠. 피아노 덩치가 크다 보니 물류회사 통해서 가지고 가겠다네요. 좋다 했습니다.
상대방이 그 물류회사 온라인 송장 주소를 보내왔습니다. 그곳에 들어가서 제 정보를 입력했죠. 물건 대금을 받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오류가 납니다. 물류 사이트를 처음 이용하다 보니 인증을 거쳐야 한다네요. 다시 물류 담당자 LINE을 보내 왔습니다. 물류회사 온라인 고객서비스센터라 소개합니다.
그쪽과 얘기해 보니 제가 아직 계좌 오픈이 되어 있지 않아 오류가 난 거라 합니다. 송금 테스트를 해서 인증을 해야 한다네요. 온라인 은행 app를 열어 달랍니다. 이때도 아무 의심을 하지 않았네요.
계좌가 정상 작동하는지 확인을 거쳐야 한다며 자기가 부르는 계좌번호로 테스트용 숫자를 입력해 달라 합니다. 실제 송금은 되지 않고 실패할 거랍니다. 049985를 입력했고 송금버튼을 눌렀습니다. 이게 그런데 계좌이체가 실패하지 않고 송금이 되어 버렸습니다. NTD49,985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수법이었습니다. 대만 국경일 연휴에 지롱항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바람 쐬러 갔는데 버스 내 모니터 화면으로 위의 경우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보이스피싱 방지 홍보 영상이 나오더라구요. 대만 경찰청에서 만든 영상이었습니다.
하여간 황당하고 당황스러워서 경찰서에 가 신고하고 조서 꾸몄습니다. 며칠 후 경찰서에서 사건 접수 우편물이 왔고 그 다음엔 잊었습니다. 사건 조사에 무슨 진척이 있으리라 기대하기엔 쉽지 않다 생각한 거죠.
그렇게 6개월여 흘렀고 이렇게 법원에서 전화가 온 겁니다. 놀랐습니다. 아니 정말 이렇게 재판이 열린다고요?
전화를 걸어 온 담당자로부터 들어보니 보이스피싱 전체 조직이 모두 일망타진된 건 아닙니다. 보이스피싱 사기에 이용하라고 통장을 도용하도록 도와준 사람이 잡혔습니다. 저 말고도 같은 조직에게 사기 피해를 당한 사람이 5명 더 있었습니다.
고소인 신분으로 재판 참석 요청 전화였던 겁니다. 이또한 망설여졌네요. 신고를 하긴 했지만 실제 이렇게 수사에 진척이 있으리라 기대하질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실제 재판이 열린다니 참석할지에 대해 고민이 되더라고요. 결국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재판 관련해서 이렇게 전화로만 받았고 아무 서류나 우편물을 공식적으로 받지 않았다 얘기했습니다. 오늘 관련 서류를 보냈으니 곧 받을 거랍니다.
야근 중에 와이프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등기우편이 왔다네요. 정말 빠르네요.
받은 서류는 ‘대만 타오위안 지방검찰청 검찰관 기소장’이었습니다. 피고인으로 장OO란 26세 사람이 특정되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악용될 것을 충분히 알면서 자신 명의로 2곳 은행의 계좌를 개설해 그 계좌번호와 통장, 은행카드, 비밀번호를 제공했다는 혐의입니다. 이로 인해 돈세탁방지법을 위반하고 사기범죄 수익취득방조죄를 저질렀다는 공소 내용입니다. 선고 형량은 3년에서 10년까지 가능한 중형입니다.
대만에서 보이스피싱이 꽤 중범죄인 것 같습니다. 우연찮게 이 기소장을 받은 날 신문에 전직 치어리더가 유사한 범죄를 저질러 징역 3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 치어리더는 온라인 상 만난 남성이 급히 자금이 필요해서 대만내 계좌를 빌려달라는 말에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빌려줬다고 합니다. 이 남성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이고 사기로 벌어들인 돈을 세탁하려 한 것이었고요. 이 치어리더는 사기방조죄로 기소됐는데 실제 돈이 인출되지는 않아서 징역 3개월 정도로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다시 기소장 내용을 조금 더 설명해 보자면 범죄수법도 적시했습니다. 저를 비롯 나머지 5명이 당한 방식이 모두 유사합니다. 구매자 행세를 하며 대금결제 계좌를 오픈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테스트 송금을 요구했습니다. 판매 물품은 다양하네요. 제가 내놨던 피아노, A씨가 팔려 했던 유아용품, B씨가 내놓은 콘서트 티켓이 있었고 이외에 게임 장비, 모자 등도 있었습니다.
하여간 대만 검찰청 직인이 찍혀있는, 대만에서는 도장의 무게감이 우리보다 훨씬 무거운데 그 관공서 직인이 찍혀 있는 형사소송 기소장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재판 기일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전화 상에서는 10월말 언제라고 얘기했는데 여기에는 없네요. 며칠 후 이번에는 ‘대만 타오위안 지방법원 형사재판 출석 요구서’가 왔습니다. 여기에 정확한 재판일자와 시간, 법원 주소가 적시돼 있네요. 그렇죠. 전에 것은 검찰이 보낸 거고 재판 주관은 법원이 하는 것이니 맞네요.
저의 법적 신분은 고소인으로 적시돼 있습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 최대 NTD30,000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하네요. 가야죠.
대만에서 별 경험을 다 해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