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점심 <3>] 가성비 최고 점심 한 끼
한국인도 대만 참 많이 찾습니다. 대만 통계 자료를 찾아보니 올해 7월까지 대만에 여행 온 한국인은 58만 명입니다. 전체 외국인 관광객은 478만 명이니 한국인이 약 12.2%를 차지하고 있네요. 일본, 홍콩‧마카오 다음으로 세 번째에 해당합니다. 대만 정부 당국으로서는 우리가 중요한 고객인 셈이죠.
하지만 대만 정부 고민이 깊습니다. 우리나라의 대만 관광객은 사실 회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이 최고치였는데 그 당시 수치를 여전히 넘어서지 못하고 있죠. 당시 7월까지 63만 명이었으니 올해는 그때와 비교해 92.5%에 불과합니다.
대만 전체 인바운드관광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2019년 1,186만 명이었으나 올해는 그에 턱없이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목표치가 1천만 명인데 실제로는 8백만 명 겨우 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양안관광이 재개되지 않은 것이겠죠. 2019년 271만 명으로 방대만 외래객 중에 22.9%의 비중을 차지해 제일 많은 규모를 자랑했던 중국 관광객이 올해는 그 비중이 7.6%로 15.3%p나 급감했습니다.
하지만 양안관계 회복이 난망인 상황인지라 중국 관광객 감소는 상수로 여길 수밖에 없기에 다른 나라 관광객이라도 증가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외래객이 회복될 기미가 없는 점이 대만 당국으로서는 뼈아픕니다.
2019년 18.3%의 비중을 차지했던 일본 관광객은 그해 7월까지 112만 명이었지만 올해는 76만 명에 불과합니다. 홍콩‧마카오도 99만 명이었는데 올해는 73만 명뿐입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가 그나마 많이 회복한 셈이네요.
이렇게 전반적으로 회복을 하지 못하는 배경으로는 지난해 4월 화롄 대지진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그 전만 하더라도 대만 인바운드도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코로나 이후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진으로 성장세가 반토막 났습니다. 그 여파가 꽤 오래 갔죠.
다른 요인으로는 대만 달러 강세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엄청 올랐습니다. 제가 처음 대만에 왔던 2023년도만 하더라도 1 대만 달러는 우리나라 돈으로 36~37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46~47원입니다. 거의 10원이 올랐죠. 그 말인즉슨 우리나라 사람이 대만 여행을 온다면 1천원에 해당하던 금액이 이전에는 28 대만달러였지만 지금은 22 대만달러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만 내부적으로는 숙박비가 너무 비싸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대만 국내여행을 다녀보면 정말 체감할 수 있습니다. 너!무! 비!싸!요! 좋은 호텔도 아닌데 1박에 수십만 원 합니다. 대만 관광 주무부처인 교통부 관광서장(陳玉秀) 또한 인정합니다. 대만 인바운드가 회복되지 않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고 숙박비용이 너무 비싸서 라고요.
이렇게 외부적인 요인이 있다 하더라도 대만 관광서가 비판에서 빗겨날 순 없겠죠. 대만 국회 격인 입법원에서도 정부 당국의 인바운드 홍보마케팅이 너무 안일하다고 질타하네요. 그러면서 나온 단어가 ‘대만감성’이었습니다. 한국 젊은 세대 SNS 중심으로 대만감성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는데 이를 잘 활용해서 한국인의 방대만관광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가수 오혁과 모델 황지민이 대만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철거 전 다리를 배경으로 웨딩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러 대만에 온 뉴진스도 오래된 아파트를 배경으로 화보 촬영을 했고 BTS의 제이홉이나 여러 유튜버들도 타이베이의 골목이나 타이난의 안핑 옛거리들을 돌아보며 사진을 남겼습니다. 대만의 대표 랜드마크인 101 빌딩이나 고궁박물관이 아니라 정말 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죠.
대만감성을 간단히 정의하긴 어렵지만 무언가 따듯한 정겨운 풍광일 것 같습니다. 우리와는 다른 대만 특유의 느리고 개발이 멈춘 듯한 낡은 모습이 낙후된 것이 아니라 사람 냄새를 간직하고 있는 자연스러움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사무실이 있는 타이베이 신이구 지롱루(信義區基隆路)는 대만의 랜드마크 101 빌딩이 있는 곳인데 그 건너편 골목에만 가더라도 바로 시간이 멈춘 듯한 장면이 나옵니다. 전통시장과 함께요. 이러한 모습이 대만감성의 매력이겠지요. 수십 년은 된듯한 얕으막한 건물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1층에는 식당들이 2층에는 창틀에 초록색 식물들을 키우는 화분들이 놓여져 있는 건물들이에요. 그 화분들이 어쩌면 낡은 건물에 미감을 주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 건널목에는 또한 오늘 소개해드릴 ‘대만감성 볶음밥집’이 있습니다. 오늘은 점심 소개하는데 너무 많이 돌아돌아 왔네요. 전 대만감성하면 볶음밥이, 이 집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평범한 음식이지만 대만을 대표할만한 음식 가운데 하나이고 이 식당의 외관은 바로 그 낡고 허름하지만 어느 유명 식당 볶음밥보다 더 맛있다고 자신합니다.
대만감성인데 왜 볶음밥이 연상이 될까요. 앞서 얘기한대로 대만감성은 대만의 일상과 정겨움, 소확행 이런 감정들인데 볶음밥은 대만인의 집밥 같은 음식이기에 연상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 볶음밥집은 대만감성이 물씬 풍기는 우싱제(吳興街) 골목길에 위치해 있어 제게는 그렇게 이미지가 이어집니다.
사실 볶음밥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음식이죠. 밥을 볶으면 ‘볶음밥’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계란 볶음밥 수시로 먹었죠. 중국식당에만 가더라도 삼선볶음밥은 기본 요리 가운데 하나죠. 중국에서도 수시로 차오판(炒飯)_(볶음밥의 중국어)을 먹었습니다. 동남아 국가들에서도 흔하죠.
그럼 대만의 볶음밥은 다른 게 있나요?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제 느낌에 대만의 볶음밥은 중국보다는 담백한 것 같고요, 우리나라보다는 당연히 밥이 찐득하지 않고 고슬고슬하니 밥알이 살아있죠. 동남아 볶음밥보다는 양념이 세지 않고요.
제가 볶음밥을 ‘타이베이 점심’으로 고른 이유는 사실 그 단순함에 있습니다. 한 끼 가벼이 먹을 수 있는 최적의 식사 가운데 하나죠. 가격이 비싸지도 않습니다. 일상생활에 녹아 있는 가장 서민적인 음식이라고 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길을 걷다 보면 점심시간에 큰 웍에 밥을 볶고 있는 간이식당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그리고 대만을 대표하는 글로벌 레스토랑 브랜드인 딘타이펑(鼎泰豐)에서도 볶음밥은 샤오롱바오와 함께 대표 음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단순하디 단순한 음식이 어떻게 대만 대표 식당의 요리 중에 하나일까요. 그만큼 고소하고 계란 풍미가 일품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식당일까요? 제 개인 생각에, 아니죠. 이 식당에 함께 갔던 사람들, 100이면 100 모두 마찬가지 생각에 이 식당의 볶음밥은 딘타이펑 볶음밥과 너무나 유사합니다. 이 식당의 볶음밥 종류는 기본볶음밥, 새우볶음밥, 돼지고기채 볶음밥, 돼지갈비 볶음밥, 야채버섯볶음밥 이렇게 5가지인데 딘타이펑의 볶음밥 메뉴 구성과 흡사합니다.
놀라운 것은 맛도 매우 똑같다는 사실! 그래서 들리는 풍문으로는 이 식당 주방장이 딘타이펑 주방장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틀리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 딘타이펑 식당이 12군데에 있고 그 안의 메인 주방장, 보조 주방장 합치면 수백 명일 터이고 근무하다 나간 사람들 따지면 수천명이지 않겠습니까?
더욱 풍미 있는 맛을 원한다면 이 식당만의 특제 소스를 버무려 먹으면 됩니다. 꽤 매콤한데 반은 비비지 않고 반은 이 소스를 넣어 먹으면 그렇게도 맛납니다. 새우볶음밥보다는 돼지고기채볶음밥이 이 소스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놀라운 것. 이 식당의 볶음밥 가격은 딘타이펑의 딱 반이란 사실! 딘타이펑에서는 볶음밥이 250~360 대만 달러인데 이 식당은 100~150 대만달러입니다. 이런 가성비가 어찌 훌륭하지 않을까요.
식당 이름도 재밌습니다. ‘펑멘(碰麵)’입니다. 자구대로 해석하자면 ‘면을 마주치다’입니다. 어색하죠. 아마도 같은 발음의 ‘펑멘(碰面)’을 의도한 언어유희겠지요. ‘만나다’란 뜻인데 ‘이 식당에서 만나자’란 의도 아닐까요. 식당 이름 옆에 쓰여있는 글도 재미납니다. ‘今天吃什麼先碰麵再說’ 이렇게 쓰여 있는데 ‘오늘 머 먹을지는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인데, ‘펑멘 식당에서 만나서 얘기하자’로 해석해야겠지요. 그런데 이 식당에서 제가 볶음밥을 강추하고 있는데 식당 이름은 면 요리집이란 뜻이네요.
대만 생활 3년인데 이 식당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다니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식당 직원들도 익숙합니다. 직원이라야 다 합쳐서 5명 내외입니다. 그 중에 주문받고 계산하고 서빙하고 등등의 일을 하는 직원이 제일 눈에 들어옵니다.
3년 전 처음 왔을 때 마스크를 언제나 쓰고 일하는 모습이었고 이제는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배가 불러와서 아이를 가졌던 것을 알았습니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는데 다시 일하기 시작하네요, 그러다 지금은 아이를 엎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3년이 이렇게 흘러갔네요.
하여간 대만 하면 여러 음식이 있지만 타이베이 점심하면 볶음밥과 이 식당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