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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Dec 11. 2023

대만 총통선거가 시작됐다

[외국인 초짜의 대만 총통선거 관전기]

출근길 누군가 반가이 인사를 건넨다. “자오안!(早安)” 지하철 출구로 나오며 들리는 소리다. 나에게만 하는 특별한 인사는 아닌지라 눈길만 쓱 주고 지나간다. 선거 운동원들이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선거 운동원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걸 보니 선거가 본격 국면에 들어섰다.


제16대 대만 총통선거 열기가 뜨겁다. 올해 1년 내내 총통선거 레이스였지만 2024년 1월 13일 선거 날까지 한 달여 남은 지금, 공식 후보등록까지 마친 지금은 열기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한 나라의 최고 정치권력(자)기관을 뽑는 선거인데 당연하다.


이참에 대만정치제도를 겉핥기라도 알아보자는 심산이다. 다른 나라를 알아가는 데 순서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냥 그 나라에 가면 정치제도에도 눈길이 간다. ‘재미없는 정치를 뭘 그리 들여다보나’ 주변 사람들의 지청구지만 나는 그렇다. ‘재미있다.’


다시 선거운동원 얘기를 해보자면 아침 출근길에 본 복장은 밝은 청록색이다. 커원저(柯文哲) 후보의 민중당 색깔이다. 2019년 창당한 민중당은 하얀색과 청록색(티파니블루) 두 가지를 당을 상징하는 색으로 선택했고 청록색을 대만에서는 남록(藍綠)색으로도 부른다.


국민당, 민중당, 민진당의 각 당 휘장


대만은 일반적으로 민진당, 국민당 양당체제다. 각 당별로 특정 색을 자신들을 대표하는 색으로 정했다. 우리도 그렇잖은가. 민주당은 파란색이고, 국민의힘은 빨간색이다. 정의당은 노란색이고. 대만에서는 여당인 민진당은 녹색, 야당인 국민당은 남색을 상징색으로 두고 있다. 그래서 대만 언론에서는 각 당을 일컬을 때 녹색진영, 남색진영, 그리고 제3당인 민중당을 백색진영 등으로 부르곤 한다.  


색깔이 흥미롭다. 민중당은 민진당과 국민당 양당에 실망하거나 양당의 격렬한 싸움에 지친 중도층에 어필하는 전략을 보통 쓴다. 남색과 녹색을 섞은 티파니블루를 상징색으로 삼은 것은 양쪽에 실망한 사람들이 두 진영을 뛰어넘는 새로운 선택지로 어필하기 위한 전략일까?


민진당과 국민당도 실제 행사에서 당색깔을 배경 등으로 사용할 때 다소 부드럽고 밝은 계통의 색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한다. 이또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집토끼만이 아니라 오히려 중도층, 즉 산토끼를 잡는 것이 중요한데 다소 옅어진 당색깔로 강성 이미지를 희석시켜 중도층에 어필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는 한 언론의 분석이다.


각 당의 총통후보들은 11월 하순 모두 등록을 마쳤다. 대만은 미국처럼 총통-부총통 러닝메이트 제도로 되어 있다. 제일 먼저 등록한 것은 여당 민진당. 현 정부 부총통으로 재직하고 있는 라이칭더(賴清德)가 총통 후보로, 주미대만대표부 대표인 샤오메이친(蕭美琴)이 부총통 후보다.


두 야당의 후보들은 선거등록 마지막 날 등록했다. 우선 국민당은 신베이시 시장인 허우여우이(侯友宜)와 중국라디오방송공사 동사장인 자오샤오캉(趙少康)이 각각 총통과 부총통 후보로 나섰다. 민중당은 전 타이베이시 시장인 라이칭더가 입법의원(우리 국회의원)이자 신광보험자선기금회 동사장인 우신잉(吳欣盈)을 부총통 후보로 지명해 같이 등록했다. 3파전이다.


국민당 허우여우이, 민중당 커원저, 민진당 라이칭더의 페이스북 메인 화면


2파전일 수도 있었다. 그것도 후보등록 당일까지도 그럴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국민당과 민중당이 총통후보 등록기간 시작일(11.18) 3일을 앞두고 야권 총통후보 단일화(藍百合)에 전격 합의했다. 대만 정치권과 언론은 요동쳤다. 라이칭더 지지율이 선두였지만 허우여우이와 커원저 후보가 단일화하면 어떤 조합으로도 승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다. 민진당의 재집권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양당은 6개항에 합의했고 발표했다. △마잉주, 국민당, 민중당이 각 1명씩 여론조사전문가 추천, △11.7~11.17 사이 각종 여론조사와 국민당, 민중당 내부 여론조사 각 1건의 결과를 대상으로 평가, △그 결과 통계오차를 넘어서면 승자가 1점, 통계오차 범위 안에 있으면 허우여우이가 1점 획득, △11.18 오전 결과 발표 등이었다.  


외국인, 대만생활 초짜인 내 눈에 비치기에도 다소 의아했다. 합의 내용이 모호했고 어느 일방에 불리했다. 합의발표 이후 새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게 아니라 이전의 여론조사까지 포함해서 결정한다는 점, 통계오차가 얼마인지 합의서에 언급 없다는 점, 그냥 조사결과 앞 선 사람이 1점을 얻는 게 아니라 커원저가 결과에서 이겼더라도 통계오차 범위 이상으로 이기지 못하면 허우여우이에게 점수가 부여된다는 점 등에 고개가 갸웃했다.


결국 사달이 났다. 11월 18일 오전인데도 아무 발표가 나지 않았고 날이 지나갔다. 문제는 통계오차 해석에서 발생했다. 양당간 3%라고 합의했으나 국민당은 ±3%로 해석해서 6% 이상 격차가 벌어지지 않으면 허우여우이 승리라고 주장했다. 민중당은 3%를 ±1.5%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대상이 되는 여론조사 6개가 국민당 기준으로 분석하면 5:1로 국민당이 승리했고, 민중당 기준으로 해석하면 3:3 동률이 됐다. 게다가 여론조사 3개는 분석 대상에서 배제됐는데 배제 여부에 대해서도 이견을 드러냈다.


사실 이 모든 게 어쩜 여론조사 ‘결과’의 장난일 듯싶다. 3자 경쟁으로 총선을 실시해도 라이칭더와 허우여우이, 커원저 간의 격차가 크지 않았다. 단일화하지 않고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길 것 같으니 단일화가 결렬되는 것을 감수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최종 결렬됐으나 ‘최종’ 결렬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국민당 내부에서는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 커원저 후보가 후보 사퇴로 국민당 후보 손을 들어주는 모양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도 있다. 한국에도 그런 사례가 있다며 민중당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그러니 선거 결과는 한동안 예측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매일 언론에서는 실시간으로 지지율 추이를 보도하고 있다. 일종의 선거공학적인 경마식 보도다. 물론 3당의 국내외 정책 차이, 양안관계에 미칠 영향, 미중 간의 국제정세 속에서의 의미, 대만과 중화민국이 어떻게 나아갈지 등 심도 있는 기사 또한 있으나 선거 기사에서 먼저 들어오는 기사는 지지율 보도일 수밖에 없다. 외국인 겉핥기 차원에서는 더더군다나 말이다.


아무쪼록 2024년 1월 13일 그간 대만 민주화 이후 민진당과 국민당이 8년간 정권 교체를 해왔던 양태가 재현될지, 새로운 흐름이 생겨날지 대만인 만큼이나 궁금하다. 그리고 12월 11일 추첨으로 이뤄지는 선거후보 기호 또한 흥미롭다. 우리와는 다른 방식이기에.


[대만 yahoo 2024 총통&입법의원 선거 페이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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