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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Jan 08. 2024

대만 총통선거 기호는 얄짤없이 추첨으로!

[대만, 정치의 계절] 우리와 다른 점들, 그 ‘소소한’ 이야기

해외에 있으면 의외로 소소한 것들이 보이고 그 의미가 커 보이기도 한다. 며칠 남지 않은 대만 총통 선거에서도 그런 점들이 눈에 띈다. 2024년 전세계 50개국 이상에서 치러지는 선거의 포문을 여는 선거이고, 양안관계가 핵심 의제이며, ‘대만인 우리는 누구인지’를 묻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양상을 띄고 있다는 ‘무거운’ 담론 분석은 차치하고 소소한 세부 절차 등을 들여다봤다. 우리와 다른 몇몇 제도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여론조사 결과공표가 금지된 깜깜이 기간인 지금 그런 ‘다른’ 방식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우선 후보자 선거 기호를 정하는 방식이 다르다. 대만은 추첨이다. 우리는 원내 정당 후보일 경우 국회의원수대로 선거기호를 부여한다. 즉 현재 기준으로 보자면 민주당이 국회의원이 제일 많으니 선거 기호 1번을 부여받는다. 그 다음 2번은 국민의 힘, 3번은 정의당이 부여받는다. 공직선거법 제150조에 그렇게 정해져 있다. 원외정당일 경우 가나다순으로 기호를 정하고 무소속일 경우 그제서야 추첨을 통해 부여받는다.


대만은 지난해 12월 11일 총통선거에 나선 3개 정당의 대표들이 중앙선거위원회 주관 추첨식에 참가해 번호를 뽑았다. 원내 입법의원수가 누가 많고 누가 적으니 이런 것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글쎄 어떻게 본다면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 가장 ‘공정한’ 방식일 수 있겠다. 국민의 제일 중요한 심부름꾼을 뽑는 선거에서 차별이 있어선 안 되지 않겠는가. 허나 이렇게 볼 수도 있겠다. 국회의원 수도 지엄한 국민들의 투표로 정해진 건데 의원수대로 번호를 정하는 게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방법이 아니겠느냔 반론이겠다.    


하여간 번호 뽑는 순서는 후보등록 순서. 11월 21일 제일 먼저 후보 등록한 민진당에서는 샤오메이친 부총통 후보가 추첨식에 참가해 2번을 뽑았다. 다음으로는 민중당 커원저 후보가 직접 추첨식에 참가해 1번을 뽑았고 세 번째 추첨순서였던 국민당이 3번을 잡았다.     


추첨은 총통 후보 기호에 그치지 않는다. 대만은 총통 선거와 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입법의원 선거가 4년마다 함께 치러지다보니 입법의원 선거 기호도 추첨을 통해 정한다. 이 부분이 흥미롭다. 입법의원 선거기호를 전국 단위로 추첨을 하는 게 아니다. 선거구별로 추첨해서 번호를 정한다. 그러다 보니 같은 당 후보일지라도 A지역 후보 기호와 B지역 후보기호가 다르다. 실제로 타이베이시에는 총 8개의 지역선거구가 있는데 현 집권여당 민진당 후보의 번호는 다 다르다. 1선거구에서는 1번, 2선거구에서는 3번, 3선거구 3번, 4선거구 3번, 5선거구 7번, 7선거구 5번, 8선거구 3번 등 제각각이다. 비례대표 번호 또한 다르다. 총 16개 정당이 비례대표 번호를 부여받았고 민진당은 6번, 제1야당 국민당은 9번, 민중당은 12번이다.


이러다보니 선거기호를 활용한 전국단위의 통일된 선거운동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보통 각 당별로 동일한 번호를 부여받기에 선거기호를 각인시키기 위해 선거기호로 로고송을 만들거나 특정 동작을 반복하곤 하지만 대만 선거운동에서는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선거 포스터나 현수막에도 다양한 번호가 들어가 있다. 총통 후보 홍보용과 지역구 입법의원 후보 홍보용, 비례대표 홍보용 포스터를 따로 만들지 않고 보통 하나의 홍보 포스터에 총통 후보&입법의원 후보를 함께 넣고 비례대표 투표까지 독려하다 보니 다양한 번호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금 살고 있는 타이베이 티엔무(天母)란 지역 현수막을 보면 민진당 현수막에는 라이칭더 총통후보 번호 2번과 지역구 입법의원 후보 번호 3번이 함께 들어가 있다. 국민당 현수막에는 이마저 번호가 없다. 후보가 정해진 뒤 선거기호 추첨이 나중에 이뤄지다보니 현수막에 그저 빈 동그라미만 있을 뿐이다. 추첨이 완료됐으니 이제 기입하긴 해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한지 아직도 빈 동그라미다.


대만 총통 후보 홍보 현수막. 같은 민진당일지라도 총통과 입법의원 후보 기호가 다르다. 국민당은 아직 기호를 입력하지 못했다. (아래 녹색이 민진당 현수막, 위가 국민당 현수막)


이렇게 복잡하니 정치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없다면 헷갈릴 법도 하다, 헷갈리면 귀찮을 법도 하고 귀찮으면 투표장에 아예 나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투표율이 높은 것을 보면 대만 국민들의 대의민주주의, 투표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고 평가해야 하나. ‘열정’이 없으면 투표장에도 나가지 않을 것 같은 시대이니 말이다.  


투표율은 이러하다. 2020년 총통 선거 투표율은 74.9%였고, 2016년은 66.3%, 2012년은 74.4%, 2008년은 76.3%, 2004년은 80.3%였다. 우리나라 대선 투표율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 투표율은 2022년 대선 77.1%, 2017년 77.2%, 2012년 75.8%, 2007년 63.0%, 2002년 70.8%였다.


이러한 투표율이 더 놀라운 것은 사전투표제도가 없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는 2013년에 도입됐는데 선거일 전 5일부터 2일간 전국 어느 투표장에서나 투표를 할 수 있다. 투표일이 수요일로 정해져 있기에 보통 전 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사전투표가 이뤄진다. 투표 기회를 보다 많이 보장하고, 투표율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대만은 사전투표제도가 없다. 오로지 투표 당일만 투표해야 한다. 게다가 선거일은 토요일이다. 평일인 수요일로 정해져 있어 하루 쉬는 우리나라와 달리 대만은 휴일인 토요일 투표를 한다. 투표를 하지 않고 놀러가고 싶은 유혹이 왜 없겠는가 싶다.


설상가상으로 선거 당일 투표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딱 8시간이다. 우리나라는 보통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기에 12시간이 보장된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6시에 일찌감치 투표하러 나온 사람들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방송 보도는 단골 메뉴다.


투표율을 낮출 수 있는 저해요소는 한 가지 더 있다. 투표하러 자기 주소지로 가야한다. 우리나라가 사전투표제를 도입하고 다른 투표소에서도 투표가 가능한 것은 통합선거인명부가 도입되면서 가능해 졌다. 대만은 아마 아직 투표구별로 선거인명부를 작성하기 때문에 사전투표 또는 타 투표소에서 투표가 이뤄지지 않는 듯하다. 이러다 보니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이 주소지로 등록이 돼 있지 않다면 부러 등록된 주소지 지역으로 가서 투표해야 한다. 현지직원이 농담 삼아 1월 13일 투표를 하기 위해 ‘전날 반차 휴가 주세요’란 ‘투정’이 반쯤은 이해되는 지점이다.


해외부재자투표는 언감생심이다. 해외 거주 대만인이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귀국하는 수고로움을 아끼면 안된다. 실제 투표 전에 상당수 해외거주자들이 투표하기 위해 대만으로 귀국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고 한다. 그리고 올해 이들의 표심이 주목받는 것은 민진당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앞서고는 있지만 3% 내외 차이는 해외 거주자의 몰표가 나온다면 박빙으로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 대륙에 거주하는 대만인은 120만명 정도이고 이들은 국민당 성향이 보다 강하기에 이들이 투표에 적극 참여한다면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대만 선거제도 특징을 얘기하다 샛길로 빠졌다. 하여간 대만의 선거제도를 지켜보면서 우리의 선거제도를 돌아보게 된다. 어느 나라나 자기만의 사회적 맥락에 따라 제도는 변천하기 마련이다. 대만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 이러한 제도가 만들어 졌을 테다. 시간이 흐르면 맥락이 달라질 수 있으니 제도 또한 변할 수 있는 것이고. 이번 총통 선거 결과도 궁금하기 짝이 없지만 대만 선거제도, 사회제도 또한 어떻게 변모해 갈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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