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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Dec 25. 2023

대만총통선거와 양안관계,  항중과 화중 사이의 선택

[대만, 정치의 계절_총통선거 관전기]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많은 언론에서 친미-친중 간의 싸움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또는 반중-친중 간의 대결이라고도 한다. 전자의 표현은 한국 언론에서 조금은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사용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나 후자 표현은 대만 언론에서도 사용하곤 한다. 반중, 친중이란 표현보다는 항중(抗中)과 화중(和中)이라고 말이다.


사실 대만은 어느 정파더라도 기본적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모가 나거나 껄끄러운 관계는 아니다. 우선 집권 여당인 민진당의 입장에서 미국은 든든한 우방이다. 소위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세력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미국 바이든 정부와 민진당이 표방하는 방향은 잘 맞아떨어진다.


국민당도 전통적으로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국민당의 허우유이 총통 후보는 대선을 4개월 앞두고 있던 지난 9월 미국을 방문해 정관계 인사들과 교류를 나눴다. 친중 이미지가 강한 국민당으로서는 친중 이미지를 희석시켜 중도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으로서도 ‘하나의 중국’을 공식 인정하고는 있지만 중국을 견제할 주요 수단인 대만과의 관계는 중요하다. 어떤 권력이 들어서더라도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는 미국에게, TSMC라는 핵심 반도체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대만은 주요 파트너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의 대 대만 정책, 대 중국 정책에서 이번 총통 선거가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디플로매트(The Diplomat)> 또한 그러한 전망을 기사화하며 오히려 큰 변화는 내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초래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가 전통적인 외교정책에서 벗어나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며 어떤 방향으로 갈지 종잡을 수 없는 럭비공 같기에 말이다.


대만 총통 선거에서는 그래서 대미 관계, 대미 정책은 일종의 상수다. 핵심은 양안 관계다. 양안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려는지가 화두다. 양안 관계는 경제문제는 물론이고 대만의 정체성, 대만독립 문제 등과 이어질 수밖에 없어 폭발력과 휘발성이 매우 강한 주제다.


12월 20일 1차 총통 후보 정견 발표회에서도 양안관계에 대한 입장표명을 명확히 하라는 날선 공방이 이어졌다.


대만 16대 총통선거 1차 정견발표회 Youtube 화면 캡쳐(台視新聞)


우선 라이칭더 민진당 총통 후보. 커원저 민중당 총통후보를 겨냥해서는 커 후보가 ‘중국과 대만은 같은 가족(兩岸一家親)’이란 언사를 받아들인 것을 지적하며 이는 사실상 ‘92공식’을 인정한 것이라 비판했다. 兩岸一家親이란 개념은 시진핑 중국 주석이 2013년 제시한 것으로 하나의 중국과 92공식에 기반한 언사였다.


국민당 허우유이 총통 후보에게는 더욱 날이 섰다. 허우 후보가 92공식을 인정했다며 92공식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일국양제에 기반하고 있고 그 논리에서는 대만, 즉 중화민국이 설 공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허우 후보는 주권과 관련한 문제에서 절대 양보는 없을 것이고 안정적인 양안관계를 만들어 낼 것이며 중화민국 헌법을 준수하고 대만의 민주자유제도를 지켜낼 것이라며 일국양제는 물론 대만독립에 반대한다고 반박했다. 대만독립성향의 라이 후보에 대해 역공한 것이다.  


허우 후보는 올해 국민당 총통 후보로 지명된 뒤 92공식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받아왔다. 정통 국민당원들은 92공식을 인정하라는 입장이지만 허우 후보는 모호한 입장을 유지해 오다 지난 7월 ‘중화민국 헌법에 부합하는 92공식을 수용하되 일국양제 상의 92공식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92공식은 이렇게 양안관계에서 매우 뜨거운 감자이자 핵심 사항이다. 1992년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海峽兩岸關係協會)와 대만 해협교류기금회(海峽交流基金會)가 합의한 사항으로 1992년도에 이뤄진 합의여서 92공식으로 칭해진다. 합의내용은 양안관계의 원칙에 관한 사항으로 ‘一個中國, 各自表述’(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되, 그 표현은 양측의 편의대로 한다‘는 내용이다.


대만은 이에 따라 ’하나의 중국‘에서 의미하는 중국은 중화민국이라 해석하고,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그러나 92공식에서 ’各自表述‘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의 중국만이 92공식 내용이라 주장하며 대만도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일한 중국임을 인정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짚어봐야 할 문제는 92공식에 대한 대만 내에서의 공수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2024년 1월 제16대 대만 총통선거를 앞두고는 민진당이 국민당 후보에 대해 92공식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며 공격을 가하고 있고 국민당 후보는 모호한 태도로 수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2010년대에는 오히려 반대였다. 국민당 정부 시절이었던 당시 2012년 총통 선거와 2016년 선거에 출마했던 차이잉원 민진당 후보는 92공식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에 차이 후보는 2000년대 초반 총통을 역임한 민진당 천수이벤 정권의 급진적인 분리독립과는 거리를 두며 92공식에 대해 ‘양안관계에서의 여러 선택지점 가운데 하나’라고 하면서 ‘다만 유일한 선택지여서는 안된다’는 정도로 입장을 표명했다.


이렇게 대만 내 92공식에 대한 공수가 바뀐 것은 대만 민심의 흐름이 바뀐 데 기인한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많은 대만 사람들이 점차 중국과 대만을 다른 ‘국가’로 인식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또한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로 일국양제에 대한 대만인들의 거부감이 높아지면서 92공식에 대한 공수가 바뀐 것이다.


앞으로 20일 후면 대만인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양안관계 또한 지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대만 총통 선거에서는 양안 관계는 언제나 핵심적인 이슈였으며 이번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양안관계에 대한 대만인들의 판단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앞서 얘기한 대로 양안관계는 경제문제, 정치문제, 정체성 문제 등의 중요한 이슈가 중첩되어 있는 문제이기에 그 시대, 그 시기에 강조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대만인들의 판단 또한 달라질 수 있다.


하여간 대만은 이번 총통 선거에서 어떤 정체성을 선택해서 어떤 결과를 맞이할 것인가. 커원저 민중당 후보가 1차 정견발표회에서 한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는다. 대만은 ‘중미간 소통의 가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중미간 대결의 바둑돌’이 될 것인가,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이번 선거는 그 단초가 될 것이다.


대만 16대 총통선거 1차 정견발표회 Youtube 화면 캡쳐(台視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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