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소소한 일상] 30만명 이상 참여하는 ‘티엔무의 할로윈 난장'
길거리 전체가 북적입니다. 어휴 각종 코스프레 복장과 분장한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2025년 11월 1일 대만 할로윈 축제 모습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타이베이 티엔무 지역에서는 매년 할로윈 축제를 합니다. 올해가 17회라 하고 2009년에 시작했다고 하네요. 축제 이름은 ‘天母搞什麼鬼’인데 의역하자면 ‘티엔무의 할로윈 난장’ 정도일 것 같네요.
10월 31일과 11월 1일 이틀간 진행되는 티엔무 할로윈 축제는 타이베이 지역의 대표 할로윈 행사입니다. 지난해 참가 인원은 30만명이 넘었다네요. 티엔무 지역에 있는 소고백화점과 다카시마야 백화점이 참여하고 주변 수백 개 상점이 상당수 참여합니다.
티엔무 야구장 옆의 운동공원에는 백여 개의 부스가 설치돼 있습니다. 각종 먹을거리와 즐길거리, 체험거리가 가득합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의 얼굴에는 할로윈 특색의 분장이 칠해져 있고 복장 또한 각양각색입니다. 전형적인 귀신 코스프레도 있지만 귀여움 가득한, 장난끼 가득한 모습도 많이 눈에 띕니다. 공룡 복장부터 해서 공주 코스프레도 많이 있네요. 케데헌 복장은 아이들보다는 오히려 엄마들이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손에는 잭오랜턴을 하나씩은 다들 들고 있고요.
살고 있는 곳이 티엔무이고 주말 선선한 날씨도 즐길 겸 운동공원에 나왔습니다. 딸아이, 아내와 함께 나왔습니다. 이런 축제를 ‘과감히’ 즐기는 가족은 아닌지라 그냥 구경차원입니다. 그래도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괜히 들뜨긴 하네요. 회원가입하면 과자 한 봉지 준다 해서 평소에 잘 하지도 않던 인스타그램 앱을 열어 QR코드 스캔했습니다.
대만에 처음 왔던 2023년 그 해 티엔무 할로윈 축제 모습을 보고 꽤 신선했습니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가시고 선선한 가을 느낌이 자리한 야외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가족 단위여서요. 우리 할로윈 축제는 젊은 층 중심의 행사 아닌가요, 저녁 늦은 시각 클럽 가득한 거리에서 각종 특이한 코스프레를 하면서 즐기는 행사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지요.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대만에 오니 가족형 축제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할로윈이 축제로 자리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되진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대만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해서 2010년대 들어 서서히 자리 잡았던 할로윈 축제가 가족형이었던 데는 티엔무 축제 시작을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티엔무 할로윈 축제는 처음 시작이 이 지역에 있는 국제학교 학부모회와 상인회가 함께 시작했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더욱이 가족형이 되었겠지요.
더욱이 대만에서는 할로윈 행사가 일종의 영어 체험학습, 외국문화 체험행사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유치원, 초등학교, 영어학원 중심으로 서서히 퍼져나갔는데 이 점도 가족형 행사로 자리잡은 계기였겠지요.
그에 더해서 대만 사회가 도교 중심의 다신교 사회라는 점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할로윈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귀신을 코스프레한다? 라고 곡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만의 도교 문화에서는 귀신이란 존재를 터부시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니까요.
거기다 할로윈은 대만의 중원절이란 절기와 그 의미가 매우 흡사합니다. 중원절에서는 귀신문이 열려서 이승으로 나온 뭇 귀신들을 위무하고 사람들을 해코지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할로윈의 원래 의미도 정확히 이러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잠시 지옥문이 열려서 나온 악귀들이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음식을 준비했다고요.
대만에 살다 보니 대만 사회가, 이전에는 몰랐지만, 매우 개방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데 이러한 사회 분위기도 할로윈 축제가 보다 쉽게 받아들여진 배경이겠구나 싶습니다.
한 가지 더 대만 할로윈의 특징을 얘기하자면 지역 커뮤니티 중심의 축제라는 점입니다. 티엔무 지역의 특징일 수도 있는데 아파트 단지마다 소규모의 소소한 할로윈 행사를 마련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이러한 할로윈 행사를 합니다.
우선 아파트 입구부터 각종 할로윈 장식이 가득합니다. 해골바가지는 물론이고 목 없는 귀신 모습도 있고 잭오랜턴은 기본이죠. 거미줄이 가득한 모습에 할로윈이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이 나폴 댑니다. 거기다 사탕이 곳곳에 놓여 있어요. 2~3주간 이렇게 장식해 놓는데 사탕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며가며 저도 하나는 집어 먹었네요.
미국에서는 할로윈에 아이들이 잭오랜턴을 하나씩 들고 집집마다 돌며 ‘trick or treat’이라고 얘기하지요. 즉 사탕을 주지 않으면 장난칠 겁니다! 이런 거죠. 중국어로 표현하자면 ‘不給糖就搗蛋’인데요. 이 아파트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그러한 재미를 마련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거주민 가운데 아이들이 그렇게 방문하면 사탕 등을 줄 것인지 사전 조사를 하네요. 처음 왔던 2023년, 신기하고 흥미로워서 저희 집도 참여했습니다. 20~30여명의 아이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집에 와서 딩동딩동 벨을 누릅니다. 문을 열면 아이들이 한 가득 ‘trick or treat!’, ‘不給糖就搗蛋!’, ‘사탕주세요!’ 합니다. 귀여웠습니다.
이렇게 올해 대만의 할로윈도 끝났네요. 아 그런데 올해 티엔무 할로윈 축제는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당초 행사 일자는 10.24-25일이었습니다. 그게 10.31-11.1로 한 주 연기된 것이죠. 비 때문이었습니다. 10.23 급작스레 발표가 났어요.
10월 중순부터 해서 지금, 11월 초순까지 대만 ‘타이베이는 비’입니다. 어휴 어쩜 이리 길게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말 그대로 쉼 없이 비입니다. 아무리 비가 오더라도 장마철이라도 하루에 잠시 동안은 1~2시간은 비가 멈추곤 하지 않나요. 그런데 10월 하순 100시간 연속으로 비가 오기도 했습니다. 하도 비가 와서 정말 계산을 해보니 그렇더라구요.
하루에 잠시라도 비가 온 날은 이제 연속으로 셈 해보면 20여일은 되어 갑니다. 이러다 제가 들었던 최장 연속 비오는 날 기록이 깨질 기세입니다. 2022년 어느 달엔가는 27일 동안 빗방울이 내리기도 했다는 무용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만 동북 계절풍 탓이라는데 그 기록이 깨지진 않길 바랍니다.
하여간 이렇게 11월이 됐습니다. 할로윈이 끝나자마자 하루도 안돼서 아파트 단지의 각종 할로윈 장식은 순식간에 사라졌네요. 이제 곧 크리스마스 장식이 등장하겠죠. 시간 빠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