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HGXING Dec 18. 2023

‘언제나 봄’, 컨딩

[대만 생활]

‘언제나 봄.’ 대만에서 첫 번째 숙박여행을 다녀온 곳의 지명이다. 중국어 발음으로는 ‘헝춘’(恆春). 헝춘을 번역하면 ‘언제나 봄’이라는 뜻. 대만 최남단 지역인지라 겨울에도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곳이니 지명을 제대로 지은 셈이다. 11월의 대만 헝춘은 언제나 봄이었다. 다만 바람이 만만치 않은 봄이었다.


사실 이곳으로 여행 간다 할 때 헝춘 여행 간다고 하진 않는다. 여행지명으로 알려진 곳은 헝춘에서도 ‘컨딩’이다. 컨딩국가공원으로 지정되었기에 그렇다. 이왕 지명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된 김에 컨딩이란 지명의 유래도 찾아봤다. 중국어에 ‘컨’이란 발음이 많지 않기도 하고 컨이란 발음이 주는 다소 이국적이면서, 튀는 어감에 더욱 궁금해졌다.


컨딩(墾丁)은, 해석하자면 ‘개간(開墾)하는 장정(壯丁)’이다. 지명 유래를 찾아보니 정말 그대로였다. 1877년 중국 광서제 시기 광둥 지역에서 객가 장정들을 모아 이 지역을 개간하도록 했다. 그 이후 이 지역은 개간하는 장정을 뜻하는 컨딩이 됐다.   


대만 오기 전까진 컨딩을 잘 알지 못했다. 오고 나서야 친한 선후배와 얘기 나누면서 그제야 알게 됐다. 한 명에게는 1년 살아보기 하고 싶은 곳이었고 다른 한 명에게는 대만에서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러다보니 와이프가 휴가 내서 컨딩 가자 했을 때 내심 반가왔다.


컨딩은 멀었다. 타이베이에서 고속철 타고 우선 가오슝까지 가야했다. 약 1시간 반에서 2시간 걸린다. 가오슝에서, 다시 호텔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 타고 2시간여 가야 당도했다. 버스 타고 가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헝춘 반도의 해안선은 아름다웠다.


숫자로 표시된 하루의 온도는 타이베이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17~24도. 허나 최남단이잖아! 느낌상 밤 수영도 가능할 것 같은 심리적인 따듯함이 있었다. 첫날 체크인하고 야외 수영장에 갔지만 수영하지 않았다. 달빛 받은 예쁜 수영장 사진만 찍고 수영하는 사람(단 한 명 있었다.)만 구경했다. “이 온도에도 수영하네” 하며. 심리적인 따듯함이 물리적인 차가움을 이기진 못했다.


다음날엔 몇 안 되는 수영하는 사람에 나도 포함됐다. 해보니 할만 했다. 하루 종일 밥 먹고 수영하고 또 밥 먹고 수영하고, 햇빛에서 낮잠 자고, 책 읽고 노래 들었다. 그 넓은 수영장에 어떨 땐 나와 딸아이만 있었다. 수영 하다 물에 드러누워 바라본 하늘은 별미였다. 귀는 물속인지라 어떤 소리도 안 들리는데 파란 하늘과 빨리 흘러가는 구름은 계속 바라봐도 지겹지 않았다.


3미터 깊이 풀과 다이빙 시설도 있었다. 처음 해보는 다이빙대에서의 점프는 두려웠다. 해보니 ‘그까이거’였다. 십여 차례 다이빙한 듯하다. 물안경으로 바라본 3미터 바닥은 깊어 보였지만 스노클링하는 기분이었다. 추우면 따듯한 물이 한가득인 자쿠지에 들어갔다. 호텔 길 건너편의 해변도 거닐고 모래사장에도 누웠다. 호기롭게 잠을 청했지만 바람에 모래가 날려 다시 ‘안전한’ 호텔 수영장으로 들어왔다. 레이지한 느린 하루였다.


밤새 바람소리가 대단했다. 비는 오지 않으면서도 창밖 달빛 받은 야자수 나무들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야자가 달려 있다면 바람에 하늘높이 날아가리라 이불 속에서 상상했다. 컨딩에 머무는 내내 풍속이 10~15 정도였고, 순간 돌풍은 20을 넘어서기도 했다. 15 정도면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쓰러질 수 있다던데 다음날 입증했다.


다음 날 차를 렌트했다. 컨딩의 아름답다는 곳곳을 둘러볼 요량으로 말이다. 오전에 들른 대만 국립해양생물박물관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수족관이면서 현재도 아시아에서 제일 긴 해저터널을 보유한 곳이란다. 해저터널에서 본 가오리의 ‘웃는 얼굴’이 꽤 인상적이다. 허나 중학교 2학년과 함께 다니는 여행에서 아쿠아리움은 그리 매력적인 관광지는 아닌 듯하다.


다음 일정인 바이샤 해변, 아름다웠다. 물 색깔은 옥빛에, 깨끗했다. 햇빛에 반짝이는, 부서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크지 않고 아담한 만이었지만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햇살이 강했지만 한여름의 내리쬐는 더위가 아닌지라 따듯했다. 얼굴에 모자를 덮고 그대로 모래위에 누워 달게 잠을 잤다.


이제까지는 헝춘 반도의 서쪽이었는데 늦은 오후부터 동쪽으로 넘어갔다. 바다 바로 붙어있는 카페에서 한가로이 아이스크림 먹으며 바람에 일렁이는 바다를 구경했다. 이때부터 예정에 없던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졌다. 일기예보에 비는 없었지만 올해 경험한 대만 날씨 특성상 그럴 수 있다 싶었다. 서둘러 룽판 공원과 어롼비 공원으로 넘어갔다.


해안 따라 놓인 도로를 운전하며 순간순간 멈췄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멈추는 곳곳에서 하염없이 출렁이는 파도와 해안 절벽을 마냥 바라볼 수 있을 듯싶었다. 아쉽게도 시간은 허락했지만 바람과 빗방울이 허락하지 않았다.


룽판공원에 도착해 마주한 태평양을 바라보니 신기하게도 쌍무지개다. 그것도 그 시작점이 바다 아닌가. 무지개 시작점을 본 경험도 낯선데 그 시작점이 바다 한 가운데라니. 신기했다. 설레는 마음에 서둘러 주차하고 내렸으나 빗방울이 굵어져 우선 다시 차로 복귀. 빗줄기가 다소 줄어든 틈에 다시 공원으로 향했다. 아직 무지개는 그대로다.  


공원은 해변가 따라 길게 이어지는데 해안 절벽 위에 이어져 있다. 해안 절벽의 초원과 난쟁이나무들이 잘 어울린다. 날씨 또한 묘했다. 비도 오지만 하늘 한쪽은 파란 하늘이고 해도 난다. 바람은 거세서 구름은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일렁이는 파도는 옥빛이면서도 하얀 포말이 곳곳이다. 풍광이 압권이다.


사진으로 고스란히 남기고 싶은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는 순간 모자가 날아간다. 가시덤불 수풀 속에 떨어졌다. 부리나케 달려가 봤지만 덤불 속이라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곳저곳 자세를 기우뚱하며 둘러보는데 순간 해안절벽 따라 밀어닥치는 바람에 흔들. 가시덤불속으로 그대로 고꾸라졌다. 난생 처음 바람에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순간이다. 손과 팔 등에 꽂힌 가시를 빼냈지만 잔가시들은 어쩔 수 없다. 바람의 위력이 어마어마하다. 크게 안 다친 게 다행이다. 다음 장소인 어롼비 공원과 인근 대만 최남단 지점을 갈 때는 다시 날씨가 개었고 바람도 다소 누그러졌다.


이렇게 언제나 봄, 바람에 휘청인 컨딩 여행을 마치고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왔다. 타이베이역에 도착하니 반바지와 반팔이 다소 춥게 느껴진다. 사람들도 컨딩과 달리 두툼한 외투를 입고 있다. 주섬주섬 배낭에서 긴팔을 꺼내 걸쳤다. 숫자로는 3도 차이인데 3도 이상의 차이인 듯싶다.    


와이프에게 컨딩 여행은 숙제였단다. 대만 살이 하며 여기 저기 다닐 터이지만 대만 최남단 컨딩은 언젠가 가봐야 하는데 가기 주저하는 거리였다. 그런 곳을 제일 먼저 다녀왔으니 숙제 한 것 같은 홀가분함이 있단다. 대만 여행이 일종의 도장찍기인가보다. 다음 도장이 어디일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잘 다녀왔다.


 

컨딩 난완 해변과 룽판 공원에 뜬 무지개


작가의 이전글 대만 총통선거가 시작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